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섬진강 줄기따라 피어나는 매화향기 지난 주말(10) 매화로 유명한 광양 매화마을 찾았습니다.
ⓒ 조도춘

관련영상보기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봄에 문턱에 들어선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흙과 나무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겨울을 넘긴 논밭의 풀은 생기를 얻어 더 푸르게 보이고 나목의 실가지에는 뾰족 뾰족 작은 싹눈이 앙증맞게 눈에 들어옵니다.

섬진강 550리 섬진강 물줄기의 끝 다압 매화마을 앞
섬진강550리 섬진강 물줄기의 끝 다압 매화마을 앞 ⓒ 조도춘

지난 주말(10) 섬진강줄기 따라 올망졸망 형성된 마을 광양 다압 매화마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도로 따라 심어진 매화나무에는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습니다. 꽃봉오리를 터뜨리기에는 차가운 바람이 여전이 매섭기만 한데 매화 꽃향기를 눈치 챈 꿀벌들은 윙윙거리며 이 가지 저 가지 피어 오른 꽃봉오리를 흔들어 봅니다.

매화는 꽃을 피우기 위해 7월이면 꽃눈이 생긴다고 합니다. ‘설중매’로 더 잘 알고 있는 매화. 엄동설한 모진풍파를 이기고 이듬해 봄을 기다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제일 먼저 피는 꽃이라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 여겨왔습니다.

법정스님은 ‘문향(聞香)’ “매화향기를 맡지 않고 듣는다”고 했습니다. 냄새를 맡듯 매화향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어렵게 피어나는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청매화 꽃봉오리 조금이라도 남풍불면 꽃 터트릴 것만 같은 매화꽃봉오리
청매화 꽃봉오리조금이라도 남풍불면 꽃 터트릴 것만 같은 매화꽃봉오리 ⓒ 조도춘

매화 매화꽃봉오리
매화매화꽃봉오리 ⓒ 조도춘

모진 추위를 견디며 하루하루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는 한 송이 매화 꽃봉오리에서 애틋한 정감이 느껴집니다. 봄비 내리고 얼었던 대지가 풀리면 거뭇거뭇한 대지는 연둣빛 변신을 시도할 것입니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는 청빈과 지조, 여인네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하는 매화는 많은 사람들이 늘 가까이 두고 닮고 싶어하는 꽃입니다. 섬진강가 들녘과 산녘에서 일제히 피어올라 봄의 합창을 하는 그날, 웅장한 관현악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더 진한 꽃의 합창이 막 들리는 듯 합니다.

푸른 섬진강물은 전북진안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경남과 전남을 어르며 500여리의 굽이굽이 흘러 남녘의 끝 광양만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지리산 자락과 백운산 자락에서 흘러나온 깨끗한 강물에는 은어, 누치, 참개가 살고 깨끗한 모래 속에는 재첩으로 더 알려진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갱조개가 살고 있습니다.

본디 이 강은 모래내, 다사강(多沙江), 두치강(豆置江)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 우왕(1385)때 강 하구로 왜구들이 침입하자 인근마을인 광양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몰려와 울부짖어 왜구들이 놀라 피해갔다는 전설에서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광양 사람의 젖줄 같은 강, 기쁨과 애환을 간직하고 흐르는 섬진강에도 봄의 생기가 느껴집니다. 매화꽃이 피지도 않은 매화마을, 주말인데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운수 좋은 날입니다. 매화나무로 봄의 환희를 두 배 세 배로 주는 ‘매실명인’ 홍쌍리(66) 대표를 너무 쉽게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보았지만 직접 만나 보지는 못해 한 번은 꼭 만나 보고픈 사람이었습니다.

홍쌍리(66) 청매실농원 대표 “꽃은 내 딸이요, 매실은 내 아들이요 아침이슬은 나의 보석이요 이 여인이 부러우면 흙의 주인이 되어 보소”  그의 45년의 매화사랑
홍쌍리(66) 청매실농원 대표“꽃은 내 딸이요, 매실은 내 아들이요 아침이슬은 나의 보석이요 이 여인이 부러우면 흙의 주인이 되어 보소” 그의 45년의 매화사랑 ⓒ 조도춘

그는 굽이굽이 돌아 흘러 내려오는 섬진강물을 ‘나의 눈물’이라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그 눈물은 21살의 젊은 경상도 아가씨가 도회지로 가지 않고 척박한 시골로 들어와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하면서 흐른 눈물이었으리란 생각이 들개 합니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데 나는 세상 사람들을 무엇으로 즐겁게 해 줄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지리산과 백운산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심청이의 눈물과 내 눈물이 보태져가지고 저렇게 맑고 아름답고 정말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정도로 섬진강물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이런 생각했는데…….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가꾸어서 사람들이 섬진강에 어둡고 괴로운 마음을 다 던져 버리고 꽃과 같이 활짝 웃고 돌아가 이 아름다운 향을 온 가족이 나누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이걸 생각해 보니까 내가 농사를 이렇게 안 지으면 안 되겠더라."

