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검팀이 불법 로비의혹 수사를 게을리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검팀의 사정에 밝은 법조계의 한 인사는 건물 구조까지 거론하면서 실질 수사기간의 절반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임채진 현 검찰총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송광수 전 검찰총장 등을 소환하지 않는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특검팀이 상주하고 있는 건물은 구조상 누가 소환돼 조사 받는지 다 알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까지 소환된 인물들을 보면 불법 로비 의혹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이어 "비자금 수사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상당 부분 진척시켜 특검에 인계한 것이지만 불법 로비 의혹과 관련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검법이 통과된 것은 신뢰성을 상실한 검찰이 자기 자신을 수사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지금과 같은 수사 답보 상태는 특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변호인단 소속 김영희 변호사는 "특검팀이 불법 로비 의혹 수사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와 관련해서 소환자가 전혀 없어 진짜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역시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의 불법 행위와 오랫동안 싸워온 시민단체 인사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팀장은 "21일 수사결과를 발표한 이명박 특검이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이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여론이 강하다"며 "만약 삼성 특검이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특검의 수사 결과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1차 수사 기한 만료가 곧 도래한다"며 "2차 수사 기한 때는 그동안의 수사를 보완하고 기소할 사람들을 추려내지 않겠냐"며 지금까지 불법 로비 의혹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다. 이어 박 처장은 "김용철 변호사가 임채진 · 이종백 · 이귀남 이름까지 밝혔는데도 소환하지 않는 것은 조사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하고, "만약 삼성 특검이 1차 수사기한이 끝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법로비 의혹관련 소환자가 누구냐?
지난달 10일 출범한 삼성 특검팀은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및 관리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지금까지 모두 50여명에 가까운 삼성 전 · 현직 임원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삼성증권 수서 전산센터에서는 지난 21일까지 11일 넘게 '비자금 관련' 전산자료를 다운받고 있다. 성과도 있다. 지난 20일 특검팀 고위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넘겨받았던 200명 명의의 차명의심계좌 수가 480여개에서 1700명 명의, 3700~3800개로 8배나 늘어났다"고 밝힌 바 있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한 4대 사건(에버랜드 · 서울통신기술 · e삼성 · 삼성SDS)의 피고발인들도 꾸준히 소환조사 중이다. 21일에는 김홍기 전 삼성SDS 사장이 김순택 삼성SDI 사장의 소환에 이어 '4대 사건'의 피고발인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유독 삼성 특검의 수사 3대 사안 중 하나인 불법 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해서는 소환된 사람이 없다. 특검팀의 특별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작년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이 정치권을 비롯해 법조계 · 재정경제부 · 청와대 등 국가권력기관만이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 시민사회단체까지 전방위적인 뇌물로비를 펼쳤다고 폭로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었다"며 "검사 40~80명에게 1년에 500만원~2천만원의 떡값을 명절에 건넸다"고 밝혔다. 또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와 국세청 등은 규모가 더 크다"며 "국세청 인사들에게 준 뇌물은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폭로했다. 이후 몇 차례의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뇌물로비 방법과 로비를 받은 인사, 그를 관리한 담당자들도 드러났다. 김 변호사는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설과 추석, 휴가 등 1년에 세 번 정도 정기적으로 기획팀에서 로비 대상 인사들에게 전달했고 이에 필요한 비자금은 삼성그룹 본관 27층 재무팀 관재파트 임원 사무실 내부에 벽으로 감춰진 비밀 공간에 보관했다"고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는 임채진 현 검찰총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송광수 전 검찰총장을 이른바 '뇌물 검사'로 지목하고, 이들을 관리한 인사로는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정연주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꼽았다. 이들은 즉각 의혹을 부인했다. 이 전 사장과 제 사장은 김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의 폭로는 일파만파 퍼졌다. 뒤이어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2004년 1월 삼성으로부터 명절 선물로 500만원을 건네받고 돌려줬다"며 김 변호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현금 제공이 어려울 경우 와인 등 현물을 제공해보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시 문건'이 추가 공개되기도 했다. 시작조차 않은 검찰의 불법로비의혹 수사... 특검은 "동시 진행 중"
삼성의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한 당국의 수사는 사실상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검찰 특별수사 · 감찰본부는 "정 · 관계 로비 수사는 특검이 해야 할 일"이라며 이 전 법무비서관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진술을 받은 것 외에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김 변호사가 첫 기자회견을 연 지 80여일 만에 서울 태평로 소재 삼성 본관을 이틀 동안 압수수색을 했지만 27층에 있다던 비밀금고는 찾지 못했다. 윤정석 특검보는 이와 관련해 "사무실 구조가 바뀐 곳도 있었다"며 "삼성 측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상당한 준비를 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수사의 첫 단추가 잘못 꿰진 만큼 더욱 바삐 움직여야 할 특검이지만 아직까지 불법 로비 의혹 수사가 진척되는 것 같지는 않는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특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0일 "수사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어느 것을 먼저 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며 "강약은 조절하지만, 동시병렬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는 데까지, 힘 닿는 데까지 할 생각"이라며 "지금의 수사 인력 갖고 전부 다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겠냐"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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