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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으로 만든 칼을 보고 있는 우리집 작은 아이 송인상
못으로 만든 칼을 보고 있는 우리집 작은 아이 송인상 ⓒ 송성영

"공부하기 싫어? 그람 그만 혀."
"앗싸~!"

올해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우리집 밥돌이 인상이 녀석은 여전히 머리를 쓰지 않으려 합니다. 큰 놈 인효 녀석은 상대적으로 책을 많이 읽고 머리 쓰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몸집도 크고 키도 더 큰 인효 녀석은 몸으로 때우는 일에 있어서는 작은 놈을 따라 잡지 못합니다.

인상이 녀석은 뭔가 시작하면 대략 끝장을 봅니다. 얼마 전에는 못을 가지고 칼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싯누런 아궁이 불에 벌겋게 달군 못을 꺼내 도끼 몸통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댔습니다.

 아궁이 불에 못을 넣고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기다리는 송인상
아궁이 불에 못을 넣고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기다리는 송인상 ⓒ 송성영


대못이 적당히 식을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려 댑니다. 그러고 나서 물에 담궈 열을 완전히 식힌 다음 다시 아궁이 불 속에 집어넣고 또다시 두들기는 일을 반복합니다. 못이 납작하니 칼 모양이 나올 때까지 그 옛날 대장장이처럼 끊임없이 담금질을 했습니다.

물론 적당히 손에 베이지 않을 정도로 숫돌에 칼날을 세우는 일 등의 기본적인 공정 과정을 아빠인 내가 지식 제공 했지만 힘쓰는 일은 녀석이 직접 해냈습니다. 방 안에서 책에 코를 박고 있던 인효 녀석도 퉁탕거리는 소리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가 싶어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가 덩달아 담금질을 했습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못을 도끼에 올려 놓고 망치로 두들기고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못을 도끼에 올려 놓고 망치로 두들기고 있다 ⓒ 송성영


인상이 녀석은 형이 한 개의 칼을 만들어 낼 때 세 개의 칼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른인 나도 몇 차례 두들기다 보면 어깨가 뻐근해 오는 힘겨운 일이었는데 녀석은 볕 좋은 뜰팡에서 늦은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하루 종일 담금질을 했던 것입니다.

"아빠는 몇 번 두들겨 댔더니 어깨가 뻐근 헌디. 힘들지 않어?"
"아니 재밌어."
"그 걸루 뭘 할 건디."
"그냥, 나도 몰라."

 완성된 못으로 만든 칼
완성된 못으로 만든 칼 ⓒ 송성영

그 칼로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재미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과일칼로도 쓰이지 못할 손가락 길이만한 칼로 뭘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며칠 후 녀석은 그 칼을 써 먹었습니다. 녀석은 그 무딘 칼을 이용해 조그마한 흙집 하나를 뚝딱 만들어 냈습니다. 도자기 굽는 분에게 얻은 도자기 흙으로 집채를 만들었는데, 나무칼 대신 그 칼을 아주 요긴하게 썼던 것입니다. 결국 생각 없이 만든 그 칼로 뭔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못으로 만든 칼을 이용해 흙집을 만들었다.
대못으로 만든 칼을 이용해 흙집을 만들었다. ⓒ 송성영

오늘은 녀석이 쓰다 만 공책에 코를 박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주특기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명암까지 멋지게 넣은 큰 나무 그림이었습니다.

"야, 나무에 노을이 지는 모양이구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몰라'로 대답하기 일쑤였던 녀석이 이번에는 짐짓 거드름을 피웁니다.

"허 자식이, 근디 나무 그리면서 뭔 생각을 했냐?"
"나무에는 나무에 나무가 있고 또 나무가 있는 거 같은 디."

녀석은 생각 없이 툭 던져 말합니다. 나무의 몸통을 그리고 거기에 가지를 그리고 또 잔가지에 잎을 그리다 보면 그럴 것이었습니다. 수 백 년 동안 하나의 몸체로 숫한 나무를 키워내는 나무가 아니겠습니까? 하여 사람 또한 한 몸뚱아리에 아버지의 아버지에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자식에 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삼라만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녀석은 머리를 쓰지 않지만 내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식 나부랭이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 내가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나오지 않는 번뜩이는 지혜를 일깨워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에게 뭔가를 심어주겠다고 애를 씁니다.

"너 커서 뭐가 되고 싶은 겨?"
"몰라."

겨울 방학에 접어들 무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어오라 했던 모양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녀석이 학교 숙제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장래 희망을 적어 가더군요. 수백억 수천억의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어 먹고 싶은 거 실컷 사 먹고 없이 사는 사람들 돕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2개월 전에 했던 말이었는데 녀석의 장래 희망은 다시 '몰라'로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고새 까마득히 잊어버렸나 봅니다. 수천억 벌겠다는 녀석이 천 원짜리 용돈 한 장에 '앗싸 애들하고 뭐 사먹어야지' 좋아 하는 녀석이니 그럴 수밖에요.

녀석에겐 쓸 수 없는 수천억보다 천원이 더 쓸모가 있는 것이지요. 사실 땅에 박혀 있거나 건물에 묻혀 있는 수천억을 소유한들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위해 기분 좋게 쓰지 못하면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만도 못하질 않습니까?

이런 녀석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 봐 줄 수밖에요.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녀석도 편하고 나도 편한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생각 많은 어른인 나는 녀석을 그냥 놔두지 않고 자꾸만 물어 보게 됩니다.

"너 커서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없는 겨?"
"몰라."

녀석이 대여섯 살 될 무렵부터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지금까지 한결같이 내게 내놓는 대답이 그렇습니다. 녀석처럼 본래 세상 모든 아이들은 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뭘 어떻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닐까요?

인상이 녀석이 생각 없이 대못으로 칼을 만들어 작은 흙집을 지었듯이, 나무를 그리다가 나무에 나무가 있고 또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듯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뭔가 저절로 이뤄지게 되질 않을까요?

 인상이 그림. 나무에는 나무에 나무가 있고 또 나무가 있다
인상이 그림. 나무에는 나무에 나무가 있고 또 나무가 있다 ⓒ 송성영


#송인상의 장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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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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