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을 만났다 소뇨이타(sonoyta). 이사 가는 트럭 짐칸에 얹혀 140km에 이르는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침부터 자전거가 펑크가 난 데다 에어펌프기마저 공기 주입 부분이 부서져 버리는 흔치 않은 일을 당해 버렸기 때문이다. 미신 따위를 믿진 않지만 폐가의 느낌이 좋지만은 않아 어서 그 자리를 뜨기로 했다. 트럭 짐칸에 올라 두 시간여 가까이 바람을 맞으니 인적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황무지만 펼쳐져 있다. 도대체 아무 준비 없이 무슨 배짱으로 여길 지나오려 했던 것일까. 소뇨이타에 도착해서 바로 에어펌프기를 꼭 구입해야만 했다. 혹시나 펑크 수리만 처리하고 다시 갔을 경우 또다시 사막 한 가운데서 고립되면 그 땐 정말 치명타가 된다. 자전거 샾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 한 아이를 만났다. 안토니오라는 13살짜리 녀석이다. 작은 체구에 옷매무새가 꾀죄죄하긴 했지만 살쾡이마냥 눈빛이 살아 있고 몸짓이 야무진 이 녀석은 아이답지 않게 대범하고 매우 영특해 보였다. 거기에 자전거도 꽤 잘 타는 편이다. 도로와 인도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멈췄다 섰다 속도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며 게다가 분명 45도 이상 기울어져 넘어질라치면 어느새 곡예를 하듯 중심을 잡고 뒤돌아 나를 보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는 것이다.
녀석에게 자전거 샾 위치를 물었다. 그러자 '따라와' 고개로 신호를 보내면서 녀석이 대장인 듯 앞장서서 나를 이끌었다. 지근거리에 있는 자전거 샾에 쉽게 도착했지만 대형 펌프밖에 안 판다기에 다시 다음 자전거 샾으로 향했다. 하지만 두 번째 가게에서도 소형 에어펌프가 없단다. 세 번째 가게에서도 마찬가지. 이곳은 자전거 전문점이라기보다 일반 잡화점에 자전거 용품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전문 용품을 구비해 놓은 곳이 드물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움직이기로 했다. 자전거에 휴대하려면 반드시 소형 펌프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찾으러 우리는 마치 의협심으로 똘똘뭉친 형제처럼 동네를 이 잡듯이 쑤시고 있는 것이다. 13살짜리에 이끌려 타운을 돌아다니는 어리버리 스물일곱 청년의 모습이란. 결국 네 번째 가게에 가서야 겨우 에어펌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토니오는 내 상황을 알자 들르는 가게마다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똑부러지게 설명해 준다. 조그만 녀석이 참 대견했다. 덕분에 무사히 에어펌프를 구할 수 있었으므로 다음 사막지역에 안심하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만족할 만한 성과에 만면의 웃음을 띤 나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안토니오와 아까부터 녀석을 엉겹결에 따라나온 친구 데이비드에게 작은 보답을 하기 위해 콜라를 사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정도 대접은 당연하지! "콜라 마실래? 가게가 어딨니?" "뒤에 자판기 있어." 손가락을 가리키며 당돌하게 말하는 안토니오의 표정을 보니 대접이 당연한 듯 보였다. 보통 웃으면서 수줍어하는 게 일반적인데. 자신의 의사를 가감없이 표출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인정해야만 한다는 압박감마저 들 정도였다. 먼저 5페소 동전을 집어넣고 콜라 한 캔을 꺼냈다. 그러자 나이답지 않게 의연한 안토니오가 먼저 데이비드에게 건넸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손사래를 쳤다. "이거, 여기 형이 고마워서 주는 거니까 받아." 그래도 데이비드는 수줍은 듯 고개를 저었다. 안토니오는 당당하게 다시 한 번 콜라를 데이비드 손에 억지로 쥐어줬다. 그러면서 부담없이 마셔도 된다고 자신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데이비드에게 어른스럽게 충고하는 것이다. 그 상황을 보자 안토니오가 저 나이 또래답지 않게 참 기특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해 하며 마다하는 데이비드. 그런 그를 채근하는 안토니오. 얼마간 답답한 정적이 흐르다가 그때서야 데이비드가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환타."
원 달러 발언의 아쉬움... 다음 날 아침, 소뇨이타를 떠나려고 동네를 빙빙돌다 우연히 안토니오와 다시 마주쳤다. 어제의 일도 있고 해서 반가운 녀석의 얼굴에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 때 서릿발 치듯 외치는 안토니오의 한 마디. "헤이! 원 달러!" 순간 녀석 앞에서 멈추려던 것을 그대로 페달을 밟아 지나쳤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도리질을 해댔다. 어제 그 친절이 고마워 콜라 한 캔을 사 주었더니 다시 만난 나에게 우렁찬 첫마디가 1달러 달라는 소리라니. 분명 녀석은 어제의 안토니오와 다른 아우라가 부여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는 속이 편치 않을 뿐더러 속도 씁쓸해져왔다. 어제 그걸로 녀석과의 만남이 끝이었다면 한 당돌하고 친절한 아이와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일이 1달러를 요구하는 뻔뻔한 외침에 내가 생각했던 우리 우정이 속절없이 깨져버린 것이다. 얍삽한 녀석. 행동이 바뀌자 녀석의 당돌함과 의기양양함이 이제는 어쩐지 거북하게 다가왔다. 안토니오는 분명 눈앞의 이득을 위해 남을 이용하려 하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려 버린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나를 부르는 녀석의 소리를 저만치 밀어내고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원래 예상 시나리오는 아침식사 전이었기에 녀석과 바로 옆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타코라도 한 접시 같이 할까 생각했던 터였다. 녀석을 보는 순간 바로 그 생각이 났던 건데 그 기대를 하염없이 어그러뜨리는 원 달러 발언의 아쉬움….
기분도 상했겠다, 아침을 포기한 채 외곽쪽으로 그대로 핸들을 돌려버렸다. 그러면서 먼발치에서 고개를 돌려보니 안토니오는 그대로 성큼성큼 자신의 길로 가고 있었다. 씩씩하고 위풍당당해야 할 걸음이 왠지 버릇없고 건방지게 보이는 건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내 마음이 삐딱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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