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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심양고궁
고궁심양고궁 ⓒ 이정근

정복자가 대륙을 호령했던 곳 '요하'

연재기사 '소현세자'를 준비하기 위하여 18일 중국 심양을 찾았다. 심양은 소현세자가 볼모생활을 했던 곳이고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삼학사가 처형된 곳이다. 1637년 1월 30일. 인조임금이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세 번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는 치욕을 당한 이래 원한에 사무친 조선 사대부들이 북경 연행 길에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땅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방문한 이래 16년만이었다. 공항은 확장되었고 건물은 다시 지어 커 보였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화장실을 찾았다. 예전엔 조명도 어둡고 지저분했는데 더운물도 나오고 깨끗했다.

지인을 만나 요하(遼河)로 차를 몰았다. 심양을 찾으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요하와 고궁이었다. 대륙의 정복자들이 쟁투를 벌이던 곳 요하. 장강을 점령한 패자가 중원을 석권했고 요하를 차지한 정복자가 대륙을 호령했던 곳이 요하다.

요하는 요수 또는 대요수라고 부르기도 하거니와 구려하(句麗河)라고도 불린다. 고구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다. 요하 이남은 고구려 권역이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요하는 훈허(渾河)강을 만나 굽이굽이 1,400km 광활한 만주벌판을 적시며 발해로 흘러든다. 요하를 기준으로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지방이라 부른다. 심양에서 요하를 건너면 진정한 의미의 중국 땅에 들어가고 장성(長城)권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요하. 얼어붙은 요하
요하.얼어붙은 요하 ⓒ 이정근

"조상님이여, 나 당나라 왕 이세민을 구해주소서!"

심양 서쪽을 흐르는 요하는 영하 21도를 밑도는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다. 제방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얼어붙은 강물과 황량한 벌판뿐, 을씨년스러웠다.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에 당태종 이세민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국력을 소모하여 패망의 길로 들어선 수나라를 멸하고 대륙을 평정한 당태종은 고구려를 주머니 속의 작은 물건으로 생각했다. 당태종은 17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계절을 잘못 선택했다. 요동벌판의 혹독한 추위는 당나라군에게 크나큰 재앙이었다. 포차와 당차를 동원하여 안시성을 공략했지만 양만춘에게 패하여 눈을 잃고 패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당나라군 퇴각 경로는 요하 하구 쪽이었다. 겨울에 꽁꽁 얼었던 진흙땅이 해동과 함께 늪지대로 변하는 지역이다. 군사는 물론 군마와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수레도 삼켜버리는 무서운 지역이다.

"조상님이여, 나 이세민을 가엽게 봐주소서. 내가 조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말을 타고 진흙구덩이에 빠지니 만민을 통치하는 황궁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말을 아무리 때려도 진흙구덩이에 빠져 나갈 수 없으니 나 황제인 것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내 너무나 상심하여 두 눈에 눈물이 흐르니 나 당나라 왕 이세민을 구해주소서!" <설인귀과해정동백포기(薛仁貴跨海征東白袍記)>

잠간이지만 아쉬움에 잠겼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심양을 발판으로 대륙을 정복했다. 심양을 장악한 몽골족은 원나라를 세워 중원을 재패했다. 헌데, 심양을 손아귀에 넣은 한민족은 왜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했을까? 고구려는 왜 대륙의 심장부에 삼족오 깃발을 꽂지 못했을까?

요하. 요하가 공원화 됐다.
요하.요하가 공원화 됐다. ⓒ 이정근

한반도인이 대륙인을 얕잡아 본 유일한 시기

16년 전, 한-중수교로 대륙에 드리워졌던 '죽의 장막'이 걷혔다. 오랑캐들이 득실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륙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마에 뿔이 났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뿔도 없었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곤궁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무시했다. 오만이다. 단군 이래 한반도인들이 대륙인들을 얕잡아 보았던 유일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시기는 아주 짧았다.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던 중국은 한국을 제치고 일본을 따라 잡았다. 우리가 88올림픽을 치르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듯이 중국이 금년에 개최되는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요하에 두 발을 딛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 민족이 심양에서 멈추고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민족 특유의 자만심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흑룡강에서 요하까지 차지했으면 됐지 황하나 장강을 차지해서 뭐하나? 하는 이런 생각 말이다.

