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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우체국의 박종식 집배원. 도봉구 쌍문1동 1구역이 그의 담당이다.
 강북우체국의 박종식 집배원. 도봉구 쌍문1동 1구역이 그의 담당이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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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을 가져다준다는 까치 울음소리만큼이나 반가운 사람이 있다. 바로 우편집배원이다.

편지가 가득 담긴 큰 가방을 메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집배원이 배달하는 건 편지뿐만이 아닌 '정'과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이제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전자메일'이 등장하면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덩달아 편지 업무를 담당하는 집배원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신  그들은 편지가 아닌 고지서와 택배상자를 들고 여전히 이웃들과 함께하고 있다.

오늘날, 집배원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업무를 하고 있을까? 지난 18일, 강북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박종식(36) 집배원의 하루를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2000여 가구에 300여 통 배달... 10년차 집배원의 하루

"아따~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큼직한 손을 쓱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말투에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묻어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보성. 고향을 떠나 집배원 일을 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이마저도 상시위탁집배원으로 일했던 3년을 뺀 햇수다.

이래저래 나이를 합하고 빼어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23세'라는 나이가 나온다. 그가 처음 집배원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다.

"20~30년 근무한 선배들에 비하면 10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반 직장이라면 '선배' 호칭은 듣고 남았을 10년이라는 시간이 '집배원 세계'에서는 그리 놀랄 경력이 아니란다. 선배 집배원들 역시 젊은 나이에 시작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강북우체국 2층 집배실의 내부풍경. 200여명의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현장이다.
 강북우체국 2층 집배실의 내부풍경. 200여명의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현장이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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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 작업을 하고 있던 그를 따라간 곳은 2층 집배실. 200여 명의 집배원들 모두 분주한 모습이다. 큰 꾸러미를 들고 1층과 2층을 넘나드는가 하면 당일 동선을 확인하는 등 그 업무도 가지각색이다. 특히 이날은 우편물량이 많은 '월요일'이어서 더욱더 바쁘다고 한다.

업무가 많은 것 외에도 바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우편배달 구역이 넓다는 것이다. '강북 우체국'에서 담당하는 지역은 강북구와 도봉구. 그 구역만큼이나 집배원들의 업무량도 많다. 그렇기에 마을의 '동' 단위로 서너 명의 집배원이 업무를 나눠 담당한다.

박 집배원이 담당하고 있는 마을은 도봉구 쌍문1동. 총 4구역이 있는데 그는 1구역 담당이다. 그가 배달하는 우편물은 등기를 포함해 하루 평균 3천여 건. 하루 들리는 집만 해도 총 2천여 가구다.

주민들 일에 앞장선 덕에 마을에서 '인기' 많아

"자, 이제 출발합시다!"

오전 9시가 지나면 사실상 모든 배달 업무가 시작된다. 집배원의 생명인 '신속 배달'을 위해 박 집배원도 길을 나선다. 원래는 그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차가 붐비는 도로를 지나야 하기에 서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택배를 담당하는 박준형(36) 집배원의 업무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가는 동안 쌍문1동의 지형을 대략 눈짐작으로 살필 수 있었다. 비탈진 언덕길과 좁은 골목이 눈에 띈다. 박준형 집배원은 "쌍문1동은 유난히 언덕길이 많다"며 "차를 운전하는 택배 집배원들은 편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우편집배원들은 많이 힘들 것"이라 걱정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쌍문1동 어느 미용실 앞. 오토바이 뒤에 매달린 빨간 가방에서 우편물을 꺼낸 박 집배원이 미용실로 향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우편배달 업무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우편배달 업무를 한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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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원장 쌤! 주말 잘 보냈어요?"
"혀 깨문 것이 아물지를 않어. 여기 봐봐. 어때?"
"웨메~ 어쩌다 그러셨어요?"

미용실 원장인 고명옥(54)씨와 박 집배원의 대화 내용이 매우 친숙하다. '친 오누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강북으로 근무지를 옮긴 후 꾸준히 연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다가다 마주친 그 시간이 벌써 4년이나 됐다. 근무했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적은 시간이지만 박 집배원은 "정을 쌓기에는 충분했다"고 말한다.

박 집배원은 고 원장에게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노숙인들의 머리를 자르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고 원장은 "처음 부탁을 받고는 어리둥절했지만 그 이유가 너무 예뻐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 후, 2개월 동안 하루 3시간의 '커트 강의'가 계속됐고 노력 끝에 원하던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특별한 스승과 제자인 셈이다.

고 원장에 따르면 박 집배원은 '인정 많은 사람'이다. 길 잃은 치매노인을 보살펴 집으로 돌려보내고 휴가를 반납해 태풍 피해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이곳저곳에 인정을 베풀기 때문이다.

