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MENIA로 가는 길에 아일랜드 자전거 여행자 Kebin을 만났다. 볼리비아에서 여기 오는 데 5개월이 걸렸단다. 파나마를 건너 멕시코에서 여행을 끝낼 예정이란다. 5개월 만에 9000km를 달려서 그런 걸까? 전체적으로 가난한 여행자 느낌이 든다.
페인트공으로 일하다가 여행을 시작했는데,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단다. 솔직한 대답이다. 볼리비아가 그렇게 좋다고 했고, 페루의 산 쪽 코스는 대부분 5000미터급이란다.
지도를 찾아보니, 페루의 대도시 25개 중 2000미터 이하의 도시는 14개, 2000미터 이상의 도시는 5개, 3000미터 이상은 6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지대의 산이 많이 없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남미의 티베트라고 불리는 HUARAZ 국립공원에는 5000-6000미터급 산이 약 30개가량 있고, AREQUIPA, PUNO(TITICACA 호수 북부지역) 등에도 4000-6000미터급 산이 약 10개가량 있었다.
결론적으로, 충분히 온몸 구석구석에 심장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달릴 수 있다는 예감에 벌써부터 상쾌한 허벅지 통증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설렘이 느껴진다…….
낮잠이 조금 올 것 같은 평지를 조용히 달리고 있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자전거를 붙들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살펴보니 변속기 부분이 고장 난 것 같다. 집이 멀지 않다고 하기에 컴퓨터 가방용 끈과 핸들 가방용 끈을 연결해서 자전거 견인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리막이라 즐겁게 가다가 조금 오르막 평지가 나오자 점점 힘이 들어간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라고 했는데, 도착한 게 아니라 '우회전' 하라는 말이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동네 길이다. 사탕수수밭, 철길을 지나자 포장도로가 깔린 동네에 도착했고 어느 집 앞에서 정말 "여기"라고 하면서 "고마워요!"라는 말만 남긴 채 황급히 집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땀에 흠뻑 젖은 몸이 식어갈 무렵에도 친구는 나오지 않았다. 물이라도 한잔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학생 덕분에 허탈한 웃음을 페달 위에 싣고서 저물어 가는 노을을 향해 다시 출발…….
조금 외진 동네 어귀를 지나는데 간이식당 아주머니가 부른다. 50m쯤 지나쳤다가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핸들을 돌렸다. 과일 화채와 삶은 감자를 주시면서 여행경로와 이름을 물어보신다. 그리고 가족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종이쪽지를 주시면서 "콜롬비아 하면 얼굴이 긁히는 줄(위험) 아는데, 특별한 지역만 그래요!"라고 하셨다. 몸짓을 섞어가면서 말씀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중에 온 아들 Gustavo가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나그네의 사정을 알고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시멘트 건물의 집은 방 2개가 있고 유일한 통풍구라고는 천장이 개방된 곳뿐이라서 집안 전체에 열기가 가득 느껴졌다…….
오늘은 120km를 달려서 그런지 피로가 쏟아진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많이 달린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구를 만나기 위한 무엇을 위한 달림이냐가 더 중요할 듯…….
우천모드를 해제하고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오토바이 운전자 Juan이 보조를 맞추며 으레 하는 질문 이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국말로 '소'는 뭐냐?", "형제는 있는가?", "잠은 어디서 자는지" 등.
나도 질문을 했다. "퇴근하는 길인가? 어디에 회사가 있는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등.
자기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라는 줄 알았는데, 갈림길에서 "저쪽으로 가면 Popayan이야!"라고 말한다. 앗! 뭔가를 잘 못 이해했구나. 잠시 쉬었다 가면 안 되겠냐고 하자 좋다면서 집으로 안내했다. 하룻밤 묶어가도 될 것 같은 집안 분위기(?)기가 느껴져 한번 물어봤더니 OK!
조나단도 목욕시키고 신발도 빨고 젖은 옷도 널었다. 잠시 쉬는데, Juan의 요청으로 노트북을 꺼내서 여행한 사진들을 보며 주며 설명해줬다.
중국과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며 같이 안쓰러워했고, 재미있는 사진에는 웃기도 했다. 적당한 순간에 적당한 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집 안 한쪽 벽에 내 키보다 높은 맥주 캔이 쌓여 있다. 7년 동안 수집한 거라고 232개나 된다면서 나중에 한국에 가면 맥주 캔 좀 보내 달란다.
맥주 캔 왼쪽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다리 다쳤을 때 하는 '석고붕대'였다. 위협적인 붉은 코브라가 입을 벌리며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고, 머리 위에는 황금색 꿀벌이, 왼쪽 아래에는 녹색 십자가를 품은 유령 같은 사나이가, 오른쪽 아래에는 녹색 도마뱀이 그려져 있다. 생각의 차이가 작은 부분에서도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릴라'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던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다가오던 '콜롬비아'. 약 2달간의 콜롬비아 여행 중에 '게릴라'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가운데,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처음 만난 Wilson과 점심값을 쥐어 주던 경찰들, 어려운 순간에 먼저 다가와 준,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손을 잡아준 수많은 친구들은 내게 '엄지공주(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것)'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혹시, 모든 가방을 열라고 하면 어떡하지?' 어느 나라보다 많았던 검문지역은 처음에는 긴장감으로 나중에는 그들에게 수고한다고 '엄지공주'를 보여주면서 여유 있게 통과했다. 군인들은 자전거 여행자를 검문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로 자주하는 질문을 하거나 웃으면서 '거수경례'를 해주거나 '엄지공주'를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내가 만난 현지인들 중 주로 나이가 많은 분들은 아직 '게릴라'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청년층은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콜롬비아! 하면 이제는, 거절하기 힘든 진한 '커피 향기',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엄지공주', '두려움이 아닌 즐거운 그리움'으로 다가올 것 같다…….
[콜롬비아 여행노트]여행기간, 주행거리, 사용경비2007년 8월15일(수) - 10월20일(토) / 1,693KM / 489,190PESOS (약 191$, 1일: 2.9$)
여행경로NORTH DE SANTANDER(CUCUTA)-> SANTANDER(BUCARAMANGA)
BOYACA(TUNJA)-> CUNDINAMARCA(BOGOTA D.C)-> CALDAS(IBAGUE)
QUINDIO(ARMENIA)-> VALLE DEL CAUCA(CALI)-> CAUCA(POPAYAN)
NARINO(PASTO->IPIALES)
사진으로 떠나는 콜롬비아 여행
2007년 10월20일 콜롬비아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 정규 올림.
공식 홈페이지:
www.kyulang.net 저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