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음악을 전염시키는 책이 있다. 음악에 미혹당해 그에 관한 글을 찾아 읽는 경우는 더러 있었어도, 글 때문에 음악이 궁금해지고, 들어보기도 전에 괜히 좋아지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음악가나 전공자, 하다못해 음악 잡지의 기자여서 글로써 음악을 전달해야 하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가 쓴 책 한 권이 클래식에 호감을 갖게 하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을 쓴 사람은 문화방송에서 주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이채훈 프로듀서. 그는 중학교 때 누님의 유품으로 접하게 된 모차르트에 매료된 뒤, 꼬박 서른다섯 해 동안 사랑을 키워왔다고 한다.
일부러 클래식을 찾아듣지도 않는, 모차르트에 대해서라고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본 게 전부인 나처럼 무심한 독자에게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호미)는 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확장시키는 안내서로 다가왔다.
이 책의 첫 부분, '모차르트를 찾아서'에는 문화방송에서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모차르트' 2부작과 빈 필하모닉을 취재한 '비엔나의 선율,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취재한 과정이 모차르트 생애와 작품들과 함께 소개돼 있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만났던 모차르트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고, 이어 지은이의 모차르트에 대한 오랜 애정을 차례로 말하는 형식이다.
2006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 가족음악회에서 그는 아마추어 지휘자로 무대에 올라 그가 사랑하는 모차르트의 곡들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연습부터 리허설과 생방송을 마칠 때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당시 그가 느꼈던 감동과 즐거움들, 그리고 어려웠던 점들을 토로한다.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 후대에 그가 만든 곡을 연주하는 음악가와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흔적을 담은 이 책은, 모차르트의 전기를 그대로 옮긴 책이나 아내 콘스탄체에 대한 책까지 모차르트에 관한 책은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모차르트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첫번째 책이기도 하다. 영화 '아마데우스, 어디까지 사실일까'나 '레퀴엠과 모차르트의 죽음'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어 모차르트에 대해 궁금했던 사실을 찾아볼 수도 있다.
하루 평균 여섯 장씩 쓴 악보, 전문가가 베껴도 35년이 넘게 걸리는 분량잘 알려진 대로 모차르트는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한 뒤,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약 600여 곡을 작곡했다. 전문가가 베껴 적어도 35년이 넘게 걸리는 분량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빈 모차르트 박물관 연구원 베르나 하낙은 "하루 평균 열두 줄짜리 악보를 여섯 장씩 썼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한다.
아직은 봉건 질서가 유럽을 지배하던 18세기, 음악은 신을 위한 것이며 음악가 역시 교회에 종속된 하인에 불과하던 그 시절, 모차르트는 그 오랜 관습을 깨고 예술의 자유를 구가한 최초의 시민 음악가였다.(이 책 50 쪽)여섯 살에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한 뒤, 모차르트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바다 건너 영국까지 왕궁을 찾아다니며 연주 여행 길에 오른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연주료를 지불하는 대신 좋은 선물을 하는 전통이었기 때문에 큰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섯 살부터 아홉 살까지 3년 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러 음악을 경험한 연주 여행은 이후 모차르트의 음악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기본기를 다지게 되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어린 모차르트는 연주보다는 작곡에 더 흥미를 느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 레오폴트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레오폴트는 유럽 전역에서 널리 쓰였던 바이올린 교본의 저자였을 뿐만 아니라, 경력을 쌓아가던 작곡가이기도 했다.
아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 본 아버지 레오폴트는 자신의 음악 경력을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연주 여행을 다닌 것이다.
25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인 내게 지은이가 소개하는 레오폴트는 오늘날까지 모차르트가 우리 곁에 살아 있을 수 있게 한 기반으로 보였다. 레오폴트라는 단단한 주춧돌의 지지와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모차르트가 남겨준 음악들에 무임승차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아들이 잘츠부르크 궁정 악장이 되어 명예와 부를 거머쥐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린시절에 자유로운 연주여행을 경험한 모차르트를 작은 도시에 붙들어 둘 수 없었다. 그는 교회와 궁정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음악의 길을 걷고 싶어했다.
1779년 1월, 아버지의 중재로 다시 궁정 악장에 복귀했으나 이듬해 6월, 그는 정식으로 자신의 해고를 대주교에게 요구했고, 글자 그대로 '엉덩이를 걷어차인 뒤' 쫓겨났다.
음악사상 최초의 자유 음악가가 비로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781년 6월 8일은, 그래서,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다.(이 책 51 쪽)시민계급이 즐기는 새로운 음악쳄발로, 하프시코드 같은 옛 건반 악기들은 오랜 세월 궁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는데, 모차르트가 태어난 18세기 중엽부터 피아노가 보급되었다. 시민계급들은 부와 교양의 상징으로 피아노를 들여놨다. 시민계급들이 즐길 음악이 필요했고, 그 갈증을 풀어준 것이 바로 최초의 시민 음악가 모차르트였다.
시민계급의 사랑을 받았고, 무대에 올리는 곡마다 찬사를 받았으며, 오페라는 만원을 이루었지만 그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연이은 자녀들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그는 '요술피리'와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페라를 완성해냈다. 당대에 사랑받았지만, 낭만주의 시대에는 거의 잊혀졌던 모차르트는 19세기 후반부터 널리 연주되기 시작해 20세기에 들어와 사랑받게 된 긴 생명력을 가진 음악가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모차르트에 특별한 애정을 나타낸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내게 죽음이란 모차르트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고, 쇼팽은 죽기 직전에 친구들에게 피아노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쇼팽의 곡을 연주하려 하자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것, 모차르트..."라고 했다. 말러도 죽기 직전에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모차르트..."를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빈 필하모닉의 모토는 '마음에서 마음으로'현지에서 구한 음악 책을 보니 놀랍게도 빈 필하모닉의 가장 큰 특징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나와 있었다. 세계 최고의 악단이 '아마추어'같은 자세로 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법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와 같은 순수한 음악 사랑으로 연주한다는 뜻이었다. 페터 베히터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음악을 취미로 하시는군요." 베히터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빈 필하모닉에 처음 가입한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는 언제나 기꺼이 취미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리허설이 왜 이렇게 길지? 빨리 집에 가면 좋겠는데...'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늘 즐겁습니다." (이 책 178 쪽)베히터의 대답에는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해 주고 싶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게 하는 열쇠가 들어 있다. 음악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빈 필 하모닉의 모토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되는 '사랑'이다.
책에 언급된 모차르트의 곡들을 일일히 찾아듣는 것이 어렵고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책에 소개된 김출곤씨의 홈페이지
www.gosinga.net 에 들러 볼 것을 추천한다. 니체와 불교 관련 글과 함께 모차르트의 음악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