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어지러운 세상이다. 진실과 거짓이 가름하기 어려울 만큼 뒤섞였다. 날선 담론들이 춤춘다. 어제의 벗들 사이에서 살기마저 오간다. 어떻게든 '중재' 해보려는 이에게도 어김없이 ‘딱지’다. 그 결과다. 아무런 조직적 연관도 없는 내가 '자주파'란다. '민족주의자'란다. 심지어 '진보의 탈을 쓴' 누구란다. 수구나 자유주의 세력으로부터 날아온 게 아니다. 한 줌도 안 되기에 서로 보듬어 왔었다고 '착각'한 진보진영에서 쏜 화살이다.
솔직히 절망감이 든다.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을 쪼개면서 분당이 아니라 신당이란 주장 앞에선 더 그렇다. 왜 정직하게 분당이라 하지 않는가. 현학으로 진실을 가릴 셈인가.
분당이 아니라 신당이라는 주장 앞에 절망한다 '딱지 붙이기'도 그칠 줄 모른다. '종북주의'란 말이 지금도 횡행한다. 그 규정이 잘못임을 이야기해도 되돌아보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외려 종북주의란 딱지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을 되술래잡는다. 종북주의가 없다는 말이냐고 눈 부라린다. 종북주의 실체 이전의 문제를 따지는 데 실체를 추궁한다. 공안당국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종북주의 마녀사냥에 이어 '민족주의'까지 내친다. 어느새 민족을 거론하면 수구세력 되기 십상이다. 기막힌 일이다.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은 대외적으로 민족문제가 다시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 공세가 본격화한 데 있다. 냉철히 볼 일이다. 북-미 핵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위기는 증폭될 듯 하다. 그 명백한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니, 그 이전에 6․15 남북공동선언이 조지 부시의 집권 뒤 뒤틀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과 북에 미국의 영향력이 짙게 드리우고 있음을 뜻한다.
자신들의 주관적 의도와 무관하게 2008년 현재 남과 북, 미국의 관계에서 줄기차게 '종북주의'를 들먹이는 사람들에게 제발 성찰을 권한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자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비단 군사적 문제만은 아니다. 경제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대체 이 땅에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이 어떻게 왔는가. 미국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군사적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양날의 칼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걸 미국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과오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책임을 몰각하는 일은 더 위험하다. 보라, 미국을. 강경파는 대북압살정책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부르댄다. '온건파'는 남쪽과 자유무역협정을 발효하고 그를 발판으로 북쪽까지 미국 경제체제에 편입할 속셈이다. 군사적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같은 칼의 양날이다. 그렇다. 명백히 겨레의 위기다. 물론, 겨레 구성원 대다수가 민중이기에, 그것은 민중의 위기다. 그러나 그 현상을 민중의 위기로만 파악해도 좋은가. 아니다. 분명 민족의 틀로 사고하고 그 틀로 상황을 타개해나갈 영역이 있다.
'종북주의'를 들먹이는 지식인들은 군사적-경제적으로 우리 민족과 민중의 삶을 옥죄고 있는 미국의 존재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미국의 문제를 애면글면 제기해온 이들을 싸잡아 겨냥한다.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에 열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주관적 의도와 무관하게 치명상을 입고 있다. 이 땅에서 종북주의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다. 기어이 분당을 하겠다면 하라. 다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바로 직전까지 몸담고 있던, 더러는 놀랍게도 아직도 몸담고 있는 당을 종북주의나 '사교집단'으로 더는 낙인찍지 말라. 의도했든 안했든 통일운동·평화운동마저 재 뿌리고 있는 객관적 사실을 정말 모르는가.
당을 깨고 나가며 민주노동당을 공안색깔로 덧칠 더구나 미국 안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상황 아닌가. 그 뿐인가.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을 보라. 이미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에 적극 나섰다. 그렇다. 위기다. 겨레의 위기가 지금 엄존하고 있다. 그것을 막아내기도 벅찬 진보는 두 쪽 나고 있다. 당을 깨고 나가며 민주노동당을 '공안색깔'로 덧칠하고 있다. 당이 쪼개지면 총선 정국에서 서로 물어뜯고 싸울 조짐이 눈에 선하다. 미소 짓는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가.
진보의 위기, 겨레의 위기다. 진보의 위기와 겨레의 위기가 겹쳐질 때, 그 피해는 누가 보는가. 고스란히 이 땅의 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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