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로 올라서니 차가운 겨울바람에 코끝이 알싸하다. 경복궁 매표소에서 3000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했다.
입장권 한 장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물론 경복궁과 국립고궁박물관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 우측 담장에 난 작은 문을 통과하자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다국어 음성안내기를 대여한다는 내용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전시설명이 이루어진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전시관 입구로 들어서니 세종 때 만들어진 측각기인 혼천의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혼천의를 둘러싸고 앉아 열심히 설명을 옮겨 적고 있었다.
제1전시관 구석기에서 엊그제까지 한민족 생활사
1관에 들어서니 먼저 구석기와 신석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기록이 벽면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연도 기록 사이에 사진과 자료도 몇 점 있었다. 임시정부시절에 사용했던 태극기가 있는데 하얀 천에 색실로 수놓아진 태극기가 요즘 보는 태극기와 사뭇 달라 보인다. 건곤감리는 그대로인데, 태극무늬의 빨강·파랑 경계 부분 물결 모양이 지금보다 더 심하게 출렁이고 바탕 천 크기도 직사각형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였다.
본격적으로 석기 시대를 출발하여 청동기 시대에 멈춰서니 한쪽 벽면에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이 큰 화면에 나오는데, 바위 속 고래가 헤엄쳐 다니고 가축을 치는 모습 등의 영상이 한창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얼마 전에 새 단장을 했다더니 벽면마다 옛 그림으로 구성한 애니메이션이 곳곳에 상영되고 있다.
철기시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철갑옷이었다. 철을 얇게 펴서 옷을 만든 기술도 대단하다 싶었지만 저 옷을 입고 싸운 장수들을 생각하니 얼마나 무거웠을까 싶다.
조선시대로 접어드니 물고기와 꽃그림 등이 그려진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가 멋지게 전시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고문서들이 많이 전시돼 있는데그 중 눈길을 끈 것은 인쇄도구였다.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사각 블록에 한문을 한 글자씩 양각으로 판 뒤 큰 판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짜 맞춰 넣어 인쇄판을 만드는 것이다.
옷장과 책장도 있었는데 책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칸칸이 세워 끼우는 형태가 아니라 옷장처럼 생겼는데 기역자 모양으로 덮인 뚜껑을 열면 책을 넣는 공간이 나오는 형태로 돼 있었다. 그 안에 책을 차곡차곡 쌓아 넣고 뚜껑을 덮어 보관했던 모양이다.
20세기로 넘어오니 축음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네모 상자 위에 커다란 나팔을 연결해 놓은 모양인데 상자 옆에 손으로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초기에 사용된 바늘과 담뱃갑, 인조사향(향수) 등이 벗처럼 곁에 자리했다.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소형 주름사진기도 전시돼 있었는데 200㎖ 우유팩 크기 정도로 요즘의 최신 디카 못지않게 깜찍하고 예쁘다.
한쪽에서는 ‘외국인이 본 100년 전 한국문화풍경’ 영상도 보여준다. 독일인 헤르만 산더가 1906년부터 이듬해까지 우리나라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자료를 토대로 만든 영상인데 사진 속 장소를 2006년에 찍어서 두 모습을 비교하며 보여주었다. 거리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으나 문화재들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드니 유리벽 안으로 당시의 가정집 모습을 실물 크기 그대로 옮겨놓은 모형이 있었다. 그 앞에서 아빠와 딸의 대화를 들었다.
“9번을 누르려면 9에 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 돌리는 거야. 1번은 조금만 돌려도 되지만 9번은 많이 움직여야 하니까 힘들었겠지?”
요즘에는 보기 힘든 다이얼식 전화기를 두고 하는 대화였다. 아빠는 번호를 돌려서 전화를 걸었다는 설명을 하는데, 버튼식 전화기만을 봤던 아이는 그것을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1관에서 2관으로 가는 길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의복이 전시돼 있었다. 실물크기 마네킹 왕족이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마치 부부동반 삼국 대표 회합 같다. 2관 입구에는 조그마한 생활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 중 아이스크림 바의 막대처럼 생긴 ‘살쩍밀이’라는 게 있었는데 상투를 틀 때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살쩍)을 망건 밑으로 밀어 넣는데 사용했던 도구란다.
