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오마이뉴스>에 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예상 목표가 200자 원고지로 4000장 정도의 분량이니 아직 제대로 선을 보인 것도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나는 미리 1차 탈고를 끝내 놓고 연재에 들어간 것이니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일기를 확인해보니 나는 그동안 하루 약 10시간 정도를 들여서 평균 35매씩 소설쓰기 강행군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하루 35매면 단순 계산으로 넉넉히 잡아 40일이면 1200장짜리 장편소설이 하나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집필 개시 이전에 구상과 자료 읽기에 들어가는 시간이 적지 않다. 제재에 따라 다르지만 그것에는 최소 한 달 정도가 필요하다. 보통 소설 하나당 책 20∼30권, 그리고 이보다 많은 논문 등의 자료를 먼저 읽어야 한다.
구상은 자료 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자료 읽기에 앞서 미리 '큰 구상'을 한다. 그러고는 큰 구상에 따라 자료를 선정, 취합한다. 어떤 자료를 읽을 것인지 정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취합된 자료를 읽으며 내 구상에 부합하거나 유다른 의미가 있거나 독자에게 매혹적인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밑줄·별표 등의 표시를 하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목차 형식으로 만들어 놓는다.
집필에 앞서 가장 의미있는 것은 '빈둥거림'이 작업이 끝나면 기왕 표시된 자료만을 다시 읽는다. 이 과정에서 처음의 큰 구상은 상당 부분 달라지게 된다. 구상과 자료 읽기를 모두 마치면, 나는 아무것도 읽거나 보지 않으며 철저히 5~7일을 빈둥거리기만 한다.
이 '빈둥거림'의 시간은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것은 집필에 앞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의의도 있을 뿐더러, 나를 한없이 무료하게 만들어서 결국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충동이 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세부적인 인물과 지엽적인 사건들의 연상을 도저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조차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나를 무자비하게 공동화(空洞化)시키자.' 이것이 이 시간 나의 슬로건이다.
그렇지만 간헐적으로 꼬리를 물며 연상되는 작은 생각들을 모두 물리칠 수는 없다. 결국, 작은 구상은 이때 완성되는 셈이다. 구상을 치밀하게 해 놓으면 집필에 힘이 덜 드는 대신 분방한 상상력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구상에는, 좀 거창하게 말해, '중용' 또는 '과유불급'이 요구된다.
집필이 본격 개시되고 나서 약 40∼60일이면 1200장 장편이 하나 만들어진다. 이로부터 퇴고에 최소 7일이 소요된다. 물론 집필의 과정에도 매일 퇴고가 있다. 퇴고는 1차로 모니터에서 한 후, 2차로 인쇄하여 다시 읽으면서 하고, 3차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한다.
이 때 잘 읽히지 않는 문장이 있으면 거의 무조건 고친다. 글을 쓴 사람에게도 잘 읽히지 않는 문장이 독자에게 잘 읽힐 턱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최종 퇴고는 집필 완료 후 두 차례 정도 더 읽으며 한다. 이렇게 해서 장편소설 하나가 탈고된다.
결국 장편소설 하나를 만든다는 것은 서너 달 동안 내 삶의 전부를 투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시간에는 아주 여러 가지 것들이 무시로 나를 방문하며 나와 함께 한다. 그들의 목록에는 인고·저돌·치밀·긴장·합리·피로·실망·타협·회의·자위·자조·자신·성찰 등이 들어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과 그것을 물리치는 비결 그러나 이 기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이렇게 해서라도 '작품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무서운 막막함이다. 이런 무서운 것을 모두 물리치려면, 가장 타협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약간 비열하기는 하지만 '나에 대한 관용'밖에는 없다.
물론 이 기간에 건강 악화를 경고하는 신체적 징후들도 불청객처럼 찾아든다. 나는 지금 왼쪽 손가락 끝이 몹시 아프고 오른쪽 옆구리와 어깨 뒤가 다소 결리거나 쑤신다. 내일부터라도 톱톱히 사우나를 한 후 최소 한 시간 이상 양재천 길을 걸으며 이것들을 다스려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기의 집필량을 채우기도 전에 나는 주저앉아 버릴 터이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것이 마치 자기의 숙명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 작가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문학은 자기의 종교라고 말하는 사기꾼 비슷한 작가도 있다. 이런 말들에는 십중팔구 멍청한 착각이나 위선적인 부풀림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이란 특정 인간의 숙명도 아닐 뿐더러 종교는 더더욱 아니다. 문학은 무릇 나의 선택일 따름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평생 소설을 쓰며 살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중편소설 하나와 단편소설 10여 편을 묶어 소설 창작집 <그 눈빛>을 낸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동안 주로 세속적인 강의를 하며 살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소설 창작에 경주하는 삶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역량과 성실성이 나의 욕망에 미달했기 때문인지 그 일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주변 환경도 소설만을 쓰며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 틈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끼적였다가 버린 소설 같잖은 소설도 몇 편 되는 것 같다.
5년 전 여름, 장맛비가 거칠게 내리던 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소설 쓰기를 선택했다. 거기에는 유별난 동기나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만으로 절실했던 소설이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장편 하나만 일단 완성해 놓고 보자고 착수했는데, 의외로 나의 소설 쓰기는 길게 많이 이어졌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나는 '생각보다는 덜 치열하게', '예상보다는 차분히' 소설을 썼다. 나는 그 중 하나인 <제국과 인간>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보내기로 했다.
<제국과 인간>은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 역사소설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전형적인 팩션이다. 각 부마다 주인공과 사건이 완전히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다. 다만 1905년부터 1950년까지의 50년 기간을 아래처럼 세 단위로 나누어 서술했다.
1부 <상해의 영혼들> : 1905년~1922년
2부 <중경에서 오는 편지> : 1920년~1940년
3부 <12개의 눈동자> : 1935년~ 1950년
이 대하연작팩션은 역사상 순수하고 정열적인 삶을 산 실제 인물들과, 이들과는 다른 면의 가치관을 지닌 허구적 인물들을 뒤섞어, 그들이 조국의 시련에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새로 간행된 역사서와 최근 발견된 문서 기록에 근거하여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적 사실들을 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그리고 매혹적인 인간들이 벌이는 치열하고 정직한 삶의 모습들을 펼쳐 보려고 하기도 했다.
데뷔작을 쓰는 각오로이 소설을 통하여 독자들은 그동안 배워온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면서, 우리의 근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새로이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수난의 식민지 역사 중에도 참으로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인물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될 터이다.
다 써놓고 보니 발표할 지면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옛날 알던 문학계 유력인사들을 찾지 않기로 했다. 밑바닥부터 다시 소설가의 길을 걷는 게 정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침 <오마이뉴스>에서는 소설 연재 자격을 일정한 기준을 정해 놓고 공정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데뷔작을 쓰는 각오로 임하려 한다. 많은 독자를 얻고 싶은 것은 글 쓰는 이들의 하나같은 마음이라고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