흐르는 섬진강 물만큼 흘렀던 눈물은 매화나무로 번창하여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른 봄이면 꽃향기로 가을이면 청매실로 가득한 행복을 주고 있습니다. 매화와 함께 했던 세월이 45년이나 흘렀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농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긴 세월 동안 매화나무는 어느새 그의 자식이 되었고 매일 아침 매화나무 숲길 따라 그들과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어쩌다 바쁜 날 아침으로 이렇게 한 번 안 돌아보면 화가 난 매화꽃들이 “엄마 니 워한디 어찌 안 왔노”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답니다. 매화나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때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눈총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논이 있나 넓은 들이 있나’  무엇이 하나 없는 악산, 대한민국에서 제일 긴 면, 제일 땅 값 싼 곳, 제일 논밭 없는 곳…. 예전 이곳은 안 좋고 불리한 쪽으로만 ‘제일’이 다 붙은 강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봄이면 제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잘 사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다압면 주민의 부지런한 덕택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매화 섬진강이 바라다 보이는 매화마을
매화섬진강이 바라다 보이는 매화마을 ⓒ 조도춘

옹기 매실액, 매실된장, 매실고추장 등 매화를 저장한 2000여개옹기들
옹기매실액, 매실된장, 매실고추장 등 매화를 저장한 2000여개옹기들 ⓒ 조도춘

작년 초여름 이곳 구경을 온 적이 있습니다. 꽃 축제를 보지 못한 아쉬움에 초록매실 구경을 하기 위하여 한적한 시간을 택하여 늦은 발걸음을 하였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가지 사이로 만개한 매화꽃만큼이나 초록 매실이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매화나무 아래 사이 사이로 피어 있는 야생화에 발길이 멈추어집니다. 초롱불을 닮은 초롱꽃 군락지에 탄성이 나옵니다.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심산에서 볼 것 같은 야생화. 이 모두 그녀의 손길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합니다.

“열매나무 밑에서 꽃이 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우리 집 하나뿐이다.”

3월부터 11월 중순까지 매화나무 밑에서 꽃이 핀다고 자랑을 합니다. 10만여㎡의 매화나무 아래에는 경사진 위쪽 제일 높은 산등성이에는 만여㎡에는 구철초가 그리고 아래쪽 8천여㎡에는 붓꽃이 그리고 벌개미취 씀바귀 상사화 도라지꽃 맥문동 등 다양한 야생화가 군락지을 이루어 일년 내내 꽃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내가 볼 때는 내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내가 신선이 되는 것이고 내가 천국에 사는 것이지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신선한 옷 입고 정말 화려한 옷을 입고 거니는 사람이 신선인가(?) 아니다, 이거지. 이 손에 호미 괭이 삽이. 흙 범벅이 된 땀이 흠뻑 젖은 이 신선은 돈으로도 살 수가 없다."

이른 봄 새 생명들의 반란이 시작되는 살아 있는 흙냄새 나는 그녀의 소박한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 보니 어느새 신선의 나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매화나무의 어머니가 맞나 봅니다.

"나는 산이 너무 고마운 게 흙이 밥이라고 생각하면 흙한테 죄를 안 짓게 되고 산천초목이 내 반찬들이고 생각하면 저 풀을 야생화를 키우게 되는 것이고…. 정말로 흙은 우리 인간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고 온갖 것들, 우리 인간들이 오줌 싸고 똥 싸고 코를 풀든지 가래를 뱉던지 전부 힘들고 어려움을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다 들어주거든…."

새 생명이 움터오는 무자년 새 봄에 그는 또 하나의 야심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섬진강물아> 책을 쓴 그는 문학에도 관심이 깊습니다. 한국의 아동문학을 부흥 발전시킨 동화작가 정채봉 작가와 친분이 있던 그는 2001년 간암으로 떠난 그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합니다.

정채봉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여러 문인들의 작품으로 꾸며질 ‘문학 동산’을 만들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벌써 3회. 각 대학 교수들의 세미나를 거쳐 올 4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올 안에 준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매화축제와 더불어 좋은 문학축제가 되리라 기대를 하여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화마을#섬진강#청매실농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