박종식 집배원이 자주 들리는 한 미용실. 원장 고명옥씨(왼쪽)에게 직접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박종식 집배원이 자주 들리는 한 미용실. 원장 고명옥씨(왼쪽)에게 직접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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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일을 하게 된 데에는 그의 형 박원식(48·노원 우체국) 집배원의 영향도 컸다. 꾸준한 자원봉사로 '체신 봉사상'을 받는 등, 이름이 나있는 그의 형은 그에게 집배원 일을 권유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집배원에서 봉사활동까지, 본인보다 한 발자국 앞선 형은 그에게 '역할모델'과도 같다. 형을 통해 '집배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형과 함께 매년 복날마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식사를 대접하는 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다.

박 집배원에게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고 못질을 해주며 옷장을 날라주는 것도 봉사인 것이다. 주민들 일에 앞장선 덕에 그는 마을에서 '인기'가 많다. 웃는 인상과 밝은 목소리도 인기에 보탬을 한다.

교통사고 나도 마음 편히 입원하기 어려워

미용실을 나와 박 집배원의 '애마'인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큰 가방이 뒤에 달려 있어서인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자리였다. 올라타자마자 의자가 '푹' 꺼지는 것만 같았다. '우편물과 두 사람의 몸무게를 모두 견딜 수 있을까' 염려됐지만 우리를 태운 오토바이는 좁은 골목길을 쌩쌩 달려나갔다.

동네 어귀에 오토바이를 세운 박 집배원은 빨간 가방에서 우편물을 꺼낸 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를 잰걸음으로 오갔다. 2천 가구를 모두 돌아야 하기에 서둘러야 한다. 나는 그 걸음을 따라가기 위해 한참을 뛰었다. 오르막길이 많아 숨이 찰 만도 하건만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집배 업무 10년간의 '노하우'가 녹아있기에 가능한 일일까.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나는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등기우편을 전할 때는 일일이 수신인의 사인을 받는다. 마을 주민들과 친하기 때문에 '건강' 등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필수다.
 등기우편을 전할 때는 일일이 수신인의 사인을 받는다. 마을 주민들과 친하기 때문에 '건강' 등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필수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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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던진 우편물이 담장을 넘어 집 마당으로, 대문 앞 사각 우편함으로 정확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잠시 넋을 잃는다. 아무렇게나 '휙' 던진 것 같은데 정확히 '골인'하는 것이다.

빠른 손놀림으로 이 집, 저 집 우편물을 집어넣던 그가 잠시 멈춰 서더니 숨을 고른다.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차례다. 비록 2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배달 업무 시작 후 처음 갖는 긴 여유다.

그러나 그는 "2분이면 한 코스를 끝낼 수 있는 시간"이라며 "집배원들에게는 2분도 너무 길다"고 한다. '신속함'이 최우선인 것이다.

박 집배원이 마을을 돌며 우편배달을 하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은 먹을 시간이 없어 건너뛴다. 대부분의 집배원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힘든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업무상 오토바이를 사용하기에 교통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도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치료하려면 보통 2~3개월은 쉬어야 하는데 그 업무가 같은 조원에게로 넘어가요. 업무를 넘겨받은 사람은 평소 2배의 일을 해야 하죠. 동료에게 미안해서라도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털고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박 집배원 역시 작년에 4~5번의 사고를 겪었다. 그 중 하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앞 트럭의 문이 갑자기 열렸고 거기에 부딪혀 몸이 튕겨나가 다른 트럭으로 들어간 사고"였다. 큰 사고였음에도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다음날 출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나, 동료를 위해서나 모두에게 '천만다행'이었다.

"택배 물량이 많을 때도 힘이 들죠. 작년 추석 같은 경우에는 물량도 많은데 비까지 내렸거든요. 물건이 조금이라도 비에 젖으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이 더욱 늘어나죠."

연휴인 '명절' 역시 업무량이 많기에 무턱대고 좋아할 수도 없다. '눈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땅이 꽁꽁 얼어 사고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도 방심할 수 없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그는 딸 진희(9)와 아들 진우(7), 그리고 아내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 특히 일을 끝내고 돌아간 아빠에게 '호' 입김을 불어넣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3천 통의 우편물을 70개의 함에 분류하는 5시간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빠 사랑해요"라는 자녀들의 편지를 받으면 힘이 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빠 사랑해요"라는 자녀들의 편지를 받으면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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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들어선 박 집배원을 기다는 것은 '우편 분류' 작업. 다음 날 배달해야 할 우편물을 번지별로 분류하는 일이다. 그가 업무를 나간 새, 들어온 우편물만 해도 작은 상자 5개와 큰 상자 2개. 보통 작은 상자 2개 정도가 들어오는 것에 비하면 우편물이 많다.

