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월 25일)은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희망의 날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나그네 길인 인생은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그것도 무덤을 향한 순례의 길,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 '강을 섬기는 사람들 종교인 100일 순례'에 동참하기 위해 경기도 여주로 가는 중부고속도로에서 17대 대통령 취임식 생방송을 청취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은 희망으로 가득한데 창밖은 잿빛 하늘이었다. 강을 파괴하는 대운하 소식을 하늘도 아는 것일까.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임연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순례자들은 영동고속도로 남한강 대교 근처 아래 갈대숲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수녀님들이 싸온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미래 세대에게 환경재앙을 물려줄 순 없지 않는가"
잠시 쉬는 시간에 여주 부근으로 귀농해서 사는 반가운 사람, '이등병의 편지' 주인공 가수 김현성씨를 만났다. 강물처럼 맑은 노래를 작곡하고 부르는 그의 눈망울에서 붉은 분노의 꽃잎이 떨어졌다. "우리 국민들이 크게 당하지 않고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임기 5년 동안 건설재벌들이 곶감 빼먹는 사이 일자리는 조금 늘 것이다. 그러나 강이 죽고 혈세가 낭비될 것이다. 뱀보다 느린 운하의 허구와 참상이 드러나 중단될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환경재앙을 물려줄 순 없지 않는가." 순례단 지원팀에서 만든 구수하고 따끈한 숭늉을 마시고 바위늪구비를 향하는 오후 순례를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처럼 하늘은 어두웠다. 첫 번째 통과한 문은 영동고속도로 여주대교였다. 교각 밑이 2m 이상 깊이 파헤쳐진 구 대교와 새 대교가 나란히 서 있었다. '튼튼하게 건설되었을 고속도로용 대교가 왜 무용지물이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항진 집행위원장(여주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새 대교는 길이가 502m이며 폭은 17.5m이고 높이는 11미터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홍수기에 많은 지역이 침수 위험에 노출된다. 2006년 여름 경부운하 주요 경로인 남한강 여주지역은 272㎜의 집중호우와 충주댐 방류로 인해 여주대교 수위가 9.59m까지 상승되었다. 평상시 2~3m 이하인 여주대교 수위가 제방 높이 11m에 육박하는 10m까지 상승한 것이다. 연중 평균수심 6~9m를 유지해야 하는 운하는 하천 수위를 상시적으로 높인다. 특히 게릴라성폭우는 홍수의 위험을 증폭시킬 것이다. 정부의 운하자료를 통해 예정수위와 계획홍수위를 비교해보면, 여주갑문은 계획홍수위와 상시만수위의 차이가 1.5m에 불과하다. 80년부터 95년까지 무리한 골재채취로 인해 하상의 퇴적물과 지형이 변형되어 교각의 하부구조가 드러나 침하되었다. 골재채취로 최소 50cm에서 최대 2m가량이 낮아졌으며, 교각과 교각 사이가 흔들려 상판 하부를 보강하였지만, 결국 안전성 문제로 폐쇄되었다. 운하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전 지역에서 모래 준설을 통해 공사비의 절반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멀쩡하게 서 있을 다리가 몇 개나 될까. 수중폭파를 하는 하상굴착이 불가피한데 한강과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115개 교량 전체의 안전성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준설이나 하상굴착을 하지 않았는데도 성수대교가 붕괴되지 않았는가? 대운하는 제2 제3을 넘어 제10의 성수대교를 만들 것이다." 순례단은 남한강의 본류와 주변의 지류에서 밀려온 토사들이 퇴적되어 형성된 중하류 바위늪구비 습지를 걸었다. 맑은 강물을 따라 갈대숲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신에게로 향하는 영원한 순례의 길을 누가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옷에 닿는 순간 이슬로 맺히는 춘설을 맞으며 강바람을 따라 걷는 순례는 감탄사 그 자체였다. 아빠와 딸이 손잡고 거니는 길에 스님과 수녀, 목사와 신부들이 동행하는 순례는 거룩한 전례였다. 신에게로 향하는 영원한 순례의 길을 누가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더욱 가당치 않다. 수녀와 손잡고 걸어가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 30분 걷고 10분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보다도 사리판단이 명쾌한 고백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명박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닙니다. 보통사람입니다. 대통령도 상식이 통하는 보통사람이죠. 그런데 보통 사람이 어떻게 강을 파괴하고 죽이는 운하를 건설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착한 사람은 생명을 죽이는 운하를 찬성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빠랑 오빠랑 대운하 순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삼합이라는 지점에서 잠시 순례를 멈추었다. 눈발이 거세지고 바람도 차가워졌다. 