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등기소에서 일하는 주제 씨는 은밀한 비밀을 갖고 있다. 그것은 유명 인사들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어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 싶겠지만 주제 씨에게는 그것이 중요하다. 언제 태어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를 자신만이 갖고 있다는 것에 그는 일종에 희열을 느낀다. 어느 날, 주제 씨는 여전히 사람들 모르게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밤에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감은 없다. 그래도 주제씨는 즐겁다.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는 이 남자, 삶의 활력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존재에게 그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우연히 끼어든 서류 때문이다. 그것은 유명인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 여자에 관한 자료였다. 주제 씨는 이 자료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어떻게 해서 자신의 손에 있는지도 모른다. 주제씨는 조심스럽게 그것이 있어야 할 곳을 찾으려고 하지만 이내 깨닫고 만다. 그 어떤 유명 인사들보다 처음 들어 본 한 여자에 관한 정보에 더 끌리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없지만, 주제씨는 어떤 강렬함에 끌려 여자를 조사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인물은 스토리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소설을 이끄는 주인공은 스토리였다. 인물은 그것에 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제 사라마구가 인물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다르다. ‘주제 씨’가 있어 소설이 시작되고 그가 있어 소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이렇게 개성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주제 씨'는 개성이 없다. 개성은커녕 존재감도 없다. 회사에서 그는 보조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사생활에서는 어떤가? 따로 아는 사람이 없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다. 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주변에는 온통 ‘고독’이라는 단어만이 머물고 있는 그런 남자다. 오죽하면 유명인들의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을 안다고 즐거워했겠는가? 그 남자가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누군지 모를 평범하기만 한 여자를 찾는 것이다. 그냥 주소를 찾아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자를 찾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도 하고 병을 얻기도 한다. 위험천만한 순간도 여러 번, 그럼에도 그는 여자를 찾아다닌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하나, 그가 ‘인식한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 사이를 오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 씨는 ‘여자’를 인식하고 있다. 열렬히 찾아다닌다. 하지만 그 여자는 ‘존재’하고 있는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예컨대 어린 시절의 사진이나 주위 사람들의 추억담이다. 그것들이 주제 씨에게 왔을 때, 그것은 다시 인식의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소설의 첫 장에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는 문장이 있다. 인식과 존재 사이를 오고 가는 소설의 방향을 알려주는 말이다. 주제 씨는 그 여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찾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주제 씨가 인식하는 그녀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질문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래서인가.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읽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그렇건만 돌아설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독한 사내의 행동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 때문이고 그를 둘러싼 세상 때문이다. 존재감이라는 것을 두고 벌어지는 그 모습이, 소설 밖에서 ‘존재’를 물었던 사람들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고독이라는 세상에서 존재를 찾는 사람의 이야기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깊은 맛이 소설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거장의 손길에 단단히 위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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