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30분. La nacion 신문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기자가 없다는 경비 아저씨의 말에 힘이 빠진다. 다음 목적지를 물어보고 가려는데, 차가 한 대 서더니 배가 적당히
나온 중년의 남자가 내렸다. 조나단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자기소개를 하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후 '박남규'라는 한국친구를 알고 있단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모르고 집 위치만 안다면서 자동차로 안내 할테니 따라 오란다. 이 친구는 자전거를 처음 안내하는지 속도를 거의 늦추지 않고 달려서 어느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오! 제대로 온 것 같다. KOREA라는 스티커가 문 옆에 붙어있다. 기자가 소리를 몇 번 지르자 박남규 선생님의 막내 딸인 행미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기자가 상황설명을 하자 어디론가 전화를 한 뒤에 함께 소형차를 타고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아직까지 눈빛이 살아있는 어르신이 반갑게 손을 잡아 주셨다. 박 선생님은 중학교 때(1958년) 운동을 시작하셨고, 한국외국어대 서반어과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셨다.
1970년에 콜롬비아 보고타 경찰학교에서 한국합기도협회에 지도자를 요청했는데 당시 스페인어를 전공하면서 합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선생님이 자연스레 적임자가 됐다. 1973년 에콰도르 길리제르모 장군의(후에 혁명을 일으켜 독재를 타파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초청으로 군인 공수부대(300명)를 1975년까지 교육했다.
이후, 1975년에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개인 일로 왔다가 정부 경호원, 경찰, 국제 정보대 들을 10년 동안 교육하면서 자리를 잡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에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99년 대통령 취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카라카스'와는 극과 극인 '산 크리스토발'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고 계신다.
두 아들과 딸은 1992년 한국 합기도 국제대회에서 베네수엘라 대표로 참가해 우승했고, 2002년 5월 26일 대한신무합기도 협회에서 주최하는 11회 전국합기도 선수권대회 겨루기 부문에서 금상과 호신술에서 동상을, 발차기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현재, 첫째 종환(24살)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둘째 종훈이와, 막내 행미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시내에 있는 도장의 수리가 끝나는 대로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박 선생님은 작년에 한국에 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무의식 중에 뇌를 지혈하셨고 정신을 잃은 후에는 누님께서 지혈을 하셔서 죽음을 면하셨단다. 의사 선생님이 머리에는 피가 넘어가면 죽는 지점이 있는데 합기도 9단이셨기에 무의식 중에 그 부분을 지혈한 거란다. 오랜 세월 동안 운동한 덕분에 6개월 만에 투병생활을 마치시고 얼마 전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박 선생님은 단신으로 3개국에 합기도를 보급하느라 젊은 날을 모두 보내시고, 노년에 병을 얻으셔서 지금은 자녀의 도움을 받아야만 거동이 가능한 처지가 되었지만, 남미 땅에 합기도를 보급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김00 선수를 세계챔피언으로 만드시고도 당사자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것, 현지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시절에는 한국인들이 친한 척하다가 자기 필요가 채워지면 떠나간 것, 혼란스러운 한국 정부의 잦은 정권교체로 인해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행미와 선생님 댁으로 가는데 붉은 베레모에 카키색 군복을 입은 무장 군인들이 방탄조끼까지 입고 검문을 하고 있다. 우리차도 검문을 받았는데 여권을 집에 두고 왔다니까 검은색 호송차량에 집어 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당황한 행미가 집에 전화를 하고 종환이가 달려와서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신분증'이 있어야만 한단다. 결국 20분여 만에 여권을 가지고 와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갑자기 <네트(NET)>(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은 음모에 의해 데이터베이스상의 모든 기록이 지워져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되고, 나중에 극적으로 신분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국경지대라 밀입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화장실 갈 때도 신분증을 가져가야 한다면서 박 선생님이 위로를 해줬다.
박남규 선생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슬퍼졌다. 2천만 중에…단 5명의 한국인이 여기 있노라고 소리치는 슬픔이랄까?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 철창 속에 스스로 갇혀 사는 사람들, 밤의 불빛이 너무 슬프도록 아름다운 나라여 안녕….
내일이면 그렇게 어둡고 우울한 나라라고 알려진 콜럼비아로 간다.
[베네수엘라 여행노트] 여행기간, 주행거리, 사용경비 2007년 7월14일(토) – 8월15일(수) / 1,011KM / 623,468BS (약 290$, 1일: 8.7$) [베네수엘라 여행경로] NORTH DE SANTANDER(CUCUTA)-> SANTANDER(BUCARAMANGA) BOYACA(TUNJA)-> CUNDINAMARCA(BOGOTA D.C)-> CALDAS(IBAGUE) QUINDIO(ARMENIA)-> VALLE DEL CAUCA(CALI)-> CAUCA(POPAYAN) NARINO(PASTO->IPIALES)
2007년 8월14일 베네수엘라 TACHIRA, San Cristobal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공식 홈페이지:
www.kyulang.net 저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