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자주파는 위대했다. 당내 정보를 외부세력에서 보고한 최기영, 이정훈 당원에 대한 제명을 삭제하는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묻자 주황색 기표가 회의장을 뒤덮었다. 함성과 박수소리가 이어졌지만 그것은 쪼개지는 '아기'의 마지막 비명소리로 들렸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상당수의 대의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며 심상정 비대위원장도 퇴장했다. 이후에 그 역사적인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더이상 '당'대회가 아니었다. 차라리 우물안 승리에 우쭐한 개구리들의 합창대회가 더 어울리는 제목인 듯 했다. 당을 쪼개느냐 아니냐는 극한의 갈림길에서 솔로몬의 지혜라도 발휘되는 듯 가까스로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결국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에서 그 존재는 완전히 부정됐다. 비대위는 그동안 당내 패권주의의 병폐에 대해 과감하게 손을 대려 했지만 패권주의적 다수파는 일말의 타협조차 거부하고 내쳐 버렸다. 결국 마지막 기대와 희망으로 유일하게 유의미한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현실 정치공간에 남아있던 민주노동당은 마지막 사망선고를 받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마지막 사망선고 받다 따져보자. 심상정 비대위의 현상황에서 최선의 안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동안 당내에서 극도의 불신의 원인이 되었던 다수파의 패권주의 폐해에 대해서 단호하게 짚었으며 그것은 극에 달한 분열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에 한정됐다. 비대위는 대신 그간 당활동을 '종북주의'로 규정하는 과도한 비난엔 선을 그었다. 반면 극단적으로 드러났던 '행위'에 초점을 맞춰 단호한 처리를 주문했다.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던 최기영, 이정훈 당원에 대한 제명 결의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당대회에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점이 부각됐다. 하지만 이미 그 점에서는 당에서는 변호인단까지 꾸려 아낌없는 지원을 하지 않았던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이 시점에서는 확인된 '해당 행위'에 대해서 따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대자들은 공안당국의 자료라는 점으로 해당 행위의 증거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본인들의 법정진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은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다른 해외 진보정당과 교류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궤변이었다. 당의 공식 활동으로 하는 교류와 음성적으로 당내 정보를 외부세력에 보고한 것도 구분을 못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당원에 대한 그간 당의 모호한 입장이 분당위기를 불러올 만큼 불신을 키워온 원인이었기에 이에 대한 분명한 정리 없이 당이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다들 너무나 잘 인식해온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수파는 다른 타협적 수정안도 배제시킨 채 제명안 삭제를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아예 명시적으로 분당을 결의한 것이다. 결국 수많은 피와 땀이 서린 진보정당 운동이 가까스로 만들었던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역사, 마침표 찍나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파행과 분열은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이는 당분간 한국정치에서 진보정치의 퇴장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권을 지나는 동안 진보세력으로서는 형해화 되어버렸던 이른바 '개혁세력'은 이미 손학규를 대표로 선출하면서 '우향우'를 선언해 버렸다. 그 대안으로 반짝했던 문국현 전 후보는 결국 대선 후 '개인'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세력의 싸움이 되는 총선을 앞두고 내부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그나마 마지막 진보의 보루나 마찬가지였으면서 또한 유일하게 현대 정당으로서 튼튼한 전국적 조직기반을 갖춘 것이 민주노동당이었다. 어쩌면 이번 논란은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 현실 정치에서 대안세력으로서 도약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가름할 수 있었던 결정적 실험대였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혼란이 지난 총선 의회 진출 이후 전례없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 편향적 폐단을 벗고 심상정 대표가 제시했던 전망대로 이미 불안한 여론을 지피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독선에 정책적 대안으로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선보인다면 전과 다른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기대해 봄직했다. 하지만 이번 당대회를 끝으로 명확히 입증된 것은 얼마나 민주노동당이 퇴행적 운동권 논리에 갇혀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대회에서 느껴지는 것은 대안적 진보정당으로서의 재창당은 고사하고 사상의 자유와 명백한 해당행위도 구분 못하는 '의리'의 정서가 지배했다. 이로서 진보신당 창당운동이 힘을 받겠지만 절름발이를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드러났듯이 신당은 신당대로 '북한을 별도의 주권국가'로만 취급하겠다는,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에 묶여 있다. 자주파를 배제한다는 편협한 기준에 눌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한과는 특수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애써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진보의 대표적 정당으로서 서는데 결정적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진보신당 창당운동도 절름발이 피하기 어려울 듯 그럼 민주노동당은? 일개 종파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만큼 이제 과거의 진보의 대표적 정당으로서의 위치는 이미 상실되었다. 다른 이가 낳아논 아이를 덥썩 받아안은 가짜엄마는 이거라도 어디냐 신날지 모르지만 반으로 갈라진 그 아이는 이미 죽어 있다. 이제 나머지 세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만큼 정책적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정당으로서 선거를 앞두고 백만민중대회 같은 집회에나 온힘을 다 쏟는 퇴행적 운동권의 행태는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에서부터 드러나는 이명박 정부의 독단적인 행태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지는 반면 그 반대 진보진영은 모두 혁신에 실패하고 대선 이후의 궤멸적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경제를 부르짖으면서 민생경제를 외면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기반은 향후 몇 년 이내에 무너질 것은 더욱 분명해 보이지만 그 대안세력이 모두 다 이토록 절망적이라면 암흑의 시대는 생각보다 더욱 길어질 것이다. 자주파와 국가보안법, 확인된 적대적 공생관계 | 결국 자주파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켜 최기영, 이정훈 두 당원에 대한 제명안 철회를 밀어붙였다. 이는 제 3세력인 '다함께'의 지지까지 얻어 압도적 표차로 철회를 관철시키는 결정적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 확인된 것은 자주파와 국가보안법의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자주파측 발언자들은 해당행위를 국가보안법 논란과 분리시키려는 비대위측 주장에 대해 '과연 이것이 국가보안법과 분리시킬 수 있는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맞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국가보안법 덕분이다. 비대위측이 여러번 강조했듯이 한나라당에 자료를 유출했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제명되고 깨끗하게 정리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당원을 끝까지 끌어안아 이를 제대로 처리 못했던 그간 당권파 폐해에 대한 최소한의 청산마저 끝까지 방어할 수 있었던 자주파의 명분 역시 국가보안법이 아니고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이미 질문이 필요없듯이 10여 년간의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을 통해 남북관계가 전례없이 진전된 지금 서민들의 고통과 이른바 남북분단의 '민족모순'은 거리가 그만큼 멀어졌다. 고령화, 양극화, 폭증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 문제 등 어느 하나 남북관계나 반북논리로 설명되는 문제들이 아니다. 하지만, 한 자주파 대의원이 '국가보안법에 굴복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혁신안 쟁점을 규정해 버렸을때 진보정당이 대처해야할 이같은 한국사회 위기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채 당대회장 시계는 갑자기 80년대로 돌아가 있었다. 국가보안법은 한쪽으로는 명분이 사라진 공안기관들이 자신의 존재를 그래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도 역시 여전히 편향된 시대인식을 정당화 시켜주는 마지막 명분이 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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