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선 전 한참 운하 논란이 커지고 있을 무렵 씨엔엔 닷컴(CNN.com)에서는 미국 내 최악의 토목 프로젝트를 선정, 발표했습니다(2007년 7월 27일).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5 of the largest, oddest and most useless state projects" 가장 크고, 괴상하고, 쓸모 없는 국가 프로젝트 5선
5대 바보 짓거리 중 1위는 인디아나 주에서 70년대 후반에 시행한 세계 석회석 테마파크 (Limestone Capital of the World)였고, 2위가 플로리다 관통 운하 계획이었습니다. 이는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서 시사점이 많은 관계로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로리다 관통 바지 운하 (The Cross Florida Barge Canal) 계획
지도에서 플로리다 관통 바지 운하(이하 플로리다 관통 운하)의 노선을 볼 수 있습니다. 플로리다 관통 운하 프로젝트는 플로리다 반도의 북쪽 입구 107마일(약 172km)을 횡단하여 대서양과 멕시코만의 물길을 연결할 목적으로 승인 되었습니다(1942년 7월). 이로 인한 거리 단축 효과는 500여 마일(805km)에 달하며 한반도의 경우라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연결하여 동해와 서해를 잇는 수로계획 정도 됩니다. 깊이 12ft(3.7m), 최소 바닥 넓이는 150ft(45.7m)로 5개의 갑문(Lock)과 3개의 댐, 인공 수로를 이용하여 바지선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초기의 목적이었습니다. 최종 28% 정도의 공정률을 보인 상태에서 순 공사비 7천여 만불(당시 화폐 기준, 우리 돈 700억 원)을 뒤로 한 채, 거의 50년이 지난 1990년 11월 공식 사망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플로리다 관통 운하의 동기 최초 플로리다 반도 관통 계획은 1567년, 스페인 국왕 필립 2세에 의해 제안되었습니다. 당시 기술 수준과 경제력으로 비추어 볼 때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인근 해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과, 허리케인을 포함한 각종 기상 악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로를 원하는 것은 러시아인들이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갖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경제 공황으로 수 많은 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요구하던 1930년대, 플로리다 정치인들은 경제 복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운하를 들고 나와 연방정부에 로비를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미 여러 지역에 토목 공사를 통한 예산 지출 사업을 펼치고 있던 터, 1935년에 예비비를 지원받아 운하 사업이 시작됩니다. 곧 6천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습지와 약 16제곱 킬로미터 면적에 달하는 숲을 베어내었으며, 일만 세제곱 미터에 달하는 표토층을 걷어 버리고, 원래 주인들이었던 야생 동식물들을 쫓아 내었습니다. 사업은 1년 정도 진행되다가 자금 고갈과 수자원의 교란 문제를 들고 나온 반대세력으로 인해 잠정 중지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이미 내륙 수송의 중심이 주운으로부터 기차와 트럭으로 넘어간 상태였지만,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운하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토목 공사를 벌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의회의 승인 (1942년), 간헐적 공사 운하를 뚫으려는 토목/공병 공사(Army Corps of Engineers)를 포함한 미국 내 토건족들의 로비는 결국 성공하여 1942년 미 의회의 승인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한참 전쟁 중이라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여 공사는 진척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실질 공사 진행은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백만 불(10억)을 프로젝트에 할당하여, 그 이듬해인 64년 예산이 확보되자 가능했습니다. 이 시기는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등,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개척자 정신"이 사상적 주류를 이루었고, 습지를 개간하여 농토로 전환하는 사업에 보조금을 지불하던 때였습니다.(루이지애나의 미스터고 운하 준설도 이 당시 이루어졌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운하 사업을 재개한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플로리다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사업 재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앞서 언급한 토목/공병 공사가 당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계산하여도 비용 대비 편익이 형편없이 작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국토 개조(land enhancement)라는 신조어를 들고 나와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이들이 잔혹하게 플로리다를 파괴하는 동안, 당시만 해도 유치한 수준이었던 환경운동 단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합니다. 이때 마조리 카아(Marjorie Harris Carr)라는 여류 환경 운동 영웅이 나타났습니다. 공사중지, 환경 운동의 대두 카아 여사는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플로리다 환경 운동가였으며, 미 연방 야생동물 관련 부처의 최초 여성 공무원이었습니다. 여사는 플로리다 관통 운하 건설을 막고 운하와 댐으로 인해 악화된 수질과 수몰, 이로 인해 심각한 환경 피해를 입은 "오클라와하(Oklawaha)"강을 복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플로리다 환경 연합이라 할 수 있는 플로리다 환경의 수호자들(Florida Defeders of the Environmental)에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카아 여사는 각종 토론회에서 운하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철저히 반박했습니다. "Here, by God, was a piece of Florida, a lovely natural area right in my back yard, that was being threatened for no good reason," - 나의 뒷마당에 있는 사랑스런 자연, 플로리다의 일부가 돼먹지도 않은 이유로 위협을 당하고 있구나.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반대로 공사는 1971년 1월에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20여 년 방치되다가, 1991년에 가서야 공식적으로 프로젝트 계획이 취소 되었습니다. 이미 준설된 구간은 여사를 기리기 위해 "마조리 해리스 카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한반도 운하와의 유사점과 차이점
