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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제자 스님들이 훨훨 타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다.
스님의 제자 스님들이 훨훨 타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다. ⓒ 임윤수

생자필멸, 태어난 자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게 죽음이니 인생살이만큼 불공평하거나 혼자만이 서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는다는 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연화대를 만들고, 법구를 태워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다비 일을 20년 동안 해왔다면 죽음에도 인이나 무덤덤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 게 죽음인가 보다. 성글게 다듬어진 다비장에서 새끼뭉치를 쌓으며 연화대를 만들고 있는 현호씨(52)씨는 이른 아침임에도 말꼬리가 흔들릴 만큼 술에 취해 있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 장갑을 벗으면 금방 손끝이 곱아오는 추위를 달래느라 마셨는지, 아니면 삭풍보다도 더 차갑게 가슴에 불고 있을 죽음을 삭이느라 마셨는지는 모르지만 취기가 있어 보이는 현호씨는 혀끝은 비틀거릴지언정 새끼뭉치를 쌓아 연화대를 만드는 일만큼은 꼿꼿하고 꼼꼼했다.

 

다비장 가는 길, 눈길이라 아슬아슬 

 

새벽길을 나서 덕유산에 있는 원통사를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1월 30일 11시에 시작되는 정공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원통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대전에서 1시간쯤이 걸릴 것 같은 거리니 느긋하게 갈 수도 있지만 어떻게 다비장이 마련되고 있는가를 목견하려면 조금 일찍 가야 할 것 같아 새벽길을 나섰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일찍 도착한 스님들이 모닥불로 한기를 다래고 있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일찍 도착한 스님들이 모닥불로 한기를 다래고 있다. ⓒ 임윤수

 

헤드라이트를 켰지만 깜깜한 주변에 시야가 주춤거리고, 핸들을 잡은 손조차 하늘하늘 내리는 눈발에 움츠러드니 산길로 접어드는 마음은 아슬아슬하다. 덕유산 IC를 나와 미끄러지기라도 할까하는 조바심으로 산기슭으로 난 길을 얼마 들어가니 공터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먼저 도착한 몇몇 스님들과 신도인 듯한 남자가 행장을 꾸리고 있다. 얼마를 더 가야 하느냐 물으니 3Km쯤은 더 가야 한다고 하며 4륜 구동형 차라면 얼마쯤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해 주차장을 나와 얼마를 더 올라가니 차를 주차시킬 만한 공터에 젊은이 한 명이 서 있다.

 

차를 세우고 주춤거리는 동안 주차장에 있던 4륜 구동형 차가 올라오더니 젊은이를 태워 올라간다. 잠시 망설이다 ‘다른 차가 올라가는데 나라고 못 올라가랴’ 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차에 올라 앞서가는 차를 뒤따랐다.

 

 

올라가는 길은 가풀막졌다. 내려가는 길에 자칫 실수라도 하면 내동댕이쳐지듯 저만큼 아래까지 미끄러질 게 뻔했다. 그렇게 비탈진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전각들의 형체가 저만큼 보인다.

 

주변은 아직 여명 속이고, 다비장이 될 듯한 자리엔 연화대를 만드는데 소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끼뭉치만 수북하다. 어찌되었건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아직은 다비장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니 몸도 녹일 겸 차 안에서라도 잠시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끼줄로 만든 소박한 모습의 연화대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잠시 눈을 붙이는가 했더니 8시 30분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른 차에서 내려 다비장 쪽을 내려다보니 이미 연화대 하단을 쌓고 있는 중이다. 예상했던 대로 새끼줄더미로 연화대를 만들고 있었고, 연화대를 만들고 있는 사람은 봉선사에서 20여 년째 같은 일을 해왔다는 현호씨였다.

 

바닥에는 구들을 놓듯 시멘트 블록을 줄맞춰 놓고, 그 위에 철판을 깔았다. 철판 위로 새끼줄뭉치를 가로 7뭉치, 세로 4뭉치씩을 놓아 장방형으로 만들고, 한 층을 쌓을 때마다 기름을 충분히 먹였고, 꼼꼼히 수평을 맞추며 5층까지 쌓았다.

