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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1월 27일)에 그 재밌던 <며느리 전성시대>(KBS 주말드라마)가 종영되었다.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며느리들을 핵심 소재로 해서 다룬 신선한 드라마이기도 했고, 나오는 극 중의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미묘하고 세세한 내용들을 잘 그려낸 작가의 필력이 돋보인 작품이라 눈을 떼기 어려웠다. 적어도 우리 집에선 그랬다.

 

이제 그 시간 대에 무슨 낙으로 사나. 과연 다음 드라마도 <며느리 전성시대>만큼 재밌을까. 잘 나가는 드라마 후속편은 잘 못나간다는 속설을 뒤집을 수나 있을까. 미리 본 후속 드라마의 예고편의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하고 많은 제목 중에 <엄마가 뿔났다>가 뭐냐. 제목부터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이라 기대가 별로 안 된다며 아내와 내가 합의(?) 했는데….

 

그렇지만, 그것도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일 뿐. 어떻게 하나, 어떻게 시작 되나 눈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주말에 그 시간이 되니 아내와 나는 저절로 그 채널, 그 드라마에 눈이 고정되는 마법에 걸린 것이다.

 

 

일단 출연 배우들은 화려한 거 같다. 김수연 작가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거의 다 화려한 배우들로 엄선(?)한다는 소문이 아줌마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바 이번에도 그 기대(?)를 어기지 않았다. 김혜자, 강부자, 백일섭, 이순재 등 무게 있는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다가 드라마 단골 소재인 연인 간의 사랑이나 부부 간의 불륜을 다룬 것이 아닌 서민 가족들의 삶을 다룬 것이니 친근한 것이리라. 종전 <며느리 전성시대>도 그런 연유로 단골 시청자가 된 것일 터.

 

이번 드라마 작가 김수연씨도 그걸 노린 걸까. 어쨌든 이 드라마가 우리 집을 공략하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첫 방송이 재밌어야 시청자들을 잡아 끌 수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 이 드라마도 시청자 끌기의 ABC를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온 가족이 난리인 사태가 벌어진다. 3대가 모여 사는 , 그것도 단일 계통이 아니라 고모 가족까지 합해서 8식구와 '객 식구' 한 명까지 보태서 모두 9명. 이쯤 되면 다양한 세대와 분야를 터치할 수 있는, 그래서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안성맞춤의 구조인 셈이다. 역시나 김수연 작가다 싶다.

 

못난 아들의 연인이라며 무려 임신 7개월째가 된 만삭의 여인(김나운 분)이 등장하면서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지고. 그 여인이 그 집 아들과 결혼할 사이라며 나타나니 뒤집어지지 않을 가정이 있을쏘냐. 바야흐로 게임은 시작된 것. 그것에 대처하는 극 중 주인공 엄마(김혜자 분)를 보며 왜 제목이 '엄마가 뿔났다'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대목이다.

 

 

그런데 2회(2월 3일 일요일) 방송에서 주인공의 생각 하나가 내 마음을 내내 사로 잡는 마법을 걸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나고도 며칠째 그 대사 하나에 내 생각이 머문다. 이게 드라마의 묘미인가 싶다.

 

언제부턴가 웬만한 일에 눈물도 잘 흘리지 않는 냉혈한(?)이 된 나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시한 설교나 영화보다 훨씬 감동적인 게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바로 그 대사가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글의 핵심이다.

 

“누군들 자기 인생이 마음에 들까?”

 

가난한 대가족을 대상으로 살림을 해야 하니 늘 아끼는 생활이 되고, 모든 가족들의 건강과 삶을 보살피니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늘 모자라는 엄마. 그런데다가 아들이라고 있는 녀석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약하기만 해서 이번엔 한 여성에게 임신을 시키는 사고를 치고도 모자라 그 여성이 배부른 채로 쳐들어오게 만드니 그 엄마의 속이 어디 속이겠는가. 이런 사태를 차분하게 정리해나갈 틈도 주지 않고 출산을 해야 될 상황까지. 엎친 데 덮치고, 뒤로 자빠져서 코 깨고. 설상가상이 영락없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한 생각이다.     

 

그래 누군들 자기 인생이 마음에 들까. 자기 인생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언제나 마음에 들기야 할까. 마음에 들 때도 있고, 안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들 때가 더 많지 않을까. 마음에 안 드는 데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까.

 

중국에서 결혼하여 한국으로 온 후 3년 도 채 안 되어 한국 남편이 죽고 혼자서 식당을 전전하며 사는 허씨 할머니. 소년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이 탈출하다가 비행기 폭격을 받아 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 아닌 고아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떠돌다 한국에 들어와 아직도 뚜렷한 지위를 보장 받지 못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내 친구 압둘.

 

아들 둘이 멀쩡하다가 초등학교 시절에 갑자기 다리가 아프더니 이제는 둘 다 전혀 걷지도 못하고 몸이 말라 비틀어져 집에서 자신의 간호를 받으며 운명의 날을 기다리는 아들 형제의 엄마인 엄씨 아줌마. 부산 시골에서 살다가 돈을 벌어보겠다고 상경하여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돈을 벌어 자기 집을 마련한 기쁨도 잠시, 부부 싸움과 성격 차이로 인해 아내가 도망가고 아들과 딸을 데리고 6년째 혼자 살며 고향에 가고 싶어도 부끄러워 못가는 김씨 아저씨 등. 

 

이들은 지금도 ‘더아모의집’에서 나누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도 역시나 그들의 인생을 스스로 쳐다볼 때 마음에 안 들까. 아니면 나의 선입견(?)과 달리 꼭 그렇지만은 않을까.

 

이런 결론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이 애잔해진다. 명절이라고 마음이 들 뜨는 것보다 명절의 기쁨으로부터 소외된 그들로 인한 것이리라. 명절이 시작될 무렵에 본 드라마의 대사 하나가 이번 설 명절을 또 숙연하게 만든다.

 

괜히 감상에 젖은 나 자신에게도 물어본다. ‘너는 과연 네 인생이 마음에 드느냐?’고.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태그:#엄마가 뿔났다, #김수현, #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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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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