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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참사, 태안반도 유조선 사고 등과 같이 노무현 정권이 지난 5년간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일을 무리해가면서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10분의1 만큼이라도 문화재 관리에 관심을 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발언들은 "숭례문 화재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나경원 대변인의 발언들입니다. 그런데, '숭례문 화재'의 책임 소재 공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는, 정작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허술했던 안전관리에서부터, '숭례문 개방' 당시 시민들의 출입을 금지시킨 2층 누각에 올라서서 손을 흔들며 찍힌 사진이 드러나는 등, '숭례문 개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야기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계천 복구공사 당시에도 출토된 조선시대 유구들을 "웬 돌덩어리"로 취급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입니다.

 

그래서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노무현 때문" 발언을 옹호하면서, 이명박 당선인을 보위하고자 다양한 기사들을 동원합니다. 먼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적한, 방형남 논설위원의 문제의 칼럼 <오늘과 내일/ 숭례문, 베네치아 ‘불사조 극장’처럼>을 돌아봐야 합니다.

 

"베네치아 시민과 이탈리아 국민은 슬픔에 잠겨 있지만은 않았다. 화재 다음 날부터 재건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기업과 개인의 정성이 쏟아졌다.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나흘 만에 100만 달러가 넘는 성금을 모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외국의 기업과 개인,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도 모금에 동참했다. 파바로티는 “페니체 없는 베네치아는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며 모금공연을 했다.

 

베네치아 시는 ‘코메라 도베라(원래 모습 그대로 있던 곳에)’를 외치며 완벽한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잔해 수습에만 3개월이 걸렸다. 중간에 시공회사가 바뀌는 진통을 겪은 끝에 7년이 지나 새 극장이 완공됐다. 2003년 12월 14일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콘서트로 베네치아 불사조는 부활했다. 비슷한 운명의 숭례문 또한 불사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숭례문을 불사조로 부활시키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지적대로, 이 칼럼은 '국민성금 모금'을 '선동'하는 칼럼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듯 이명박 당선인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을 타격하는 기사 <숭례문 불타던 날 … 유홍준 ‘암스테르담 휴가’>를 실었고, 3면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화재 … 어처구니없는 문화재청장> 를 신문에 게재합니다.

 

하지만, 숭례문의 직접적인 관리는 분명히 서울특별시장의 관할 하에 서울특별시 중구청이 맡고 있습니다. 이건 분명하게 지적하고 넘어가야죠.

 

그러다가, 한나라당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기사도 공개합니다. 13일자 기사 <[기자의 눈/조수진]盧대통령 안보이는 숭례문 참화와 9·11…>입니다.

 

이 기사는, 한나라당의 주장 "숭례문 화재도 노무현 때문"을 입증하기 위해, 명백한 사실조차 왜곡했다는 점이 심각합니다.

 

"자기 집에는 6번이나 가놓고 왜 재난 지역에는 가지 않느냐"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는, 주장 입증을 위해 요즘 수구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봉하마을'을 동원합니다. 다음 부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진 지 사흘째인 12일.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숭례문 화재 현장을 찾을 계획이 있는지를 여러 차례 물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국무회의 시작 전엔 “국무회의에서 논의되는지 지켜보죠”라고 했다가 오후 3시경엔 “현장을 찾을 계획은 아직 없다는데, 기사는 쓰지 마시죠”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퇴임 후 살 집의 신축공사가 한창인 고향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6번이나 방문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 할 말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임을 보여주면 좋겠다."

 

집에는 6번이나 갔으면서 왜 재난 지역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미심쩍었는지 이런 이야기도 해놓았습니다.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즉각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한 후 현장을 방문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봉하마을'이라는 말을 꺼낸 경위 자체가 정략적이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실토한 부분이나 다름없습니다.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가 그러면서도 근거 입증을 위해 제시한 키워드는 바로 '부시'입니다.