제2전시관, 생업·공예·의식주 다 모였네
2관 생활관에 들어서니 커다란 장승이 전시관 가운데 우뚝 서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정초의 농촌풍경 모형이 있는데 이편에서는 널뛰기·윷놀이·제기차기·연날리기를 하며 놀고 저편에서는 달맞이·별신굿·풍악을 울리며 신명난 놀이판이 벌어지고 있다.
생활관에는 토끼 덫·두더지 덫 등 각종 덫과 함께 뱀 집게가 있었는데 가위처럼 X자로 교차된 것부터 손잡이를 잡으면 끝부분이 함께 잡힐 수 있도록 만든 변형된 집게 모양까지 그 종류만 대 여섯 가지다.
어로생활 바다모형에서는 그물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고깔모양으로 만들어져 바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안강망과 커다란 바가지 모양 채틀망을 배 양쪽에 매단 배 등이 있었다.
목칠공예 코너에는 옻나무에 칼날로 홈을 파서 옻을 채취하는 과정부터 공예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설명돼 있다. 옻은 나무가 썩거나 물이 새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나무장에 그림을 그려 자개를 붙이고 옻칠을 한 후 숫돌로 갈고 다시 옻칠하고 긁어서 광을 내는 과정을 거쳐 나전칠기가 완성된다는 설명과 사진을 보면서 '전에 자개장을 보면서도 단순히 자개를 붙여 만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거였구나'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엔 신발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 가죽 미투리, 굵은 짚으로 짠 등구니신, 나뭇가지로 만들어 눈 내린 날 신 바닥에 덧대어 신는 설피 등 흔히 아는 짚신과 고무신부터 가죽장화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신발이 전시돼 있었다.
밥상차림도 생각보다 종류가 많았다. 일상 먹는 밥상차림부터 교자상과 면상, 그리고 설날·대보름·입춘에 먹는 절식 등 다양한 세시음식도 한상씩 차려 있었다. 각종 떡 종류도 있었다. 과연 민속박물관에는 민속에 관련된 것은 거의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제3전시관 가는 길에 어린이 민속박물관이 있었다. 어린이 민속박물관 입구에 동화책 파는 곳이 있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왜 벽화를 그렸나요?’, ‘고조선을 왜 비파형 동검의 나라라고 하나요?’, ‘백제를 왜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하나요?’ 등 박물관의 느낌이 드는 제목의 책들이 많았다.
어린이 민속박물관에는 쌀·보리 등 여러 가지 곡식을 직접 만져보고 컴퓨터로 민속 퀴즈를 풀거나 아바타에 한복 입혀 꾸미기도 하고 조각블록으로 한옥을 조립하고 나무 판에 한지를 놓고 탁본을 뜨는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가득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와서 물레를 돌리고 다듬이질을 해보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어린이박물관은 아이들과 부모에게 인기가 많아서 주말엔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기다리지 않고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제3전시관엔 한국인의 일생 '차곡차곡'
3관에 들어서자 혼례 모습을 실물크기로 만들어 놓은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연지곤지를 찍은 수줍은 신부, 닭 두 마리와 청·홍 초가 놓인 상, 그리고 의젓한 신랑. 그 옆엔 혼례 뒤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갈 때 타고 갈 가마가 놓여 있다.
그 옆으로 돌아들어가니,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관리가 타던 ‘초헌’이라는 외발 수레가 있다. 기다란 막대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의자를 얹어놓은 모양인데, 의자 아래에 바퀴 하나가 달려 있다. 4명 또는 8명이 이 초헌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바퀴가 있어 가마꾼들이 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듯했다.
한쪽 유리 기둥 안에는 가야금·거문고·아쟁·해금·장구·향피리·대금·단소 등 우리나라 정통악기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 앞에 놓인 수화기를 통해 각 악기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용 격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