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정식 출범하기도 전에 이런 저런 시비거리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예비야당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명박 당선인측이 스스로 제공한 논란거리가 많다.
최근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를 곤혹스럽게 만든 '숭례문 복원 국민성금' 추진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숭례문을 그렇게 방치한 정부의 잘못을 질타하는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한채, 이 당선인은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제안을 덜컥 꺼냈다.
성난 민심 읽지 못한 국민성금 제안당연히 반대여론이 확산되었다. "국민이 봉이냐"는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정부가 강제적으로 모금하자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뒤로 물러서기에 이르렀다.
여론이 악화된 이유는 자명했다. 숭례문 소실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부가 노무현 정부냐 이명박 정부냐, 중앙정부냐 지방정부냐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를 따지는 것도 이 대목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국민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정부는 연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일이었다.
“성금으로 복원하는게 국민에게 위안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이 당선인은 말했다. 그러나 '성금'이라는 이름의 부담을 정부로부터 떠넘겨받으면서 위로받을 국민은 별로 없었다.
숭례문을 방치한 정부에 성난 민심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제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륀지' 떠올린 '두잉 베스트'지난번 영어공교육 강화 논란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인수위의 과욕에 따라 영어공교육 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급기야는 영어교육 문제가 새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처럼 인식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인수위 활동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평가를 낳은 최대의 실책이었다. 시간을 갖고 더 토론하며 준비해야 할 일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려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당선인은 인수위 회의에 참석하면서까지 힘을 실어주었다. “신선하게 변화하는 과정에는 반대가 있다"고 반대론자들을 비판하면서,“방향은 인수위가 맞다"고 독려했다. 인수위의 영어몰입 행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고려하지 않은 손들어주기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두잉 베스트(Doing Best)’라는 영어 표현이 나와 네티즌들의 시비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청와대 인선 결과 발표 자리에서 "국민이 보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는 아닐지라도 이들이 두잉 베스트(Doing Best) 는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경우 영어 표현을 쓸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 당선인이 사용한 영어 표현들은 이경숙 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을 연상케했다는 지적이 따랐다. 그만큼 이명박 당선인과 이경숙 위원장의 '영어 올인' 노선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이다.
사례로 든 하나 하나의 문제는 그 자체로는 엄청나게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밑바닥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 민심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밑바닥 민심에 둔감한 이명박 당선인최근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이명박 당선인이 밑바닥 민심에 너무 둔감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서울시장 재임시절 숭례문의 '대책없는 개방'에 대한 비판여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국민성금 제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인수위의 영어몰입 행보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을 제대로 읽었어도 인수위 힘실어주기에 나섰을까. 이경숙 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이 그후 얼마나 희화화되었는가를 알았다면 공식석상에서 '두잉 베스트' 표현을 굳이 했을까...
이명박 당선인이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현안들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시작단계부터 민심과 엇박자를 드러내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이어지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문제는 이 당선인 주변에서 합리적인 판단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당선인의 최근 인사를 놓고 '코드인사' 라는 지적이 생겨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코드인사 시비는 계속되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같은 철학,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서 서로가 박수쳐주는 광경을 보게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이 당선인이 느닷없이 국민성금 제안을 꺼냈을 때, 이경숙 위원장은 "숭례문은 정부의 숭례문이 아니라 국민의 보물"이라면서, "국민 한 명 한 명의 정성으로 복원해서 마음을 추스르는, 그리고 소망을 다시 깨우는 그런 제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맞장구쳤다. 만류는 못할망정, 새 정부가 국민모금운동을 추진하겠다고 인수위원회 브리핑까지 해서 일을 키운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 주변에도 '예스맨'은 넘쳐날 것같다. 그러나 주변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이명박 당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민심을 제대로 읽을 통로를 확보하고, 주변의 쓴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의 민심 엇박자는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