 

"다만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국민은 최고지도자의 신속하고 결연한 움직임에 위안받고 안도한다. 2001년 9·11테러 다음 날 폐허로 변한 ‘그라운드 제로’에 나타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점퍼 차림에 메가폰을 잡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2001년 9·11테러 다음 날'과 '9월 14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뉴욕 대참사 현장을 방문해서 구조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모두 USA를 외치며 다시 일어설 것을 다짐했습니다."- KBS 2001년 9월 15일자 보도 <[국제]부시, 뉴욕 현장 방문>의 일부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는 '2001년 9·11테러 다음 날'이라고 했지만, 유투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 동영상에서도 '9월 14일에 행해진 연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방송사도 부시 대통령의 뉴욕 대참사 현장 반문 후의 격려 연설을 15일에 보도했습니다. 이 중요한 연설이 9월 12일에 이뤄졌다면, 세계의 눈이 집중돼 있던 사건에 관한 연설을 3일이나 늦게 보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화씨 9/11>에서의 한 장면. 9.11 테러 발생 소식을 듣고도 대응이 늦음으로써, 마이클 무어의 패러디 대상이 된 조지 W.부시 미 대통령
<화씨 9/11>에서의 한 장면. 9.11 테러 발생 소식을 듣고도 대응이 늦음으로써, 마이클 무어의 패러디 대상이 된 조지 W.부시 미 대통령 ⓒ 스폰지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부시 대통령의 '초기 대응'에 관련된 기사도 돌아보도록 합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개혁에 관해 연설하던 도중 테러분자들의 동시다발성 테러공격에 대한 첫 보고를 받은 뒤 곧바로 워싱턴으로 복귀하지 않고 루이지애나주의 슈리브포트 인근의 박스데일 공군기지로 이동한 후 다시 그곳에서 네브래스카주 전략공군사령부로 자리를 옮겼다.

 

부시 대통령이 없는 백악관에서는 카렌 휴 수석보좌관이 기자들에게 “연방정부는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금융시스템도 정상 가동중”이라고 애써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저녁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이 대국민연설을 한 직후 TV 해설자들은 생방송에서 왜 부시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 복귀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해설자들이 뼈아픈 반문이 전파를 타자 백악관 보좌관들은 부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악관은 테러 발생 초기에 대통령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 있다는 “믿을 만한 첩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즉 테러범들에 납치돼 피츠버그에서 추락한 여객기가 급보를 받고 워싱턴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피신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을 국민이 받아들이건 말건 이미 엎질러진 물.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그의 대처에 달려 있다." -<국민일보> 2001년 9월 13일자 기사 <美國 테러 대참사 / 부시 초기대응 비판론>의 일부-

 

<국민일보>의 해당 기사에는, 부시 대통령의 초기 대응을 직접하는 미국인의 목소리가 그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비판자들은 정부 지도자들이 수도 워싱턴DC을 포기한 것은 지난 1812년 영국군이 워싱턴으로 진격한 날 이후 처음이라고 지적했다.남북전쟁의 암울한 시절 남군이 포토맥강을 넘어 쳐들어왔을 때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에서 떠나기를 거부했다.

 

공화당원인 윌리엄 베네트 전교육부장관은 “지금은 1812년이 아니다.대통령이 도망간 것 같이 보여서는 안된다”라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한 성난 독자는 워싱턴포스트에 “국가 위기시 대통령이 직접 모습을 나타내 국민들로부터 확신을 얻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네브래스카주에 안전하게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직접 모습을 나타낸', 그것도 '현장에 직접 모습을 나타낸' 시기는 2001년 9월 14일이었습니다. 조수진 기자가 '기름유출 사고 발생 나흘 후 태안에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국가 위기시 대통령이 직접 모습을 나타내 국민들로부터 확신을 얻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네브래스카주에 안전하게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던 미 워싱턴포스트지 독자의 팩트를 언급했다면, 근거 있고 일리 있는 기사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숭례문 화재'가 9.11 테러나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와 같은 수준의 국가적 재앙은 아닙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그라운드 제로' 방문 연설 시기는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억지로 '사저 6회 방문'과 연결지어,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엄호와 '선동'에 나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카르티나 재해' 당시에도 부시 대통령의 처신은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 주에 상륙한 시점은 2005년 8월 29일,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휴가 중단'과 함께 백악관에 복귀한 시점은 8월 31일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즈>가 당시 실시했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카르리나 대응법 찬반여부'에 관해서는 51%가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그리고 복구 진도에 대해서는 '불만족'과 '화가 난다' 모두 50%였습니다.

 

 '카트리나로 인한 자연 재해' 소식을 듣고도 애리조나에서의 휴가를 계속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미국 온라인 정치토론 사이트 '싱크 프로그레스'
'카트리나로 인한 자연 재해' 소식을 듣고도 애리조나에서의 휴가를 계속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미국 온라인 정치토론 사이트 '싱크 프로그레스' ⓒ Think Progress 갈무리

 

국내 언론에서도 부시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미국 여론에 대한 보도가 자주 있었습니다.

