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대교·한남대교·동호대교·천호대교…. 지금까지 한강에 건설된 다리에는 '대교(大橋)'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하지만 한강다리 중 잠수교와 함께, 우리 동네에 있는 '광진교(서울 광장동~ 천호동)'에는 이런 명칭이 붙지 않았다.
광진교에 '대교'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이유에 대해 "현재 왕복 4차선 도로의 다리이기 때문에, 왕복 6차선 이상 되는 다리에만 붙는 대교 명칭이 없다" "천호대교의 교통흐름을 보완하기 위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광진교의 오랜 역사가 그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면서, '대교'란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대교'가 아닌 한강 광진교한강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광진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의 보조와 지방관민의 기부를 받아 공사에 착수해, 2년 만인 1936년에 준공됐다. 길이 429.5m (너비 9.4m) 왕복 2차선 규모의 다리(1952년 미8군에 의해 608m로 늘어남)였다.
광진교는 1994년 철거되기까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은, 그리고 다리라고 말하기 무색한 규모의 '한강의 소교(小橋)'였다.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항상 붕괴위험에 덜덜 떨어야 했고, 왕복 2차로의 비좁은 도로는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골칫거리였다.
1997년부터 보강·확장 공사가 시작된 광진교는 천호동 일대 상권 확대에 따른 천호대교와 주변도로의 증가된 교통량을 흡수하고 구리지역으로의 원활한 교통흐름을 유도하고자, 2003년 11월에 1037억 원을 들여 현대적인 모습의 다리(삼환기업 시공)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준공 5년째가 되어가는 새로운 광진교는 애초의 기대와는 다르게, 2007년 1월 기준으로 출근시간대인 오전 8~9시의 교통량은 1500대 정도, 퇴근시간대인 오후 6~7시는 1490대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조사자료) 밖에 안 된다. 바로 옆에 있는 천호대교의 경우 출근시간대 교통량은 6170대, 퇴근시간대 교통량은 5460대로 4배 이상 차이가 난다(2007년 1월 기준).
12일 오전 현장에 가보니 이 곳을 지나가는 차량의 수는 다른 한강다리에 비해 매우 적었다. 천호대교의 교통량을 대체·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취지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다시 만들어도 반응 '시큰둥'... 아예 '보행전용교'로?
광진교의 가장 큰 문제는 주변 도로와의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작년 11월에 광진교 남단에 올림픽대로(잠실방향)의 차량들이 접근할 수 있는 램프 1개가 생기기 전까지, 광진교에는 진입 램프가 전혀 없었다(광진교 북단에서 강변북로 구리방향으로 나가는 램프가 유일하다).
근처 천호대교나 다른 한강 다리에는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로 드나들 수 있는 여러 곳에 램프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광진교에 차량통행이 적은 이유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부분은 광진교를 건설한 서울시와 해당지역인 강동구의 고민거리였다. 그러던 중 2007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동구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신동우 전 강동구청장(현재는 18대 총선 출마위해 사퇴)이 교통량이 적은 광진교를 '보행전용 교'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그 후 강동구는 '천만상상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사업응모를 냈고, 서울시는 2007년 2월 22일 실현회의에서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 만들기' 사업을 결정하게 된다.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 사업은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작년 2007년 11월에 착공해, 올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차량통행 위주의 4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축소하고, 사람들의 통행이 가능한 'S'자 형태의 녹지가로가 조성된다.
또 현재 있는 6개의 발코니형 전망대와 함께, 중앙광장 그리고 정보센터·커피숍 등을 갖춘 교량하부 전망대도 설치된다. 이와 더불어 강동구(광진교 남단)와 광진구(광진교 북단) 입구에 '상징 게이트'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광진교를 걸으면서 한강을 조망하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사업취지다.
생소한 보행교 개념... 시민들은 '어리둥절'
하지만 애초의 좋은 취지와는 달리, 같은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 만들기' 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선 '보행교'라는 개념이 아직 시민들에게 생소하다는 지적이다. 또 홍보부족으로 인해 이 사업을 잘 알고 있는 시민들은 적었다(이 때문에 취재원과 인터뷰 시에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 만들기'사업에 대한 핵심내용을 설명해줘야 했다).
12일 오전 광진교 남단 사거리 주변에서 몇몇 시민들을 만나봤다.