외국 원조식량으로 연명하던 백성들이 배고픔을 해결하고 조금 잘 살게 되니 비생산적인 곳에 돈을 펑펑 쓰고 안하무인이 되었다. 우리는 강남 졸부를 경멸한다. 돈밖에 모르는 저질스러운 인간쯤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세계인의 반열에서 보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심양 고궁 대정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왕과 팔기군 사령관들의 정소가 있다
심양 고궁대정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왕과 팔기군 사령관들의 정소가 있다 ⓒ 이정근

372년 전 우리의 강토를 짓밟은 팔기군 깃발

팔기군 깃발  심양고궁에 전시돼 있다.
팔기군 깃발 심양고궁에 전시돼 있다. ⓒ 이정근
차를 돌려 고궁으로 향했다. 청나라를 세운 누루하치와 삼전도에서 조선 임금 인조로 하여금 땅에 이마를 찧으며 항복하게 했던 홍타이치가 군림했던 황궁이다. 예술과 문화와 거리가 먼 만주족이 세운 궁궐이어서일까. 한국의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같은 고결한 향취는 없었다.

우리의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대정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좌익왕, 우익왕 거소와 팔기군의 황기정, 홍기정 등 팔기군 사령관들의 정소가 있었다. 팔기군의 깃발을 보는 순간, 저 깃발이 372년 전 우리의 강토를 짓밟았던 청나라 기병들이 펄럭이던 깃발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싸했다.

황궁 뜰 전각과 전각 사이에 홍이포가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중무기라곤 천자포(天字砲)밖에 없던 조선에 홍이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남한산성에 은신하며 항전하던 인조 임금과 조선 사대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대포다.

홍이포. 병자호란 당시 최신 무기였다.
홍이포.병자호란 당시 최신 무기였다. ⓒ 이정근

오랑캐가 성 안에 대포를 쏘았는데 대포의 탄환이 거위알 만했으며 더러 맞아서 죽은 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 <인조실록 정축년 (1637년) 1월 19일>

적이 망월대 밖에 10여 대의 대포를 설치하고 또 남격대 밖에 7, 8대를 설치하였는데 대포의 이름을 호준이라 하고 일명 홍이(紅夷)라고도 하였다. 탄환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능히 수십 리를 날 수 있었는데 매양 행궁(行宮)을 향해 종일토록 끊임없이 쏘았다. 탄환의 위력은 사창(司倉)에 떨어져 기와집 세 채를 꿰뚫고 땅 속으로 한 자 가량이나 들어가 박힐 정도였다. - <연려실기술 1637년 정축년 1월 25일>

고궁. 황제의 생일이나 전승을 기념하는 연회장소로 쓰였다.
고궁.황제의 생일이나 전승을 기념하는 연회장소로 쓰였다. ⓒ 이정근

항복한 나라의 왕자, 얼마나 예우했을까?

고궁을 다 살피지도 않았는데 날이 저물었다. 일단 철수했다. 이튿날 다시 고궁을 찾았다. 남문 밖 왕자관에 기거하던 소현세자가 부름을 받고 황제를 알현하던 체취를 찾기 위하여 샅샅이 뒤졌다. 후원에 우리의 경회루와 비슷한 연회장소가 있었다. 황제의 생일이나 황후의 생일에 잔치를 벌이던 곳이다.

소현세자를 시종하던 시강원 관리들이 쓴 <심양일기>에는 세자가 황궁 연회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흔적은 없었다. 있을 턱이 없었다. 청나라 조정이 소현세자를 왕세자로 깍듯이 예우했다 하지만 무력으로 항복을 받아 낸 나라의 왕자가 아닌가. 전리품이나 다름없는 왕자를 예우해주었으면 얼마나 해주었을까?

날이 어두워졌다. 고궁을 뒤로하고 거리에 나왔다. 황궁에 황혼이 내린다. 노란 색깔에서 소현세자의 환영이 그려졌다 지워진다. 전승국의 연회에 마지못해 참석해서일까? 세자의 모습이 어둡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인 것만 같았다.


#심양#소현세자#고궁#병자호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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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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