강 건너에 집이 보인다는 시인이 순결한 학처럼 서서 쉬는 순례단에게 강물을 가리키며 거룩한 순례를 지지하듯이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경기도와 충청도와 강원도가 만나는 곳이다. 귀농한 지 3년이 되었다. 와서 보니 강변지역 대부분의 땅이 외지 투기꾼들의 것이었다. 이곳은 물류거점지역이다. 이사한 지 3년이 되었지만 강을 따라 갈대숲을 처음 걸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습지와 강을 파헤쳐서 운하를 건설한다 생각하니 인간이 무섭다. 서울시민들의 식수인 상수원 보호구역이 풀리면 이곳에 투기꾼들이 몰리게 되고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될 텐데, 주민들은 '개발이 되면 고향을 정말 떠나야 합니까?'라고 묻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건설재벌과 투기꾼들의 잔치에 불과한 운하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 민족의 젖줄인 남한강은 보존가치가 높은 지류와 다양한 습지가 분포되어 있다. 특히 바위늪구비 습지는 시급한 보전대책이 요구되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환경부와 국립환경연구원이 선정했다. 강을 따라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옹기종기 살고, 습지에는 환삼덩굴과 갈대 같은 여러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꾀꼬리와 물닭은 물론 천연기념물인 매와 원앙들도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베푸는 사랑보다 탐욕스런 돈을 숭배하도록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지만 수없이 많은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그 강물을 따라 걸으며 참회의 기도를 올린다는 수경스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꽃의 천사들이 들려주는 하늘의 메시지일 것이다. "올해가 60인데,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서 걷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픈 다리로 걸으며 알았다. 그리고 60년 동안 자연과 얼마나 조화롭게 살아왔는가. 성직의 길을 가는 구도자로서 신도들에게 자연과 함께 사는 행복한 삶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참회를 하게 되었다. 올바른 불자들이 많았다면 대운하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이 자비의 공생보다는 성장을, 베푸는 사랑보다 탐욕스런 돈을 숭배하도록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장로이지 않는가. 순례가 참회인 이유다." 오후 4시인데 어둑어둑하다. 눈송이는 하염없이 내려 나무와 풀잎에 앉아 꽃을 피우고 있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이 어느새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어제처럼 오늘도 반만년 유구한 역사가 강과 마을을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질퍽질퍽한 마을 골목을 따라 16Km 순례 일정을 마치는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마중 나온 엄마 품에 안겨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엄마, 힘들어 죽겠어. 대통령 아저씨가 운하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되잖아. 집에서 책도 보고 TV도 보고 동생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었는데, 왜 운하를 추진하는 거야. 어른들은 착한데 물고기를 죽이는 나쁜 운하를 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마당에 동그랗게 모여 하늘과 땅, 강과 바람이 열어준 순례의 마무리 기도를 바쳤다. 자동차가 주차된 공원으로 갔다. 반만년의 역사·문화, 억만년의 미래 세대 희망 수장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는 길목에 자리한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신륵사에 들렸다. 눈 쌓인 산사가 아니라 고즈넉한 강을 바라보는 강사였다. 천 년의 넉넉한 도량과 역사가 탑과 돌담, 나무와 사찰에서 물씬 풍겨왔다. 홍수 때 일부가 물에 잠기는 천 년의 고찰 신륵사, 연중 평균수심 6~9m 운하의 물 때문에 조금만 비가 와도 범람해서 어김없이 물에 잠길 것이다.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었다. 실용을 첫 번째 국정 과제로 삼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절 개방이 화재원인의 큰 축이었다. 대통령 말대로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파헤쳐진 강은 복원이 불가능하며 천연기념물들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반만년 동안 유유히 흘러온 강과 습지는 다양한 동식물의 보금자리로서 홍수를 막아주었다. 또한 인간이 오염시킨 물을 정화시켜주고 인간과 동식물에게 식량을 제공하며 지구온난화를 막아주는 파수꾼이었다. 대운하로 파괴될 강과 습지, 사찰과 문화재들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이지 않는가. 대통령 5년 임기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 억만년의 미래 세대의 희망을 수장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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