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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동대문 거리 사람들로 붐비던 예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한산한 동대문 거리사람들로 붐비던 예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 정미경

지난 주말 동대문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동대문에 쇼핑을 왔던 것이 지난해 가을이었으니 거의 반 년 만에 다시 동대문에 간 셈이다. 나에게 동대문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볼 빨간 지방 아가씨가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서울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동대문이었다. 2005년 당시 동대문은  시골 촌사람인 나에게 '별천지'였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에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붐비는 동대문이 좋았다.

 

"거기 지나가는 이쁜 언니, 이것 좀 보고 가."

"이거 두벌 사면 2000원 깎아줄게."

"에이, 언니 5000원은  빼주셔야죠."

"어머, 그래서는 원단값도 안나와."

 

장사꾼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봤던 사람 또 봐야 하고, 거리를 걸을 때 절대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 없는 조용한 내 고향에는 없는 그 활기. 그 분주함과 활기가 나를 들뜨게 했고 그래서 동대문이 좋았다.

 

그러나 그 반년 사이에 동대문은 많이 변해있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났을 거리는 한산했다. 밀리오레, 두타 등 번쩍거리는 패션몰과 대조적으로 그 앞에 철거가 진행 중인 동대문 운동장의 외벽에는 철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장사꾼의 흥정 소리 대신, 어수선한 분위기만...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동대문운동장 외벽에 철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붉은 색의 현수막에서 상인들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동대문운동장 외벽에 철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붉은 색의 현수막에서 상인들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 정미경
강체철거 결사 반대 동대문운동장 스포츠 지하상가의 모습. 기둥마다 철거를 반대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강체철거 결사 반대동대문운동장 스포츠 지하상가의 모습. 기둥마다 철거를 반대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 정미경

동대문 거리에는 활기 대신 어딘가 모를 싸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더 많아 보였다. 매서운 겨울바람 만큼 차가운 냉기가 상인들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붉은 현수막에 적힌 말들은 그들의 심정을 말해주었다.

 

'우리나라 패션의 원조', '쇼핑의 중심지' '노동자 전태일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 곳 ' 이 바로 동대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옷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대문에 와서 물건을 사간다. 비단 옷뿐만 아니라 동대문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새로 생긴 청계천을 따라 헌책서점, 신발가게부터 시작하여 평화시장, 디자이너크럽, 뉴존, 밀리오레, 두타 등 대형 쇼핑몰들이 요밀조밀 모여 있다. 20년 동안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지방에서 장사를 했다는 이근옥(52)씨는 "IMF 때도 동대문에는 사람들로 꽉 찼었다. 이 곳을 개발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 어렵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마음도 헤아려줬으면 좋겠다"라며 달라진 동대문의 분위기를 전했다.

 

휘황찬란한 백화점 건물이 곳곳에 들어서고 굳이 동대문을 찾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옷을 사는 것이 더 편리해져 버린 요즘, 동대문은 시대로부터 소외받고 있었다.

 

동대문,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역사속으로 사라질 동대문 운동장의 모습 뜨겁던 관중들의 열기도 목소리도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그 곳에는 아직 서민들의 애환이 남아 있다.
역사속으로 사라질 동대문 운동장의 모습뜨겁던 관중들의 열기도 목소리도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그 곳에는 아직 서민들의 애환이 남아 있다. ⓒ 정미경
마지막 상인들의 외침 "우리를 외면하지 마라" 동대문운동장스포츠 지하상가 상인들은 격일로 시의회와 인권위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마지막 상인들의 외침 "우리를 외면하지 마라"동대문운동장스포츠 지하상가 상인들은 격일로 시의회와 인권위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정미경

동대문 운동장 스포츠 지하상가에도 철거를 반대하는 성명서가 붙어 있었다.

 

‘서울시의 강제철거 오세훈은 사퇴하라’, ‘영세상인 목조이는 서울시는 자폭하라’

 

분노가 그대로 묻어나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눈여겨 읽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곳에서 30년간 장사를 했다는 김용주씨는 "젊을 때 장사를 시작하여 평생을 이 냉난방도 안되는 지하에서 보냈다. 철거하라고 하니 앞길이 막막하다"라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쓰레기에 포장도 제대로 안된 인도, 꽉 막히는 도로에 지저분한 지하상가. 언제 페인트칠했는지 모를 낡은 건물들. 찌든 때가 잔뜩 껴 있는 리어카. 싸구려 물건을 내다 파는 노점상들.

 

동대문은 분명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 개발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동대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오백원짜리 싸구려양말을 파는 할아버지, 백원짜리 찹쌀도넛을 파는 할머니, 어디에 쓰이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요상한 물건을 선전하는 아저씨, 반쯤 손가락이 들어간 오뎅 국물을 건네는 아줌마, 새벽부터 지방에서 올라와 물건을 사가는 언니, 무거운 짐을 오토바이로 겁 없이 나르는 청년 그리고 포장마차의 이천오백원짜리 호박죽으로 고픈 배를 달래는 내가 동대문에 있다.

 

"우리는 맨날 쫓겨만 다녀."

 

18년 동안 가죽피혁노점을 했다는 풍물시장의 한 상인(64)은 말했다.

 

"청계천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지 4년이 되었다. 이제 또 나가라고 하네."

"신설동에 풍물시장 상인들을 위하여 건물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하던데요?"

"여기 들어올 때도 우리가 한 사람당 70만원씩 걷어서 다 만든 거야. 하루 벌어 사는 처지에 그 돈이 어딨어. 심지어 일수 빌려다 쓴 사람도 있어."

"그래도 이렇게 노점이 아닌 곳에서 장사할 수 있다는 거 좋은 거 아닌가요?"

"좋으면 뭘 해, 이렇게 장사하기 좋은 동대문에서도 장사가 안되는데, 거기라고 장사가 되겠어? 나도  아직까지 개시도 못했어. 하도 장사가 안되니깐  그냥 물건 던져버리고 간 사람도 많아."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동대문 멀리서 바라본 동대문의 모습은 마치 끝을 기다리는 백발의 노인과 같았다.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동대문멀리서 바라본 동대문의 모습은 마치 끝을 기다리는 백발의 노인과 같았다. ⓒ 정미경

 

"왜 다들 인터뷰 안하려고 하는 거죠?"

"시청에서 나온 용역들이 기자들 나오면 이름하고 소속 다 적어가. 그리고 전노련 지도부들은 수배령까지 내려졌어. 다들 겁나니깐 앞으로는 못나서고 뒤에서 쉬쉬하는 분위기지 뭐."

"앞으로 철거를 반대하시면서 계속 투쟁하실 생각이신가요?"

"가기 싫다고 하면 어쩔 거여. 결국에는 다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 우리는 맨날 쫓겨만 다녀."

 

나는 아무리 가기 싫다고 발버둥쳐도 결국에는 별 수 없을 거라는 상인의 말에서 그가 평생을 통해 느꼈을 사회에 대한 깊은 패배감을 보았다. 동대문이 품고 있던 이 사람들은 이젠 어디로 가야할까.

 

이 날 내가 3년 전에 보았던 동대문의 열기는 어느새 서글픔으로 남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느낀 동대문의 변화를 솔직히 취재하였습니다.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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