훈련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이부자리를 깔았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마지막 훈련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약간 풀린 탓도 있었다. '오~ 나의 베개. 푹신한 오리털 이불. 반갑다.' 정말,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2시간 쯤 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깼다. 그 짧은 시간, 꿨던 꿈 때문이었다. 내일 1차 테스트 날, 늦잠을 자다가 시간을 놓친 꿈이었다. 일주일 동안 고생했던 일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린다는 것.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버틴 일주일인데. 정말 꿈이라 다행이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놀란 가슴을 달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 연재도 이제 4번밖에 안 남았구나.' 일곱째 날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시험만 모두 4번 보니 주의할 것14,15,16,17,18,19, 그리고 20일. 정말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오늘은 훈련을 받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에서 하는 1차 테스트를 할 예정이다. 영법, 구조법, 바벨 나르기, 입영 등 그동안 배웠던 것을 점검한다.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면 다음 시험을 치를 수 없다. 여기서 정보 하나. 수상인명구조원 검정 시험은 모두 두 차례 치러진다. 자기가 속한 지사에서 자체 검정을 치른 뒤, 다른 지사에서 검사관이 파견돼 한 차례 더 테스트를 본다. 공정성을 더하기 위한 조치다. 필기시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험만 모두 4번(필기 2번, 실기 2번)이다. 생각보다 보는 게 많으니 주의할 것.
오전 10시, 잠실 종합운동장 제1수영장. 휴일인 터라 강습은 평소보다 약 3시간 일찍 시작됐다. "오른쪽 선두, 기준! 4열 횡대로 헤쳐모여!" 집합 시간이 되자, 줄을 세웠다. 평소보다 약 3시간 정도 빨리 모인 터라, 늦잠을 자는 이가 있을 것 같아 걱정됐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리고 나머지 둘." 사팔에 삼십이(4×8=32), 둘 더하면 삼십사, 여자반장과 나를 합치면 서른여섯. 다 왔다.
전날 훈련이 격해 걱정했는데, 다들 대견하다. 체조반장의 구령에 맞춰 몸 풀기를 한 뒤, 간단하게 워밍업을 마쳤다. 현재시간, 오전 10시50분쯤 됐다.
"오늘은 그동안 배웠던 구조법들을 모두 실습해볼 거예요. 내일이 시험이니까, 마지막 훈련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세요. 알겠죠?" 강의 전담 강사가 말했다. 쇳소리 나던 목도 많이 좋아져 보였다.
이론은 되는데, 몸이 말을…첫 테이프는 '바벨 나르기'로 끊었다. 시험은 다음과 같이 치러진다. 우선 다리벌려들어가기로 입수, 헤드업 자유형으로 25m를 간다. 건너편엔 레스큐 튜브(rescue tube) 끝에 5kg짜리 바벨을 달아 띄워 놓는다. 반대편에 도착하면 빠른수면다이빙으로 입수, 물속에 잠긴 바벨을 한쪽 겨드랑이에 낀 채 역가위차기로 처음 장소로 가면 된다.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관건은 힘 조절. 헤드업 자유형에서 너무 무리하면, 역가위차기 때 힘이 달린다.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가서도 안 되니, 자기 몸에 맞게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해야 한다. 항상 그렇듯, 선두 그룹은 역시 빨랐다. 별로 힘도 안 들이는데도, 쉭쉭 앞으로 잘 나갔다. 마치 터보모터를 발에 달아놓은 듯했다. 발을 한 번 내저을 때마다 물결이 출렁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다음은 내 차례. 하지만 다리벌려들어가기부터 쉽지 않았다. 이 입수법의 핵심은 머리가 물에 젖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슴과 양 팔로 물을 감아쥐듯 뛰어들어, 머리가 가라앉지 않게 해야 한다. 이론은 되는데, 몸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전방에 익수자 발견!" 크게 외친 뒤 물에 뛰어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머리가 반쯤 물에 잠겼다. 아쉽지만 그냥 출발. 힘 안배를 위해 헤드업 자유형은 다소 천천히 갔다. 반대편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물속으로 잠수해 바벨을 들고 나와 역가위차기를 시작했다. '으악~' 전날과 같은 5kg인데, 오늘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알아서 입 속으로 들어오는 물팔을 저을 때마다 물이 입 속에 빨려 들어왔다. 물을 안 먹으려고 뱉어냈지만, 알아서 입 속으로 들어왔다. 한 동기 표현을 빌리자면, "입이 셀프(self)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먹는다. 악으로 깡으로 건너편까지 가긴 갔다. 어느새 배는 상당히 불러 있었다. 그래도 성공했다는데, 기뻤다. 뿌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공포의 입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영 시험은 손들고 10분을 버텨야 합니다. 손은 물 밖으로 팔꿈치 가까이 들어야 합니다. 손목만 조금 나와선 안 돼요. 시간을 잴 거니까 힘들어도 참아요." 강사 오른손에는 초시계(스톱워치)가 들려 있다. "자 두 손들고~ 시작!"