 

 새끼뭉치로 만들어 놓은 연화대에도 눈이 쌓이고 있다.
새끼뭉치로 만들어 놓은 연화대에도 눈이 쌓이고 있다. ⓒ 임윤수
  펑펑 쏟아진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님들이 합장을 하고 있다.
펑펑 쏟아진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님들이 합장을 하고 있다. ⓒ 임윤수

 

5층까지 쌓은 더미 중앙에 관이 들어갈 수 있는 거푸집을 넣고, 둥그스레하게 다시금 새끼줄뭉치를 쌓으니 연화대의 골격이 갖춰졌다. 그렇게 새끼줄로 만들어진 연화대 둘레에 생나무로 준비한 둘레목을 두르고, 둘레목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연결하고 하얀 헝겊을 씌우니 소박한 연화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굵어지는 눈발에 온통이 소복차림이다. 금방 만들어 놓은 연화대도 어느새 헝겁으로 된 소복 위에 눈 소복을 덧입힌다. 경내일지라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무릎까지 빠질 만큼 눈이 쌓여 있다. 전에 내린 눈이 지금껏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니 산사에 내리는 눈은 자연적 조건도 있겠지만 구도를 위해서라면 장자불와도 서슴지 않는 스님들의 근기를 닮아 속세에 내린 눈과는 달리 쉽게 녹지를 않는 모양이다.

 

산천초목은 물론 영결식장으로 들어서는 스님과 재가불자들 모두가 소복차림이다. 산 아래 까지는 까맣거나 알록달록한 복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원통사로 들어설 때쯤엔 하얀 면사포에 소복차림이다.

 

 눈을 맞으며 스님의 법구를 이운하고 있다.
눈을 맞으며 스님의 법구를 이운하고 있다. ⓒ 임윤수

 

그렇게 모여든 300여명의 사람들이 스님의 법구가 모셔진 법단 앞으로 모였다. 여느 큰스님의 영결식처럼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순백의 눈길만큼이나 애잔한 분위기다. 넉넉하지 않은 공간, 호락호락하지 않은 날씨 탓에 인산인해의 군중은 아니 모였지만 그 호락호락하지 않은 빙판길을 걸어 올라온 추모객들 가슴에서 풍기는 스님에 대한 예경심과 추모하는 마음은 팔만대장경에 담긴 법문만큼이나 크고도 깊다.

 

스님께서는 살아 생전 영정사진 한 장 찍지 않은 듯

 

33년 전인 1975년부터 한국전쟁으로 터만 남아 있던 원통사를 복원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정진수행으로 하셨다니 세수 89세, 법랍 70년 동안 스님께서 살아오신 실천적 수행은 선농일치(禪農一致)로 귀결되었다.

 

식단에 모신 스님의 영정에 자꾸 눈길이 가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스님의 어깨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스님께서 생전에 영정사진 한 장 찍지 않으셨기에 단체 사진에서 스님만을 학대해 영정을 만든 듯하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연화대 네 모퉁이에서 붙였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연화대 네 모퉁이에서 붙였다. ⓒ 임윤수

 

그렇게 펑펑 쏟아지는 눈에 아랑곳 하지 않고 두 손 다소곳이 모으고 있던 모습들, 얼굴이 벌개지도록 추운 날씨에도 고운 목소리로 울려주던 합창단들의 조가와 사홍서원은 그러한 스님이 남긴 청빈의 자취며 인고의 그림자인가 보다.

 

문도회장(門徒會葬)이어서 그런지 행사의 전반을 장례업체인 연화회에서 진행하고 있으니 큰스님의 영결식조차 승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속의 장례업체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아쉽고도 서운하다. 

 

조화 같은 눈꽃, 나풀거리는 꽃상여

 

영결식을 마치니 스님의 법구가 다비장으로 이운된다. 꽃상여가 마련되고, 법구가 이운되는 동안에도 하늘에서는 조화(弔花)같은 눈이 내린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눈이 참배객들의 마음에 입혀주는 소복의 눈이었다면 법구를 이운 하는 동안에 내리는 눈은 스님의 법신에 올리는 적멸의 조화가 되었다.       

