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지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새싹이 난다고 하는 우수(雨水)건만 아직도 해가 지고 나면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옷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어제(18일)는 외출할 일도 없어 종일 집 안에만 있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찬거리도 살 겸 집을 나섰다. 운동 삼아 아파트 단지 내 쇼핑센터가 아닌 길 건너 단독주택 가를 한 바퀴 돌아올 생각으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로 나라 안이 떠들썩해도 서민들이 사는 세상은 무심한 듯 여전히 분주하기만 했다. 떡집도, 과일가게도, 야채상도… 야채가게엔 묵은 나물들이 풍성했다. 시래기, 고사리, 취나물, 도라지, 말린 호박, 말린 가지 외에도 이름 모를 나물들로 그득했다. 옆집 과일가게엔 과일들을 채치고 맨 앞자리에 밤, 땅콩, 호두가 대야에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쌀가게 역시 노란 기장, 수수, 붉은 팥, 찹쌀, 검정콩 등을 조금씩 포장해 진열해 놓았다. 그것을 보니 정월대보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이것저것을 골라 주문하자 주인아주머닌 곱은 손으로 검정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화려한 쇼핑백이 아니어서 주고받는 모습이 더 정감있어 보인다. 분위기에 젖어 나도 나물 몇 가지와 부럼을 샀다. 종일 일에 시달린 듯 얼굴과 옷에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아저씨도 오늘 하루 수입이 괜찮았는지 밤과 호도, 땅콩을 넉넉히 달라고 한다. 인심 좋은 주인아저씬 수북이 두 되 씩을 담고도 커다란 손으로 한주먹 집어 덤으로 주셨다. 차림새와는 달리 밝은 표정으로 부럼을 사 들고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집에 돌아와 사온 시래기 껍질을 벗겨 고운 모래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을 씻어 된장을 풀고 멸치 간 것과 들깨가루를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끓이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정월대보름맞이로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에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떠했는지 궁금해 내친김에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모르고 있는 재미있는 풍습도 꽤 많았다.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밤, 호두, 땅콩 등을 깨물어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기원을 하는 ‘부럼 깨기’나 아침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가라~’고 외쳐 더위를 팔면 그해 여름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 ‘더위팔기’는 지금도 많이 행해지고 있는 풍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옛날엔 소에게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오곡밥과 나물을 준 뒤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단다. 아이들은 ‘액 연(厄鳶)을 띄운다’하여 연에다 액(厄)이나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 액을 보내고 복을 맞는다)이라고 써서 연을 날리고 놀다가 해질 무렵에 연 줄을 끊어 하늘로 보내는 것으로 액막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보름달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어 초저녁에 온 동네 아이들이 한데 모여 "달님~ 달님~"하며 달맞이 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나도 어릴 적에 불놀이를 하다, 설빔으로 새로 산 옷에 불똥이 튀어 엄마한테 혼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또 ‘복토 훔치기’라 하여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하기도 하고 ‘용알 뜨기’라 하여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정월대보름날엔 풍흉을 점치는 여러 가지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요즘은 자치구마다 세시풍속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준비되어 있어 멀리 가지 않고도 가까운 동네 주변에서 ‘정월대보름’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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