처음은 순조로웠다. 팔을 들었지만, 몸이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견딜 만했다. 8분쯤 지났을 무렵, 한계가 찾아왔다. 양쪽 허벅지와 종아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어떻게 견딘 일주일인데.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1기 파이팅! 파이팅!" 악에 받쳐 소리도 고래고래 질렀다. "그만!" 해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인가. 강사의 말이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웠다. 진짜 시험도 아닌데, 마치 합격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게 이런 느낌 같았다.
이어 지금껏 배운 구조법 연습을 했다. 여러 차례 연습을 했기에, 이번엔 틀리기 쉬운 것을 중점으로 훈련했다. 여기서 잠깐. 지금껏 배운 구조법에서 핵심만 간추려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맨몸구조'. '맨몸구조'에는 '수하(水下)접근', '손목끌기', '뒤집기'가 있다. 주의해야 할 포인트는 이렇다.
'수하접근'은 빠른수면다이빙으로 들어간 뒤, 익수자의 골반을 먼저 잡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올린다. 그러면 감점이다. '손목끌기'는 바로 손목을 잡는 게 아니고, 팔꿈치를 먼저 잡은 뒤 잡은 손을 서서히 내려 손목을 잡아야 한다. 알면서도 자주 실수한다. '뒤집기'는 양쪽 팔등을 익수자의 등에 댄 뒤에, 한 번에 뒤집는 게 관건이다. 그런 뒤, 빠른 로터리차기로 몸을 띄워야 한다. 알고는 있는데, 유난히 잘 안 된다.
다음은 '장비구조'. '장비구조'는 크게 '뻗어돕기', '감아묶기', '뒤집기'로 나눌 수 있다. '뻗어돕기'를 할 때는, 익수자 가까이 다가가 어깨에 멘 끈을 찾을 때 시선을 익수자에게서 떼서는 안 된다. 레스큐 튜브를 줄 때도 양손으로 천천히. '감아묶기'는 튜브를 몸 아래로 집어넣으면서, 다른 팔로 몸을 뒤집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팔 힘이 아닌, 자기 몸무게를 실어 튜브를 물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팔을 잡을 때도, 팔꿈치부터 잡고 내려와야 하는데 깜박하는 경우가 잦다. '뒤집기'는 익수자의 양 겨드랑이에 자신의 팔뚝을 깊게 집어넣어야 한다. 뒤집을 때는 익수자의 머리와 부딪히지 않게 재빨리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이것도 자주 틀린다. 손끝은 펴지 말고 주먹을 꽉 쥐어야 한다. 한두 번 해보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문제는 막상 하려 들면 머리가 하얘진다는 데 있다. "사소한 것을 놓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고 강사는 말했다.
일주일만에 처음 얻은 긴 휴식낮 12시 정각. "자, 지금부터 30분 동안 점심시간입니다. 휴식!" 일주일만에 처음 주어진, 긴 휴식이다. 이때를 위해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빵이나 김밥 등 간단한 음식을 챙겨와도 좋다. 뭐니 뭐니 해도, 밥보다는 잠이다. 잠시 짬을 이용, 탈의실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남자 탈의실 의자 옆에 히터가 있어 따뜻하게 누울 수 있다. 칼잠 자기엔 제격이다.
30분 뒤, 곧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내용은 전과 같다. 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이번엔 두 명이 한 개조가 돼, 자유연습을 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이때 절대 놀아서는 안 된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없다. 틀리기 쉬운 것들을 되뇌며,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한다. 문제는 항상 작은 것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바벨 5kg, 잠영, 그리고 입영을 했다. 훈련은 이번에도 실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입영은 물론 손들고 10분이다. 수업은 3시 50분쯤 마무리됐다. 이날 잠실 종합운동장 수영장이 일요일 오후 4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훈련을 아침 일찍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드디어 내일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떨어지면 끝이다. 최종 시험을 쳐보지도 못한다고 했다. 잘 볼 수 있을까? 통과하겠지? 떨린다. 내일 수업 뒤에는 회식도 하는데,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