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서울로, 설명절을 쇠기 위해 역 귀성을 다녀왔습니다. 집을 비운 지 딱 열흘 밖에 안 됐는데 마치 몇 달 만에 돌아온 듯한 느낌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옆 집 할머니댁 돌담까지 내 눈에 띈 마을 풍경 모두모두가 어쩌면 그렇게 정겨운지요. 설날 아침에는 들썩이는 발자국 소리, 웃음소리로 떠들썩했을 마을 고샅은 고요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연세 드신 어르신들 뿐. 이런 날씨에 나들이 나설 일 있겠습니까. 모르면 몰라도 뜨끈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십 원 내기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 계시기 십상일 겝니다. 마을 대표로 환영객이 나와 있습디다. 방앗간 집 새내기 송아지 두 마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세상 구경한 지 두 달이나 되었을까? 아직 애송이 티가 덕지덕지한 두 놈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듯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렇게 잠시잠깐 탐색이 끝난 뒤 형(?)인 듯한 한 놈이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아마도 제깐엔 이 정도면 안면을 텄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조심성이 더 있어 뵈는 다른 놈도 보조를 맞춰 주춤주춤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땡그란 눈망울을 뒤룩뒤룩 굴리며 걸어오는 폼이 꼭 미운 다섯 살 개구장이 꼴입니다. 저놈들이 장난친답시고 늙은 아줌마 들이박는 것은 아닐까 잠시 걱정이 됐습니다. 안 그래도 바람든 무처럼 뼈다귀가 숭숭 뚫렸다는데 들이박히면 그대로 병원 직행일 것은 뻔할 터. 가까이 다가오는 놈들을 비켜 슬쩍 발을 뺐더니 아, 이 놈들이 졸래졸래 따라오지 뭡니까.
세상에 강아지들은 몰고 다녀 봤어도 송아지 몰고 다니긴 또 처음입니다. 강아지고, 송아지고 어쩌면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것들은 종자 불문하고 이렇게 예쁘기만 할까요. 대문 안에선 왜 이렇게 늦장 부리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몽이는 대문을 들이박고 비는 비 대로 문 틈 사이로 코 내밀고 앓는 소리를 사정없이 지르고 있습니다. 두 놈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희구한 환영퍼레이드를 조기 종영하기엔 너무 아쉬움이 컸습니다.
녀석들이 새로운 놀거리를 찾아 논두렁으로 튀어버렸습니다. 논두렁 옆으로 난 차도가 걱정됐지만 의외로 송아지들이 영리한 편이랍니다. 조심성도 많아 위험하다 생각하면 근처도 안 가고 놀다 지치면 제 집도 영락없이 찾아간다니 웬만한 어린 아이 뺨치는 지능입니다. 드넓은 문전옥답이 모두 녀석들의 놀이터. 백미터 단거리면 어떻고 마라톤이면 어떻겠습니까. 예전에 이맘때쯤이면 동네 꼬마 아이들 차지가 되었을 빈 들. 연 날리고 팽이 치고, 논두렁 밭두렁 불장난에 언 손 녹일 새 없던 아이들 대신 젖내 가시지 않은 송아지 두 마리 세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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