플로리다 관통 운하는 한반도 대운하와 판박이라 할 만큼 여러 면에서 유사합니다. 반도 관통, 일자리 창출이라는 절대 명분, 자연 그 자체로부터 아름다움과 경제적 가치를 볼 줄 모르는 토건 세력, 당시만 해도 미약했던 환경 단체, 그리고 대선 공약의 일부라는 점까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경우가 다르다고 우기실 분들을 위해 차이점을 몇 개 열거하겠습니다. ① 지형, 지질 조건 - 플로리다 반도는 과거 낮은 바다였던 평평한 지역으로(사진 참조) 최고 해발 고도가 20m를 넘지 못합니다. 게다가 과거 바다 환경에서 수많은 조개 껍질이 암석화 되어 생긴 석회암이 반도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하여, 금이 박혀 있지는 않지만 발파 작업의 부산물들은 시멘트의 원료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습니다. ② 구간 연장 및 거리 단축 효과 – 운하의 경제성과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플로리다 관통 운하는 172km의 길이에 800여 km의 운송 거리 단축이 가능하나 경부운하의 경우 총 연장 550km에 거리 단축 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③ 물류 수송 – 운하와 갑문의 규모가 문제이긴 하지만, 대서양과 멕시코만 사이 통과 통행 물류를 일부 흡수할 수 있습니다. ④ 수량 유지를 위한 댐과 보의 개수 3개, 바지 터널 및 리프트 없음. ⑤ 건설비 – 28%의 공정을 마친 상태에서 700억 원(7천만 불)이 소요 되었으며, 100% 완료 시 총 건설비는 2500억 원(2억5천만 불) 정도가 됩니다. 당시와 현재의 화폐 가치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므로 한국의 1960년대 방직 공장 여공들의 평균 월급을 토대로 현재의 공사비를 추정해 보겠습니다(한국과 미국의 물가 상승률에서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1964년 한국 여공들의 평균 임금이 3500원 정도였고, 현 세대의 비정규직 표준 임금인 88만원은 당시 임금에서 약 25배 정도의 액면가 상승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60년대의 2500억 원의 25배인 6조 3천억 원을 플로리다 관통 운하의 현재의 공사비로 추정합니다. ⑥ 플로리다 관통 운하의 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해야 할 만큼 조밀한 개발지역이 아닙니다. ⑦ 이밖에도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미국에서는 댐을 지어도 "배가 다니면 스크류가 산소 공급을 하기 때문에 수질이 좋아진다"는 식의 궤변이 통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카아 여사 같은 환경 영웅이 탄생할 수 있었죠. 60년대 미국의 토건족들도 관통 운하가 경제성이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찾아 보아도 한반도 운하가 플로리다 관통 운하보다 유리한 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 운하 찬성 측에서는 경부운하 건설비로 15조면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만 그 비용으로 터널과 리프트 공사라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적어도 순 공사비로 플로리다 관통 운하의 10배인 60조는 소요될 것입니다. 수심을 맞추기 위해 암반을 부수거나 운하 구간을 따라 제방을 쌓는 난공사가 될 테고, 필요한 갑문과 댐의 개수도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장담컨대 정주영씨가 살아 돌아와도 5년 안에 못 마칩니다. 결론 – 한반도 대운하가 가져올 결과들
지금까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하여 수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크게 보아 경제성, 수질, 홍수 및 생태계 파괴 정도로 압축 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께서 노력을 기울여주셨으므로, 다시 의견을 추가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대운하 사업은 운하 구간을 따라 수많은 수몰지구를 만들고 겪어 보지 못했던 극심한 홍수로 인한 고통을 대대손손 전달할 것이 분명합니다. 또 플로리다 관통 운하를 넘어서서 세계에서 가장 쓸모 없는 토목 프로젝트 1위로 꼽힐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나 대운하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환경운동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지금까지와는 천양지차로 바뀌게 된다는 점, 그리고 이후로는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미국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환경 친화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박정희식 '하면 된다'의 원조는 케네디 시절의 미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6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한 "할 수 있다 - 묻지 마라 (can-do, ask-not)" 구호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삽질의 결과 미국 국민들은 무절제한 토목 사업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환경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부금들이 넘쳐났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해지니 허황된 개발 공약을 입에 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드높아진 국민들의 여론 때문에라도 환경영향평가가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국내의 환경영향평가는 한 마디로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환경영향 평가서를 시공사가 작성하는 있으나마나한 구조이므로, 제가 토건회사 사장이라도 제대로 평가할 리 없습니다. 입찰 따내려고 준비하는 데에만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회사 말아먹을 미친 짓을 어떤 양심적인 회사 사장인들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환경영향 평가서의 결론은 항상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이러한 문제점이 있으나 이러이러한 기술을 사용하여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미국에서 환경영향평가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환경영향평가는 반드시 사업 입찰 전에 이루어지며, 그 결과에 따라서 사업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씨는 한반도 대운하의 환경영향평가를 외국회사에 맡겨서 제대로 평가서를 내겠다고 하는데, 이미 어떤 식으로든 강행할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결론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돈 줄 테니 되는 쪽으로 써달라고 하겠지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의 경우를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이명박씨는 반드시 임기 내에 대운하 사업을 꼭 완성시켜서, IMF 같은 경제 대혼란을 겪고도 아직도 무엇이 원인이었나조차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 못하는 국민들, 현실 정치 참여와 선택한 정치인들을 올바로 감시하기보다는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기만을 원하는 어리석은 국민들을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IMF, 적어도 3번은 더 겪어야 우리 국민들에게 올바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길 것입니다. 특히 공약이 가져올 변화와는 상관없이 지역과 종교의 동질성만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는 반드시 낡은 시대 저편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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