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전이었다. 삼십오년동안 고수해오던 뚜벅이족을 탈피하리라 마음먹고, 부랴부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갓 20개월을 넘긴 둘째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자꾸 뒤로 미루다가는 영영 운전면허를 딸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일 아침 대성통곡하는 둘째를 가까스로 어린이집에 맡기고 무거운 발걸음을 운전면허학원으로 향한 지 한달만에 난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면허증을 받은 날, 남편은 나보다 더 감격스러워 했다. 어찌 한달만에 딸 수 있느냐며, 면허증이 자기것보다 디자인도 세련되고 예쁘다며 호들갑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늘 덩그라니 세워져 있는 차를 이제 마음껏 어디든지 몰고 다니라며 남편은 날 부추겼다.
내가 사는 곳이 일방통행 도로인지라, 비교적 차량도 많지 않고 소통도 원활해 초보자가 운전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나는 뒷날부터 애들 어린이집 보내는 데 차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모두 용감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장롱면허를 벗어날 수 있다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급기야 나는, 남편의 동석없이 처음으로 나에겐 장거리에 해당되는 백화점에 차를 몰고 갔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것부터 초보자에겐 가장 난코스인 한자리 주차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내었다. '역시!'를 연발하며 얼굴엔 함박웃음을 머금고 의기양양했다. 여기까지였다. 나에게 온 행운의 여신은 이후 떠나고 말았다.
쇼핑을 마치고 차를 빼내는 순간, 사건은 시작되었다. 내 차가 주차된 바로 왼쪽에 기둥이 있었다. 기둥에 너무 가깝게 주차를 한터라, 그것을 유념하고 차를 빼야 했는데, 나는 그 상태에서 바로 좌회전을 해버린 것이다. 결과는 찌~~지~~직~!!!
차는 대각선으로 기둥에 걸쳐 꼼작하지도 않고, 순간 당황한 나머지 기어를 후진기어에 놓
고 가속페달을 밟고 말았다. 아뿔싸! 옆차가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외제차였던 것이다. 너무도 다행인 것은 내 차가 기둥에 걸쳐 있어서 외제차를 들이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내차로 모여들었고, 그 틈에서 한 아가씨가 도와주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차는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차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운전석 앞문부터 뒷문까지 페인트칠은 다 벗겨나가고 기둥에 부딪친 곳은 움푹움푹 파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슴은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했다.
따르릉. 따르릉.
"당신! 어디야? 밥은 먹었어?"
평소엔 점심시간에 전화하지도 않던 남편이 이날만큼은 전화를 해온 것이다.
"괜찮아. 당신 다치지 않고, 다른 차 피해 안 줬으면 됐지 뭐. 다행이니까 조심해서 들어가요."
야근을 할 거라던 남편은 서둘러 퇴근을 했고, 딱히 화는 안 냈지만 뒤돌아서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연식이 오래된 차라 정비소에서 고치기는 아까웠던지 며칠후 남편은 마트에서 차색깔과 비슷한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와 열심히 작업을 하더니 탈 만하다며 기뻐했다.
마음놓고 운전하라고, 차는 찌그러져도 사람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던 남편은 가끔씩 차를 탈 때마다 투덜대곤 한다.
"그래도 탈 만했는데, 이젠 폐차를 다 만들어 놨어. 타고 다니기에도 창피하게…."
그후, 한동안은 운전하기가 두려웠다.
가까스로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운전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어제, 사건은 또 일어났다. 둘째가 감기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다. 지하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십여 분이면 진료를 볼 수 있기에 약국 앞에 주차를 했다. 약국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차를 바라보니, 와이퍼에 하얀 종이가 끼여 있었다. 광고전단지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정체모를 두려움이 날 엄습해 왔다.
'과태료부과대상차'
빨갛고도 선명한 글씨의 하얀종이. 주차위반 딱지였다. 약국사람들은 자기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번번히 딱지 떼는 곳이라고. 그동안은 운이 좋았던 모양이라고 한결같이 입모아 말했다.
운전을 못하던 시절, 둘째를 등에 업고 큰애 손을 잡고 버스를 타거나,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먼거리를 두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할 때, 운전만 하면 나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운전에 따른 책임과 의무의 고통을 몰랐던 시절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운전을 하며 일어난 일들로 인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몸이 편해지는 대신 여러 위험들에 대비해 의식은 더욱 날카롭게 칼날을 곧추 세우고 있어야 했다. 보행자일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운전자의 입장과, 몸의 자유로움이 과연 진정한 자유일까라는 우문도 하게 되었으며, 새삼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각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차 견인해 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한때, 환경을 생각해 자신만큼은 대기오염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며 뚜벅이족을 자칭했던 남편은, 오늘도 열심히 자동차정보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고, 자동차 블로셔를 회사별로 펼쳐놓고 꼼꼼히 신차를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