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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처 종로의 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문패가 달린 작은 한옥집을 찾을 수 있다. 1950년대 처음 시작된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는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앞장서 헤쳐왔다. 이름만 들어도 엄혹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 진보당, 인혁당, 통혁당, 남민전 사건의 당사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그 때마다 연구소는 간판을 내려야 했다.

 

연구소는 단순히 ‘농업’만이 아니라 농사라는 행위를 둘러싼 환경과 생태, 건강,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 농촌사회에 대한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연구 결과는 계간지 <농민과 사회>와 월간지 <흙내>로 발간되며 그 외에 단행본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또한 현장과 연결된 실천적 연구를 중요하게 여겨 실제 농촌현장에 들어가 대안을 만들고, 농민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가 이룬 변화는 많았다. 추곡수매가 산정 방식의 개정과, 농지법 제정, 환경농업육성법 제정, 생활협동조합법 제정 등을 이끌어냈다. 88년도부터 개방농정 반대를 외치며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몇 해 전에는 한미FTA 반대에 앞장서기도 했다.

 

요즘은 다수확 중심의 ‘녹색 혁명형’ 농업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보고, 환경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환경 보전형’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권영근 소장은 “우리는 진보 아니다. 진보가 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진보라는 사람들은 노동자, 민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이나 386들을 봐라. 그런 것이 진보면 우리는 진보 아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70년대 대학 시절 연구소를 드나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길을 가고 있는 권 소장은 거짓 진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농촌과 농민의 힘든 현실을 이야기할 때는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가 던진 한 마디는 아직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인기 끌게 기사 한 번 잘 써주이소. 농민들한테 덕되게. 농민들 고생하는데 우리만 호위호식 할 수 없지 않겠소?”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한 연구소의 역사

 

- 연구소의 역사가 오래되었던데,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연구소는 한국민족민주운동의 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56년 '한국농업문제연구회'로 첫 시작을 떼었으나 1958년 진보당 사건, 1964년 인혁당 사건, 1968년 통혁당 사건, 1979년 남민전 사건을 거치면서 연구소 간판을 여러 번 내려야 했었죠.

 

한국 민주화 운동의 큰 사건에는 항상 우리 연구소가 있었습니다. 우리 연구소의 공채 1기로 들어오셨던 분이 ‘민족경제론’을 주창하셨던 박현채 선생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1965년에 '한국농업근대화연구회'로 개명했고, 1985년에 현재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 소장님께서는 어떻게 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70년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연구소를 드나들면서 공부하고, 민주화 운동에도 함께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연구소와 함께 하고 있지요."

 

- 주로 다루고 있는 분야는 어떤 것들입니까?

"일단 ‘농업’이란 말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농업이란 말은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입니다. 그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농사거리 혹은 농(農)이라고 불렀습니다. ‘업’이라는 글자가 붙게 되면서 농업은 산업의 하나이며 직업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농업은 전망없는 산업이며, 먹고 살기 힘든 직업입니다.

 

우리는 산업과 직업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협소한 관점을 벗어나고자 하며, 그래서 ‘농(農)’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농어촌, 생태계와 환경 등 모든 것을 포함하여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연구를 합니다."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농(農)'에 관한 연구

 

-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의 예를 들어주신다면 어떤 것일까요?

"우리 연구소에서 논을 습지생태계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서 이것이 람사총회(습지 보전을 위해 맺어진 국제조약인 람사 협약에 의거해 3년마다 열리는 회의)에서 받아들여진 바 있습니다. 우리가 토론회와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논 역시 습지생태계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나갔죠. 국내에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있지만, 논을 환경과 생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이런 주장을 하는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위험성을 알려나가는 것 역시 우리 연구소에서 중요한 사업 중 하나입니다. 이에 관해 책도 발간하고, 관련 단체들을 만나서 캠페인도 벌이고, 법과 정책도 만들었습니다. 농‘업’이라는 협소한 관점을 볼 때는 무관심했던 생태와 환경에 관해 농(農)이라는 종합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 것이죠."

 

- 그렇다면 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실제로 변화된 정책이나 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많은 정책과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이야기해드리자면 우선 ‘추곡수매가 산정 방식’을 바꿔놓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나라 전체 쌀 생산의 평균생산비를 수매가로 정했습니다. 이럴 경우 덕 보는 농민도 있지만, 손해 보는 농민도 생기게 됩니다. 농민 전체로 보면 불합리한 기준이죠.

 

이렇듯 평균생산비를 기준으로 수매가를 선정하면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가들입니다. 쌀값이 싸야 노동자에게 임금을 적게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1988년과 1989년 우리 연구소에서 실제 쌀 생산비를 조사하여 과학적인 추곡수매가를 산정하여 발표했습니다. 한계생산비를 기준으로 하여 농민들 전체에게 이득이 될 수 있도록 개정했습니다.

