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군에 가라… 어차피 갈 거…." 난 그랬다. '어차피' 라는 표현을 쓰면서 "어차피 가야 할 거, 미리 가라"고 했다. 근데 이놈이 안 가겠단다. 학교 마치고 가겠단다. 몇 번을 이야기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국내서 1학년 예비과정을 마치고 지난 12월 뉴질랜드 모 대학에 갈 꿈에 부풀어 있는 놈의 귀에 대고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군입대? 술집에 마주앉아 소주를 각 1병씩 '원샷'한 후 "너 나이 먹어 군에 들어가면 더러워서 군생활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상관 없단다. 갖은 '이바구'를 까도 주(酒)님의 부름으로 술만 퍼먹는다. 어쩔 수 없이 슬쩍 눈치를 보다가 "아비가 요즘 힘드니 일단 군에 가라"고 했다. 슬쩍 눈치 보다가 건넨 말 "일단 군에 가라" 그제야 이놈이 '이것이 뭔 소리데'하고 물먹은 소처럼 눈알을 뎅그라니 뜨더니 "아빠, 술 한 병씩만 더 먹죠" 이런다. 그래서 먹었다. "그럼 제대할 때까지 아빠 일 안 풀리면 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야, 인마, 아빠가 그때까지도 사업 기반 못 잡으면 내 장기를 팔아서라도 너 학비 보태준다." "아니, 연식도 오래된 아빠 장기를 누가 산데요?" "그래, 말 잘했다. 군대 갔다 온 싱싱한 네 거 팔면 돈 더 받을 수 있다." '열' 받은 아들놈, 결국 소주 한 병 더 시켜 나발 불더니 "정녕 가야 하나요?"하고 재차 묻는다. 하여 "그래 가라" 그랬더니 다음날 바로 친구놈과 동반입대를 신청해 어제(2월 26일)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했다.
"정녕 가야 하나요?" 들어가기 전날까지도 12시 넘어 들어온 놈을 붙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맥주 두 병으로 이별주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천지가 눈밭이다. 길 나설 때 꼭 추워진다더니 오늘 같은 날 눈에 바람까지 불고 웬 난리인지. 마당 한편 목련가지에 쌓인 눈조차도 지겹다. 친구놈들 열두어 명하고 여자 친구가 왔다. 망할놈의 자식! 그 추운데 그래도 여자친구 챙긴다며 자기는 벌벌 떨면서 점퍼를 입힌다. 자식 새끼 크면 다 필요 없다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아비가 보든 말든 포옹하고 두 손 꼭잡고 이별한다. 아주 쇼를 한다. 오후 1시 30분, 입교식이 시작될 모양이다. 이제 이별의 시간. 아무리 편해졌다지만, 아무리 복무기한이 짧아졌다지만, 그래도 어디 부모 마음이 그런가. 지나가는 말처럼 "요즘 군대가 군대냐" 그랬지만 막상 엄동설한에 혼자 두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도 어디 그리 가벼웠겠는가.
소풍 가듯 입대한 아들 녀석 옆에서는 울고불고 그런 부모 자식들도 있는데 이 놈은 소풍가듯 들어간다. 여자 친구 보고도 씩씩하게 웃으며 자기 걱정말고 고무신 바꿔 신으란다. 한술 더 떠 "아빠, 수색대 자원병 뽑으면 나 거기 지원한다"고 한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도리어 마음이 '짠'하다. 연병장에 모인 아들 자식 얼굴 한번 더 보려고 부모들은 언덕 위로 올라가고 2400여 명의 까까머리 자식들은 어디에 묻혔는지 그 놈이 다 그 놈같다. 자기가 좋아서 군대에 들어온 애들이 몇이나 될까.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지만 자식의 군대문제,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선택' 또한 박탈 당한 기분이다. 애써 참은 눈물이 결국엔 목젖을 건드린다. '서일교, 몸 건강히 복무 잘하고 와라…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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