 

"카트리나 대참사의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한 미 언론의 취재사냥이 본격화하고 있다. 새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언론들이 내리는 결론은 “부시 잘못이 제일 크다”는 것이다.

 

미 시카고 트리뷴지는 4일 허리케인 피해지역인 멕시코 만에 미 해군 강습양륙함 바탄호가 정박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신문에 따르면 바탄호는 수십대의 헬기, 수술실 6개, 수백개의 병상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하루에 10만 갤런의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함정은 지난달 29일부터 단 한명의 환자도 수용하지 않은 채 이 해역에 머무르고 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바탄호는 미 연방정부가 마비증상에 걸려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보스턴 글로브지는 같은 날 마이크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의 전력을 폭로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일 현장시찰에서 “마이키, 수고하네”라고 어깨를 두드렸던 인물이다.

 

이에 따르면 2001년까지 그는 국제 아랍말협회(IAHA) 회장을 지내다 쫓겨났다. 이 협회는 사라브레드 말 등의 혈통을 관리, 감정하고 전시회를 주관하는 단체인데 감독소홀로 소송이 잇따르자 사임을 강요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오클라호마 대학 동창이자 부시의 측근인 조세프 올바우 FEMA 청장의 추천으로 FEMA 부청장으로 취임하고 곧 청장직을 물려받는다. 정실인사의 표본인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뉴올리언스에서 피해가 발생해 부시가 백악관으로 돌아왔을 때 곁에는 애완견 바니 밖에 없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뉴욕 5번가의 페라가모에서 구두를 고르고,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이 메인주에서 휴가를 즐기는 등 이른바 A팀 참모는 놀고 있었고 브라운 같은 2류 인물 만이 보좌했다는 뜻이다.

 

흑인 칼럼니스트 밥 허버트는 5일자 뉴욕타임스에서 이 같은 난맥상은 결국은 리더십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2차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처럼 정치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지만, 문제는 능력”이라고 대통령의 자질론을 거론했다.

 

그는 “피부색이 검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시 정권에겐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어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 것이 구호가 늦어진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2005년 9월 6일자 기사 <美언론 "대재앙은 부시 탓" 폭로전>의 일부 

 

 '카트리나 당시' 조지 W. 부시 관련 보도
'카트리나 당시' 조지 W. 부시 관련 보도 ⓒ NewYork Times 갈무리

 

 '뉴욕 타임즈'와 CBS가 공동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51%의 미국인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카트리나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즈'와 CBS가 공동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51%의 미국인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카트리나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 NewYork Times 갈무리

 

 재해 복구 진도에 대해서는 39%가 '불만족'을, 11%가 '화가 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재해 복구 진도에 대해서는 39%가 '불만족'을, 11%가 '화가 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 NewYork Times 갈무리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금 이런 것을 배우라고 따지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친위대 노릇? 안 말린다, 하지만 제대로 하라

 

패턴을 보면 참 재밌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이나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특정한 발언이나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의 '조중동'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리수를 둬서라도, 그 발언이나 행동을 뒷받침합니다.

 

'노무현'과 관련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리수라도 둔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이나 한나라당의 사례와는 달리 '비난'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앞서 언급한 기사들처럼, 사실 관계 왜곡도 서슴없이 저질러가면서요.

 

언론이 특정 당파성을 띠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 문제는 저렇게 언론이 해서는 안될 '사실 관계 왜곡'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며 독자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여론이 언론에 실리는 것인지, 언론이 여론을 만드는 것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입니다. 저게 바로 '조중동'이 한 다스로 묶여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친위대 노릇, 말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다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으로서의 품위도 지키고, 최소한의 윤리는 어기지 말아야 친위대로서의 정당성도 갖습니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진중권씨의 언급대로 "노무현 정권 5년"을 다 보낸 피곤함과 동일한 피곤함이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왜일까요?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 그리고 한나라당의 비난 유발성 발언 및 행위, 무슨 일을 하든 무리수를 둬서라도 옹호하려는 '조중동'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시절이 아니에요.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친위대 노릇',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숭례문 화재#노무현#이명박#동아일보#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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