각 집배원의 자리에는 책꽂이 형식의 칸막이가 쳐져 있다. 총 70개의 함으로 되어 있는데 그 밑에는 암호처럼 숫자들이 적혀있다. 알고 보니 각 배달 구역 번지수를 뜻하는 것. 3천 통이 넘는 우편물을 번지별로 구분해 70개 함에 일일이 넣는 것이 1차로 그가 할 일이다.

상자를 책상 위에 올린 그가 우편물을 한 손 집어 들더니 각 번지에 해당하는 우편물들을 빠르게 분류한다. 마치 2배속 영상을 재생하는 듯, 빠른 속도로 작업이 이뤄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각 함의 위치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일이다. 시선은 우편물과 함을 빠르게 오가고 손놀림 역시 예사롭지 않다. 10년 경력이 아니고서야 흉내낼 수 없는 '달인'의 모습이다.

내가 50통의 우편물을 분류하는 동안 그는 500여 통의 우편물을 작업하는 듯 보였다. 그만큼 작업 속도가 차이 나는 것이다. 그는 "한 개가 잘못 들어가면 배달이 느려지기 때문에 집중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인 듯 보였다.

▲ 우편분류작업 하루 5시간 넘도록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한다. 70개의 함에 번지별로 우편물을 넣는 것이 1차 작업이다. 빨리 감기를 한 듯, 빠른 속도의 박종식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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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류작업만 기본 5시간 동안 이뤄진다. 서서 하는 작업이기에 다리가 결리고 허리도 아프다. "저 친구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다"고 말하며 박 집배원이 발끝을 바닥에 '툭툭' 내리친다. 다리가 아픈 모양이다.

분류작업을 하는 내내 그가 몇몇 우편물을 따로 빼어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특별한 사연이 있는 우편물"이라 한다.

"이 집 아주머니가 카드빚이 많아요. 그런데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고지서를 따로 전해 달라 부탁한 거죠. 이렇게 고무줄로 묶어 뒀다 전화가 오면 따로 전해주곤 합니다."

휴가와 교육 등으로 자리를 비운 박 집배원을 대신해 우편분류를 하는 동료는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다른 우편물과 함께 배달하고, 그 집에서는 한바탕 부부싸움이 나기도 했단다.

분류되는 우편물들을 살펴보면 98%가 '고지서', 나머지는 '광고 책자'다. 편지의 경우, 군인들이 보내는 편지 외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가 처음 일했던 10년 전에도 편지 수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맞아 보내는 카드들은 많았다. 동료들끼리 "누구 구역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카드가 발견되나"를 내기로 걸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편지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정이 그만큼 줄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담당 구역 주민들과 만나면서 '정'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집배원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일 할 계획이다.

집배원의 정년은 57세. "그만두면 과연 뭘 하나"고 운을 뗀 그는 곧 "하긴 워낙 일이 고돼서 57세 이후로는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30㎏ 무게가 나가는 상자를 들고 2~3층 건물에 올라가는 일이 허다한데 젊은 사람들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 많아, 그는 집배원을 "정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체력적으로는 힘든 직업"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우편배달을 하고 들어와서도 선 채로 5시간 넘게 우편분류를 하는 것만 보아도 그 이유를 알 듯하다.

"술 먹지 않으면 잠 안 올 만큼 고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박종식 집배원이 업무를 끝내고 우체국을 나서는 저녁 8시. 업무가 끝나지 않은 직원들은 끝까지 남아 마무리를 한다.
 박종식 집배원이 업무를 끝내고 우체국을 나서는 저녁 8시. 업무가 끝나지 않은 직원들은 끝까지 남아 마무리를 한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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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가 끝나면 동료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올 만큼 몸이 고되기 때문"이란다. 도대체 얼마나 고되기에 '술의 힘' 없이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 고된 일과를 잠깐 훑었을 뿐인 내게, 이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박 집배원이 업무를 다 끝낸 시간은 저녁 8시. 업무가 끝나지 않은 직원들은 끝까지 남아 마무리를 한다. 작업이 밀리면 다음 날 배달까지 미뤄야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체국의 불은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는다. 그 불을 대신 꺼줄 수 없는 박 집배원은 우체국을 나서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동료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게 헤아릴 수 있기에 '힘내라'는 응원을 건넨다.

"이게 다 사람 사는 거죠. 일하면서 사람들 만나고 일 끝나서도 동료들 만나고.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기에 '집배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입니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가득한 박종식 집배원과 하루를 보내며 세상이 변해도 집배원들의 따뜻한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하루는 참으로 고되고 힘들지만 우편을 기다릴 사람들과의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기에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김정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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