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이산>(연출 이병훈 김근홍, 극본 김이영)은 영조(이순재 분)의 승하를 그리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이날 <이산>이 자체 최고 시청률인 35.4%(AGB닐슨 미디어리서치 기준)을 기록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었다. 이제 <이산>에서는 영조가 퇴장하고 정조와 그의 아들에 대한 모습이 그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세 부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죽는 순간까지 세손을 지킨 영조 <이산>에서 영조는 죽는 순간까지 세손(이서진 분)을 지켜내었다. 영조는 자신의 아들이자 세손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이창훈 분)를 뒤주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하는 비정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세손에게는 끝없는 애정을 보여주었다. 물론 세손에게도 매몰찬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세손이 훗날 성군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고 사도세자를 죽인 데에서 오는 회한 때문이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영조는 세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은 세손까지 죽이려고 갖은 모략을 꾸며내었지만 그것은 세손을 아끼는 영조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었다. 세손이 반역을 꾀했다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 무기들을 세손이 머무는 동궁전에 몰래 파묻어놓기도 하였으나 무기에 적혀 있는 날짜를 파악한 영조에 의해 들통 나기도 하였고, 세손을 암살하려는 기도를 몰래 수하들에게 조사시켜 주모자를 파악하기도 하였다. 또한, 세손이 노론 세력들에 의해 폐위되고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기적적으로 깨어나 세손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물론 세손 역시 뛰어난 무술과 지략으로 스스로를 보호해 나가기도 했지만 영조가 없었으면 세손 또한 사도세자처럼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조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세손을 보호하고자 애썼고 그 노력 덕분에 세손은 보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영조는 18일 방영분에서도 영조는 송연(한지민 분)을 불러 사도세자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여 세손에게 아버지의 얼굴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영조는 죽는 순간까지도 세손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를 지켜낸 것이었다.
순조를 지키지 못한 정조 이와 달리 정조는 자신의 아들인 순조를 지켜내지 못하였다. 원래 정조에게는 순조 이전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 현재 드라마 <이산>에서 성송연으로 그려지고 있는 의빈 성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문효세자가 바로 그였다. 그러나 문효세자는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다음으로 낳은 순조는 수빈 박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순조는 왕세자로 책봉되자마자 정조가 승하하는 바람에 11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정조에게는 영조라는 버팀목이 그가 장성할 때까지 있었던 반해 순조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불과 11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순조의 불행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정조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계승하려고 했던 순조였지만 정순왕후에 의해 정조가 추진하던 개혁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왕권 강화에도 힘을 쏟았지만 일부 권력 가문들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거기에 1809년의 유례없는 기근과 1811년의 홍경래의 난까지 겹치며 김조순 일파의 세도정치가 시작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아들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기도 하기도 하고 다시 일선에 복귀하기도 하지만 끝내 힘없는 임금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불우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순조는 제법 훌륭한 능력을 지녔지만 그에게는 정조와 달리 그를 보호해줄 아무런 힘도 없었다. 정조가 4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또는 문효세자가 죽지 않고 보위에 오른 후 순조가 장성하여 임금이 되었다면 순조 자신은 물론이고 조선의 역사도 비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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