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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이었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였던 오랜 친구가 다행히도 내 정성(?)에 감복을 했는지 드디어 교회를 함께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내가 교회 문을 박차고 나오게 될 서곡에 불과했습니다.

낯설어 어설픈 얼굴로 첫 예배를 드리고 난 친구를 목사님이 따로 불렀습니다. 내가 그토록 어렵게 전도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아는 목사님이기에 당연히 좋은 말씀으로 친구의 마음을 다독여줄 것으로 믿은 나는, 별 생각 없이 찬양대들과 함께 다음 찬양을 연습했습니다. 당시 나는 교회에서 찬양 지휘를 맡은 집사였습니다.

한참 동안 목사님과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온 친구의 얼굴이 편치 않아 보였습니다. 결국 다음 주일이 되기 전에 친구는 내게 선언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교회 체질이 아닌 것 같다. 그토록 정성을 쏟아준 자네한테는 미안하지만 교회를 안 나가기로 결정했어."

애써 전도한 친구, 목사의 탐욕 때문에 교회 발길 끊어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사실 고집센 그 친구가 내 이야기에 수긍하면서 교회를 나가기로 마음먹었던 일이 큰 사건이었다면, 다시 그 마음을 철회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더 큰 결단이었다는 것을 나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교회에 나간 첫날부터 그에겐 실망이 컸던 것입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내게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헌금을 잘 내고 교회에 봉사를 더 많이 할수록 하느님께 사랑받는 성도로 자라날 수 있다는 목사님 말에 난 솔직히 너무 실망이 컸어. 그 사람이 예로 드는 모범적인 교인들은 모두 헌금을 잘 내고 오로지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로 꽉 채워졌지.

난 처음에 자네 말을 듣고 기대가 컸어. 교회에 나가면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신의 영혼을 맑게 정화시킬 수 있는 교육을 좀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 나름대로 열심히 교육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스스로 기꺼운 사람으로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 내 부족한 점을 어느 정도라도 채울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거 말이야.

하지만 처음부터 헌금 같은 거나 강조하는 목사에게서 그런 교육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어."

친구의 말에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제야 목사님을 향한 그동안의 여러 인간적 불만이 내 속에서도 많이 곪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사에게 내 스스로 씌워버린 거룩한 가림막이 걷혀지다

목사님이 아무와 의논도 하지 않고 대형 에어컨 설치 등과 같은 굵직한 교회 비품과 자동차 구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헌금을 거의 반 강요했던 일, 거기에 종류만도 셀 수 없이 많은 헌금을 걷으면서도 그 내역과 사용처를 교회에 자세히 밝히지 않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당회장이기도 한 목사님이 교회를 어련히 잘 알아서 관리하실까, 라고 좋게 생각하려 애썼습니다. 간혹 목사를 향해 반기를 드는 성도들 때문에 교회가 어수선할 때도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님의 종에게 그러면 안 되지 않나, 라는 원론적 생각에만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떼지어 교회를 그만두면, 설교시간엔 "용서해야 한다"면서도, 사석에서는 그들을 향해 독설에 가까운 비난을 해대는 목사님도 그저 감정이 있는 인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목사를 향해 내 스스로 씌워버린 거룩한 가림막은 친구의 일로 걷혀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주위의 다른 목사들까지도 과연 심령이 가난한 자를 위해 애쓰고 있는 흉내라도 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하고 있는 헌금과 봉사행위가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바울이 코린트·데살로니키·에페수스·로마 등의 도시에 크고 웅장한 교회를 설립한 일을 수시로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바울 자신이 평생토록 천막 고치는 일을 하면서 고달프게 살았던 인생에는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질문을 성도들에게는 누차 해대면서, 정작 자신은 그 질문에 충심으로 대답한 일이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네가 늙어서는 남이 너를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라는, 비참한 순교에 대한 암시 같은 말에도 베드로의 대답은 한결 같았지만, 목사님이 그런 성경 내용에 대한 묵상을 하는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날이 갈수록 기름 발라 번들거리는 머리를 곧추 세우고 성도들 앞에서 온갖 권위를 내세우는 목 뻣뻣한 목사님의 모습이 자꾸만 크게 와 닿았습니다. 나는 결국 성도의 영적 성장에 대한 교육에 대해 말하면서, 새 신자에게만큼은 헌금요구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주의 종이 성경 속 하느님의 법을 선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오히려 핀잔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기억하면서 가이사의 것은 잊어버린 목사들

교회 나가는 일은 점점 고통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눈을 감고 오로지 찬양 속에만 묻혀 살던 시절엔 평화가 넘쳐나던 그 곳이, 눈을 뜨고 현실을 직시하자 곧바로 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교회 역시 속사정을 알고 나니 교회내부의 문제는 대개 비슷했습니다. 결국 나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지금까지도 교회를 떠난 일을 두고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 결정은 옳았다는 생각이 굳어질 뿐입니다. 교회를 떠난 후에야 나 같은 사람들이 세상엔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교회 밖에서 들여다보는 교회의 부패정도와 목사들의 이중인격 행태들이 더욱 심각하게 보였습니다.

물론 세상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훌륭한 목회자가 전혀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체 목회자들 중 과연 몇 퍼센트나 차지할지 묻고 싶습니다. 

온갖 죄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를 하느님이 결정했을 때, 아브라함이 간청했습니다. 처음엔 그 도시에 의로운 사람 50명만 있으면 파괴하지 않겠다던 하느님이, 아브라함과의 상담에 의해 단 한명의 의인만 있어도 파괴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수정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소돔과 고모라는 처참하게 파괴됩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엔 의인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나는 왜 이 내용이 자꾸만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교회에서 아무나 선생(목사) 되지 말라고 적어놨습니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회의 난립도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실정은 어떻습니까? 천주교나 불교처럼 독신서약이 필요한 성직자들은 자꾸 감소하는 요즘, 유달리 개신교 목사들만이 넘쳐납니다.

붉은색의 십자가들 작은 우리 동네만도 밤이면 수십개의 십자가 네온이 밝혀진다.
▲ 붉은색의 십자가들 작은 우리 동네만도 밤이면 수십개의 십자가 네온이 밝혀진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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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공동묘지처럼 빛나는 십자가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고달픈 시골로 내려가지 않고 복작대지만 돈이 흘러넘치는 도시에 남습니다. 밤이면 온 도시가 빨간색 십자가 네온으로 덮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어떤 외국인 친구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 광경을 보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보니 꼭 공동묘지 같네. 한국은 왜 이렇게 교회가 많지?"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목사들 대부분은 아직도 세금 내는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신도들에겐 온갖 핑계로 헌금을 강요하면서 그들 자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한 교회인지, 불쌍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긁어내기 위한 교회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는 바울의 금언은 이미 공허한 메아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거기에 교회가 커질수록 목사들은 권위와 권력까지 쥐게 됩니다. 부유하고 안하무인이었던 중세시절의 교황 부럽지 않은 일입니다. 중세 가톨릭이 그랬던 것처럼, 국외자들이 보기엔 하느님이 계실 만한 교회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교회를 바라보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교회개혁은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부패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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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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