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가면 쓴 대구 - 사진 : 이석대 - 펴낸곳 : 분도출판사(1985.5.5) 다섯 해 앞서, <가면 쓴 대구>라는 사진책을 처음 만났습니다. 사진책치고는 참으로 얇디얇은 이 녀석은, 아는 분 책꽂이 한쪽에 아주 눈에 안 띄도록 박혀 있었습니다. 두께라도 있다면 무슨 책인가 싶어 끄집어내 보기라도 했을 테지만, 두께조차 없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거들떠볼 일이 거의 없는 가운데 묻혀 버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얇은 사진책’들이 사진쟁이와 사진독자 손을 타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가요. 두툼하게 나오거나 큼직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눈에 잘 안 뜨입니다. 이름난 사람이 엮어내거나 이름난 곳에서 펴내지 않으면 새책방 책꽂이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란 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판에 사진책을 전문으로 내지 않는 종교 출판사에서, 그것도 얇은 판으로, 더욱이 ‘전국체전을 한다면서 골목집 삶터를 싹 밀어없애거나 높은 울타리로 가려 버리려는 대구시 공무원 정책’을 사진으로 살며시 비판하는 이런 책은 얼마만큼 우리들 눈길이나 손길을 탈 수 있었을까요. 모르는 일입니다만, <가면 쓴 대구>라는 사진책이 나오기 앞서도 전국체전은 전국 곳곳에서 해마다 치렀는데, 그때마다 그 전국체전을 치르던 도시에서는 ‘돈과 힘과 이름이 없는 사람들 골목집’을 깡그리 밀어없애거나 높은 울타리를 쳐서 ‘다른 지역 손님이 보기에 나쁜(?)’ 모습을 감추었을까요. 알 만한 일이라면, <가면 쓴 대구>라는 사진책이 나온 뒤로 보아 온 여러 가지 모습들, 이를테면 1986년 아시아경기를 치를 때, 1988년 올림픽을 치를 때, 참으로 많은 달동네 사람들은 이리저리 쫓겨다니고 용역깡패한테 두들겨맞고 손때묻은 살림살이를 죄 잃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1988년을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사라졌을는지요. 사진책 <가면 쓴 대구>는 새책방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헌책방 책시렁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자기들이 이런 책을 펴낸 줄조차 모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 세상은 “가면 쓴 서울”로, “가면 쓴 인천”으로, “가면 쓴 제주”로, 아니 “가면 쓴 한국”으로 자꾸자꾸 무쇠탈만 뒤집어쓰고 있지 않나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제가 깃든 인천이라는 곳은 2009년에 도시엑스포를 하고 2014년에 아시아대회를 치르게 한다면서, 오래된 동네 삶터와 문화를 남김없이 쇠삽날로 파없애고 아파트로 싹 갈아치우려는 정책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송도는 벌써 아파트로 숲을 이루었고, 골목집으로 빼곡한 배다리 한복판에도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고 주민 목소리는 하나도 안 듣습니다. 참으로 아찔하여 가슴은 콩닥콩닥 두려운데요, ‘도시재생사업’과 ‘도심환경정비’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숨통을 끊어 놓아도 나라님이 그렇게 한다면 끽소리 죽이고 따라야 하는지요. 이명박씨가 서울부터 부산까지 뱃길을 뚫는다면 그런 마구잡이 공사가 사람 삶터와 자연 삶터를 얼마나 끔찍하게 무너뜨리거나 말거나 돈벌이 땅장사가 잘되니까 우리 사회에 도움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실낱같은 빛줄기 하나 없는 어제요 오늘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 오래된 보금자리이며, 햇볕 듬뿍 받으며 옥상에 이불 널 수 있고, 골목길 한켠에 스티로폼 낡은 그릇을 줄줄이 늘어놓고 텃밭농사 지을 수 있으며, 자동차 들어오지 못해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골목길을 지키고 살아가면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제 나름대로 날마다 다문 몇 장이라도 사진으로 적바림해 놓습니다. 어쩌면, 그 어리석고 미련스러운 삽날정책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제 삶터가, 아니 우리 삶터가 깃든 도시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자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돌아가신 김기찬님도 ‘골목길을 누구나 애틋이 여기며 고이고이 지켜나가는 우리 사회 흐름’이었다면 골목길 사진이 아닌 다른 모습을 찍지 않으셨을까요. 우리가 미처 못 느끼고 있는 가운데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지려는 아름다운 다른 삶터와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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