박석철(48)씨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멀쩡한 다리를 만들어놓고, 다시 돈을 들여 무얼 하러 걸어서 건너는 다리(?)를 만드느냐"며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사업처럼 선심성 정책 같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영순(52)씨 역시 "광진교에 보행전용 다리가 생길 거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앞으로 TV나 신문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홍보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럽에는 보행전용교가 많이 있다. 프랑스 파리의 '퐁 데 자르',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브릿지', 체코 프라하의 '카를 브릿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보행전용교는 1993년 대전 갑천 위에 세워진 '엑스포 다리', 충남 부여시 옛 백제교가 전부다.
천호대교 출퇴근 느려지나... 서울시 "큰 문제 없다"둘째로 현행 왕복 4차로인 차도를 'S'자로 굽어지는 보행 공간 마련을 위해 2차로로 줄어들게 되면 현행 광진교 통행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려지게 되고, 주변 천호대교 등으로 차량들이 다시 몰리면서 주변 교통량이 늘어날 것이다.
또 광진교 남단 천호동 362-60번지 일대에는 36만3700㎡ 규모의 천호뉴타운 사업이 추진 될 예정이고, 근처 암사동 강동아파트가 재건축(1662세대) 되는 등 이곳에 대규모 주거·상업시설이 들어설 경우 광진교를 이용하는 차량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교량관리부 전영부 씨는 전화통화에서 "자체적으로 교통등급 평가를 해본 결과, 차로가 왕복 2차선으로 줄어들면 현재 70~80㎞ 정도(A~B등급) 정도의 광진교 통행속도가 최하 40㎞(B~D등급) 정도로 느려지고 주변도로로의 교통량이 조금은 늘겠지만,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광진교 특성상 자체적인 교통흐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0년 말(예정) 구리 아천동과 강동구 암사동을 잇는 암사대교가 건설되면 천호동 일대의 교통량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량 통과속도가 느려지게 되면, 역으로 광진교를 이용하는 차량의 숫자는 감소하게 되어 주변 교통량이 늘어날 것이 뻔하다. 또 준공되지 않은 암사대교의 교통흡수 효과도 아직 점치기에 이르다.
셋째로 교량의 차도를 가로질러 'S'자 녹지가로가 생기게 되면, 한편으로 주행하는 차량들에 의한 안전사고가 우려된다. 현재도 광진교 양쪽에는 펜스가 설치된 2m 너비의 자전거 도로가 있지만, 이곳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암사동에 사는 최정임(37)씨는 "가끔 아이와 한강에 갈 때 광진교를 지나지만, ‘횡횡’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마음이 안 놓인다"며 "광진교가 보행자 중심의 다리로 바뀐다고 해도 주변에 차가 다닌다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성내동에 사는 윤은진(26)씨는 "광진교 위에 각종 문화·편의시설이 있는 보행공간이 들어선다고 해도, 1㎞가 넘는 다리 중간에 출입구가 전혀 없고 여름철을 제외하면 항상 찬바람이 부는 추운 다리 위에서 누가 산책을 즐기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교량관리부 전영부씨는 "차로 수 감소에 따라 광진교를 지나는 차량의 적정 속도를 40㎞ 정도로 맞출 것"이라며 "차로 바닥을 요철 처리해 광진교를 지나는 차량들의 과속을 미연에 방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행 공간에도 울타리 등 적절한 안전시설을 설치해, 이 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험하고 썰렁한 다리, 산책하기 싫어"
광진교는 내게 '추억의 다리'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한강구경 가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서 가까웠던 광진교는 가장 높은 곳에서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하지만 내 기억의 '첫번째 광진교'는 가끔은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당시 다리는 왕복 2차선이었다. 보행자들을 위한 변변한 울타리조차 없었기에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기억이 난다. 또 여기저기 낡은 콘크리트가 떨어지고 붉은 철근이 드러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맘 놓고 매일 한강을 볼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도했다.
어느덧 부쩍 커버린 지금의 내게 현대식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두 번째 광진교'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통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광진교를 달린다.
이제 나는 '세 번째 광진교'를 만나게 되었다. 차가 주인인 다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걷고 싶은 다리로 말이다. 벌써부터 새로운 광진교를 보게 될 생각에 가슴이 뛴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든다. 이 곳에서 오래 살다보니, 보행교로 두 번째 변신을 시도하는 '세 번째 광진교'에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총총했던 눈앞을 가린다. 광진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시의 더욱 세련된 '다리 연구'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