 

그 외에도 농지법 제정, 생활협동조합법 제정, 재벌의 축산업 운영을 금지한 축산법도 우리 연구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 실질적인 변화를 많이 이끌어내셨군요. 오랜 역사와 민주화 운동에서 차지한 무게, 구체적인 법 제정 등을 살펴볼 때 농업 관련 분야에서 <한국농어촌연구소>의 입지가 무척 탄탄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쟤네들 또 뭐라고 한다고 하면서 말이죠. (웃음) "

 

현장 속에서, 실천을 통해 바꿔내는 것이 운동

 

- 국내에 농업 관련 연구소들이 또 있나요?

"정부 산하의 연구소가 있고, 농촌을 지역구로 둔 정치인들이 이름만 번듯한 농업 연구소를 세우기도 합니다. 실제 연구를 하는지는 알 수 없죠."

 

- 정부 산하의 농업 연구소와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점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는 결국 자본을 대변하는 총자본일 뿐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하는 연구는 결국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연구이겠지요. 우리는 농민에게 득이 되는 연구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항상 실천적 연구를 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나 가톨릭 농민회, 기독교 농민회 등 한국 농민운동에 대안을 제출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과거 전농 의장 출신 중에 우리 연구소에서 공부하던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정책과 법을 바꿔냈습니다. 다양한 토론회와 심포지엄, 강좌를 개최하여 소비자와 농민을 교육시키고 실제 농촌에 들어가 대안현장을 건설하는 등 언제나 구체적 현장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바꾸는 것입니다.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 연구소 회원 규모와 연구 인력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상근 연구자는 7명 정도 있고, 회원은 3000명 정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밥은 다 먹으면서 농업에는 관심이 없어서 연구자를 구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회원들이 많이 있어서 도움이 되죠. 실제 농사 짓는 회원도 있고, 학계에 있는 회원도 있고, 관정계에 있는 회원도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회원들이 우리 연구소의 연구가 실제 법과 정책으로 제정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합니다."

 

- 재정적 어려움은 없나요?

"왜 없겠습니까? 연구소들이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비슷하죠. 우리도 연구프로젝트 용역과 회원들의 회비를 통해 재정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농민단체에서 조직후원을 하기도 하고요. 기업체에서는 후원금을 주지도 않겠지만, 줘도 안 받습니다."

 

환경 보전형 농업으로의 전환이 근본적 대안

 

- 연구소가 많은 활동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촌의 현실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뾰족한 대안이 공론화되어 있지도 않고요. 이런 어려운 현실을 뚫어갈 근본적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현재 ‘녹색 혁명형’의 농업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녹색 혁명형 농업이란 다수확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수확을 하기 위해 비료도 많이 쓰고, 농약도 쓰게 되는 것이지요. 다수확을 하면 농가소득이 올라가고 생산량이 올라가겠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농민을 줄어들고, 식량자급량은 줄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다수확을 하는데 왜 농민은 가난해지고, 식량자급량은 줄어드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공권력으로 누르려고만 하죠.

 

우리는 ‘환경 보전형’ 농업으로 변화하는 것이 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도 보호하고, 농약으로부터 농사짓는 농민의 건강도 지킬 수 있고, 소비자도 안전하기 때문이죠. 이제 단순히 다수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합니다.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북에 비료나 비닐을 갖다 주면서 남쪽의 농법을 전파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지금의 농업 방식은 망해가는 농업이에요. 생산량이 늘어도 자급량은 줄고, 농가소득이 올라가도 농민은 줄어드는 농업을 북에 전해주는 것은 통일을 망치는 겁니다. 일단 우리가 현재 농업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 ‘환경 보전형’ 농업으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나 이루어졌나요?

"일단 그간의 연구와 활동의 결과로 환경농업육성법을 제정한 상태입니다. 환경보전형 농업을 하는 농민들에게 직접지불제를 시행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직 진전이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통 관심이 없어서 정책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추진하여 환경 보전형 농업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정책을 수립할 생각입니다."

 

- 오랜 기간 연구소에서 일하셨는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주장이 올바른데도 정책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지금 이대로 가면 환경이나 농민, 국민들의 건강이 모두 파괴됩니다. 오직 자본가들이 돈 벌 뿐입니다. 비료 팔아서 돈 벌고, 농약 팔아서 돈 벌고, 종자 팔아서 돈 벌고. 요즘은 태어날 때도 재벌 신세지고, 죽을 때도 재벌 신세진다고 하지요. 재벌은 사람이 살아도 돈 벌고, 사람이 죽어도 돈 버는 형국입니다. 사회가 재벌과 자본을 위해 굴러가면 안됩니다."

 

- 마지막으로 농업에 관심이 없는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농(農)’이 중요한 이유를 말씀해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농이 중요한 이유라… 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들은 농약 덕지덕지 묻은 수입농산물 먹고, 병 걸리고, 일찍 죽으면 됩니다. 안 그렇소?(웃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소장 권영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간동 57번지 
홈페이지 www.agri-korea.org 
전화 02-737-7921 / 팩스 02-737-7923 


태그:#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농어연, #권영근, #환경보전형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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