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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는 <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 시리즈 등 대학생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이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큰 사랑을 받았던 <거침없이 하이킥>은 가족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재미에서부터 미스터리한 일까지를 다룬 시트콤으로, 나 역시 애청자 중의 한 명이었다. 함께 웃고 울었던, 그토록 사랑했던 시트콤이 끝난 이후에 <김치 치즈 스마일>은 보지 못하다가 그마저 끝나고 새롭게 시작한 <코끼리>를 몇 편 챙겨 보게 되었다.

 

일단 폭소를 원하는 시청자라면, 이 시트콤은 추천하지 않겠다. 하지만 은은한 웃음 뒤에 코끝이 찡해지는 눈물을 원한다면 한 번쯤 채널을 멈추고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면, 오늘 방송을 보다가 움찔, 울 뻔했기 때문이다.

 

4일 방송분의 제목은 '발가락이 닮았다'다. 할아버지 주현(주현 분), 아버지 주복만(이병준 분), 복만의 둘째 아들 주성현(백성현 분)은 발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여 물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복만의 큰아들인 상엽(이상엽 분)은 그들과 다르게 발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들과 다르게 매운 것도 잘 못 먹는 상엽은, 자신도 그들과 같은 주가네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 열심히 발가락 연습에 매진한다.

 

은은한 웃음 뒤에 코끝 찡한 눈물 선사하는 시트콤 <코끼리>

 

엄마(김미경 분) 눈엔 자신을 닮았음이 분명하여 대학까지 간 큰아들이 발가락 연습을 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상엽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가족과 다르고 싶다는 마음 한편에, 가족과 같은 점을 발견하면 드는 뿌듯한 기분 같은 것. 혹은 다른 형제(자매)는 같은데 나만 그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때 밀려드는 소외감 같은 것.

 

생전 사고 한 번 안 치던 상엽은 그리하여 포장마차에서 싸움까지 하게 된다. 발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먹다가 넘어지면서 그만 옆 테이블까지 넘어뜨려 시비가 붙은 것이다. 하지만 상엽에겐 달려와 줄 가족이 있다.

 

상엽과 싸웠던 손님은 '세상에 발가락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가족이 어디 있냐'고 소리치며 황당해 하지만 포장마차로 달려 온 주현, 복만, 성현은 발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먹는 모습을 보여 줘 손님을 당황케 한다. 발가락이 닮았어도, 안 닮았어도 그들은 가족이다. 위급한 순간에 나타나 힘이 되어 주는 가족. 물론 상엽을 빼고 자기네들끼리 매콤한 낙지를 먹으러 가긴 해도 말이다.

 

힘들 때 '힘'이 되는 건, 결국 '가족'뿐

 

 

복만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국영수(권해효 분)의 직업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책 좋아하지 않으시냐고, 책 사이에 봉투를 넣어 건네는 학부형에게 정중하게 봉투를 돌려주고 책만 받는 그런 선생이다. 하지만 셋이나 되는 딸들의 등록금과 학원비와 용돈 걱정에 대리운전까지 시작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자신보다 어린 남자에게 반말을 듣고, 급기야 아들 뻘 되는 손님과 몸싸움까지 하게 되는 영수. 영수는 '아버지'이기에,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도 마땅히 해야만 하는 걸까.

 

파출소로 달려 온 영수의 딸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용돈 벌이를 하겠다고 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게 돈 버는 거라고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딸들이 어릴 때 영수가 그랬듯이, 이번엔 딸들이 영수를 안아준다.

 

딸들의 품에서 "고맙다"고 중얼거리는 영수의 모습은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느 순간, 가족이 짐처럼 느껴져 힘든 순간이 온다고 해도 그 순간 안아주며 힘이 되어 줄 사람 또한 가족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어릴 때는 밖에서 술 먹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희미하게나마 이해가 간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밖에서 치여 술 한 잔에 위안을 삼고 집에 들어오면, 그런 아버지와 대화조차 않으려 했던 시간들. 그렇게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줄어들고, 기껏 열심히 돈 벌어 대학 보내 놓으면 자식은 자신을 위해 뭘 해준 게 있냐고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뿐이다.

 

이 시트콤의 강점? '부성애'를 다룬다는 것

 

CF에 나온 노래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건 다 옛말이지 않을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지, 또 자식은 자식대로 얼마나 힘든지, <개그콘서트>의 코너처럼 정말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정이긴 해도, 말해야 더 잘 아는 사랑도 있지 않을까.

 

친구인 복만과 영수는 학교에서는 사제지간으로 나온다. 또한 집에서는 집주인과 세입자로 변한다. 그러한 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트콤의 강점은 '부성애'를 다룬다는 것이다.

 

앞으로 신인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가 좀 더 능숙해져 중년 연기자들의 코믹한 연기와 함께 잘 조화를 이룬다면 <코끼리>는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시대의 아버지와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다 진한 웃음과 따뜻한 눈물로 담아낸다면 시청률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 시트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마라톤의 초반 부분을 지나가는 이 시트콤의 종점에 격려의 박수가 쏟아지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티뷰기자단


태그:#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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