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세종>은 첫 방송부터 미스터리 구조를 끌어와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주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성인연기자들이 투입된 이후 시청률은 정체된 상황. 여기에 성인연기자들의 미스캐스팅 논란이 이는 등 안팎으로 곤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세종대왕을 소재로 한다는 자체만으로 큰 이슈를 끌 수밖에 없었다. 한글을 창제하며 많은 업적을 남기고, 성군이라는 칭호를 받는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뜻 영웅이나 다름없는 세종대왕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멸의 이순신>을 성공리에 끝낸 윤선주 작가이기에,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었다. 첫 방송에서 사극에 드물게 미스터리 구조를 끌어와 어린 충녕대군이 납치되는 등 이야기에 재미가 더해졌다.
또한 폭군으로 기억되는 양녕대군의 카리스마스와 태종의 위엄 있는 캐릭터 등 전반적인 캐릭터도 힘이 있었고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그런데 역시 성군이었던 세종대왕 소재 자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든 모양이다.
타고난 영웅, 시청자들에겐 매력 없어! 사실 그동안 사극 드라마에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했지만 그 영웅은 세종대왕과는 다르다. 모두가 하나같이 굴곡진 인생을 살았거나 혹은 난세에 태어나 수많은 전쟁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국민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허준>만 해도 그가 조선시대의 명의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며, <불멸의 이순신>만 해도 난세에 태어나 왜를 물리치는 등 하나같이 쉽게 영웅이 되지 않았다. 왕을 소재로 삼은 <용의 눈물>에서도 조선을 건국하기까지의 모습이 쉽지 않았고, <태조 왕건>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세종대왕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인 태조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왕이 되면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조선시대를 꽃피운 인물이다. 그래서 전쟁 신은 기대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인간 승리의 진한 감동을 보여줄 수도 없다. 물론 세종대왕은 역시 조선시대의 성군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본받을 만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조선시대의 화려한 전성기를 이끌어 내며 어쩌면 조선시대가 500년이라는 세월을 유지하는데 큰 공헌을 세운 왕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분명히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서는 별 다른 매력을 뿜어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너무나 잘해서 모든 일을 한다 해도 분명 다 잘 된 것이니 시청자들로서는 드라마를 보는데 긴장감 혹은 스릴,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당시에 살았던 장영실의 인생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세종대왕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세종대왕의 일대기는 별다른 흥미를 이끌어내기 힘들고, 윤선주 작가도 분명히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린 충녕대군이 납치되고 고려를 재건국하자는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드라마에 삽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미스터리 구조와 고려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의 모습은 역사학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허구와 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보여주고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 논란이 일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역시나 타고난 영웅은 만들어진 영웅보다 매력이 없다는 점이 다시금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대왕세종>은 기대만큼 성과를 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착하고, 영리하고, 어진 완벽한 영웅은 싫어!
더욱이 역사학자들의 비난과 함께 시청률이 정체되는 상황에 드라마가 아역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성인연기자들의 연기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 세종대왕으로 캐스팅 된 김상경의 연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사실 김상경이란 연기자의 연기력이 논란이 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그는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매번 받았고 실제로도 인기보다 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오래가는 배우로 남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세종대왕을 보면 너무나 힘이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직은 감정이입이나 세종대왕에 동화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논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캐릭터 때문일 수도 있다.
우선 대체적으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다룬 방영 초기에는 나름의 캐릭터들이 분명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의 인물들의 캐릭터가 색다르게 그려지는 부분도 많다. 형제를 죽이고 왕권을 잡은 태종의 모습은 폭군의 모습이기보다는 위엄 있는 왕의 모습이었다.
또한 양녕대군도 아버지 태종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녕대군은 우리가 알던 난봉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면서 양녕대군의 모습이 잔인함과 무모함으로 변질되었다.
그중에서도 세종대왕의 캐릭터는 너무나 완벽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감정이 과잉 공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이미 타고난 운명이 다른 영웅들과 다른 세종대왕의 모습을 완벽한 영웅으로 재현해내기 위해 한 치의 오차를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즉, 어린 시절 충녕대군은 왕의 자질이 충분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영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역시 아이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영민하고 총명했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그려지다 보니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충녕대군은 이제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총명하고 더없이 왕이 되기에 그것도 성군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매력이 없다.
대체로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너무나 완벽하면 정이 가질 않는다. 완벽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 허술한 모습을 보일 때 시청자들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고 정을 주기 마련이다.
헌대 세종대왕은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왕의 자질은 있으나 유약한 면모를 내세워 그가 강인해지는 임금으로 변모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더라면 시청자들은 그에게 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충녕대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왕이 될 것이고, 타고난 영웅이기에 식상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더욱더 완벽한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드라마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시청률이 정체되고 미스캐스팅 논란에 마음 상해하지 말고 제작진과 작가는 무엇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지를 곰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