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일을 마치고 거창을 향해 구 국도를 타고 달리던 중이었다. 산청을 다 벗어나지도 않은 동리앞 도로에 갑자기 흑돼지 두 마리가 나타나 이상한 상황을 연출했다. 도로변에 차를 정차하고 돼지를 관찰했다.
돼지는 주변 동래에서 탈출한 종돈인 듯 보이는데, 뒤에 있는 놈이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도로를 이리저리 누비고 차가 지나가도 상관 않고 관심은 오직 앞서가는 돼지뿐이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 봄바람이 난 것이다. 그래서 뵈는 게 없고 오직 욕구에만 정신이 팔려 도로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차가 무서운 줄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좋은가. 두 마리다 숫놈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 슬픈 사랑 이야기가 백주대낮 도로 가운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