 

하늘하늘 흘러내라는 눈송이가 바람결을 따라 너울너울 춤춘다. 풍진(風塵) 같은 세상 뭐 그리 바동바동 살려고 삼독에 젖어 욕심내고, 싸움질하며 어리석게 사느냐며 속세의 마음을 희롱이라도 하듯 보일 듯 말 듯한 몸짓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새끼줄은 재가 되며 스님을 환원시켜갔다.
새끼줄은 재가 되며 스님을 환원시켜갔다. ⓒ 임윤수

 

무시로 다가와 볼때기를 때리고 가는 바람, 회초리처럼 볼때기에 달라붙는 눈발을 더듬으며 스님의 법구를 모신 꽃상여가 움직입니다. 펄럭이는 만장, 나풀거리는 꽃상여, 통곡이라도 하듯 펑펑 쏟아지는 서럽기만한 마음들이 다소곳한 발길을 따라 다비장으로 들어선다.

 

다비장으로 들어선 꽃상여에서 스님의 법구를 모신 관을 분리해 연화대로 모신다. 살아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의 모습, 스님의 상징으로 보였던 법구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려는 환원의 시작이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의 법구가 연화대에 모셔지니 거화를 한다. 기다란 막대 끝에 새끼줄을 둘둘 말아 만든 거화봉에 불을 붙여 연화대의 네 모퉁이에 가져다 대니 삽시간이 불길이 옮겨 붙는다. 몇몇 사람들이 '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나오세요'하고 외쳐 보지만 나올 리도 없고,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불이 붙고, 연화대가 타들어 가는 순간 사람들은 떠난다. 미끄러지며 내려갈 비탈길을 걱정하고, 돌아가야 할 먼 길을 걱정하며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세속으로의 귀가를 서두른다.

 

 

노르스름한 지푸라기 빛을 띠던 새끼줄더미가 한껏 불꽃을 토해내며 검정색으로 되는 가 했더니 어느새 잿빛 잿더미가 된다. 집채만하게 덩치를 드러냈던 연화대가 불꽃을 토해내는 만큼 차츰 사그라지며 크기를 줄여간다.

 

줄어드는 잿더미 사이로 희끗희끗한 것들이 드러나니 스님의 유골이다. 저것은 갈비뼈고, 저것은 다리뼈라고 하며 구경(?)들을 한다. 다비를 하는 동안 유골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 그른 것인지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다. 습골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골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왕이면 유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서툰 다비는 재고되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

 

빤히 들여다보고 어쩌고저쩌고하며 구업을 짓는지도 모르나 종단이나 범불교계 차원에서 다비준비와 절차를 세세히 기록한 교범서(Manual)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스님의 유골이 드러날 때쯤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그동안을 기억하고 당장의 눈앞을 살펴보니 '나무아미타불' 정근이 들리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부터 장례식장에서 곡(哭)소리가 들리지 않더니 산사에서 큰스님을 다비하는 다비장에서조차 '나무아미타불' 정근이 들리지 않으니 이 또한 시류며 가치관의 변모인가에 대한 아쉬운 반문이 생긴다.   

 

생자필멸을 알아도 죽음은 살아 있는 마음을 서글프게 해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눈이 멈췄다. 하얗게 덮인 눈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신다. 가느다랗게 실눈을 하고 바라보는 연화대는 점차 사그라들고 생목으로 두른 둘레목들만 점차 가운데로 기울어지며 합장을 하듯, 연꽃이파리가 모아지듯 한가운데로 모아지고 있다.

 

 스님의 영정에 조차 하얗게 눈이 쌓였다.
스님의 영정에 조차 하얗게 눈이 쌓였다. ⓒ 임윤수

 

올라 갈 때야 겁 없이 올라갔지만 그냥 내려가기는 위험하기도 하고, 엄두도 나질 않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준비성이 좋아 여벌의 체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 체인을 빌리고, 그 분을 따라 산길을 내려온다. 체인을 쳤음에도 내려오는 산길이 만만치 않다.

 

산길을 내려 온 시간이 거반 오후 3시 가까웠다. 아직은 훨훨 타고 있지만 너덧 시간 후면 사그라질 연화대 속에서 몇 과의 사리나 남아 있는 유골을 거두는 것으로 눈으로도 볼 수 있었던 스님의 모습은 마음으로만 보이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 무지개만큼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거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을 알지만 죽음이라는 게 마음을 서글프게 하듯,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을 알지만 이별이던 사별이던 헤어진다는 것 역시 살아 있는  가슴을 서글프게 한다.


#다비#연화대#새끼줄#정공스님#원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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