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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 조경국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의 일대 전환점이었던 2·13 합의가 어느덧 1년째를 맞이했다. 2·13 합의는 '말 대 말' 차원의 공약이었던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이행조치로, 6자회담이 '행동 대 행동'의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2·13 합의의 이행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북한의 영변 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과 한국과 미국 등 4개국의 중유 제공을 골자로 한 합의 이행은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병행발전을 가능케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날, 낙관론은 또 다시 비관론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북핵 신고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미동맹 우선주의'와 '북핵과 남북관계 연계론'을 들고 나온 이명박 정부의 등장 역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는 요인이다. 더구나 미국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최근의 교착 상태는 미국의 차기 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하는 내년 봄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단계적 신고?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이처럼 비관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면서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단계적' 북핵 신고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이는 북핵 능력의 본질에 해당하는 플루토늄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고, 북한의 핵 능력과 거리가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및 핵확산 문제는 추후에 해결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꽉 막힌 체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먼저 북한의 단계적 신고에 상응한 보상조치의 문제다. 미국 전문가들은 단계적 해법을 제안하면서도 상응조치의 핵심인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는 UEP를 포함한 "완전하고 정확한 핵신고"가 이뤄지기 전에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이는 단계적 해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테러지원국 해제가 상응조치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북한이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신고하고 검증까지 받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UEP를 추후 과제로 넘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이다. 설사 단계적 해법에 북한과 미국이 합의하더라도, 이는 UEP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잠시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교통 사정이 좋아질 수 있지만, 머지않아 또 다시 차가 멈춰서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핵신고 지연은 핵보유국 지위 노린 것?

 

북핵 신고가 지연되면서 국내외에서는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결국 '협상 무용론'을 낳으면서 대북 압박과 봉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테러지원국 해제, 북미관계 정상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경수로 건설 등 핵협상의 중요한 목적을 확보할 수 있다면, 북한에게는 최선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핵을 가진 북한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가 핵보유국이라면, 지금까지의 핵협상 과정을 납득하기도 힘들다. 북한을 제외한 9개의 핵보유국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어떤 핵보유국도 몇 개의 핵무기를 갖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핵 억제력'을 확보하려면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선제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분량의 핵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북한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는 달리 최강의 핵강대국인 미국을 상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핵무기 보유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일단' 포기했다.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불능화 조치를 취해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차단한 것이다. 또한 북한은 플루토늄 보유량이 30kg이라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적절한 상응조치가 취해질 경우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북핵 신고의 난제는 플루토늄보다는 UEP와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에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와는 대체로 무관하다. 설사 북한이 UEP를 추구했더라도, 이를 무기화했거나 앞으로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UEP와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에 대한 북한의 신고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북한의 의도가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데 있다고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결론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확보 여부는 플루토늄 프로그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 조심해야

 

물론 이러한 분석이 '북한은 이미 핵무기 포기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전략적 선택의 귀결점은 결국 협상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핵무기 폐기 협상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협상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북한의 의도는 핵보유국 지위 확보라며 대북 압박, 제재, 봉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혹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주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이유다.


#북핵#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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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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