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좋아졌지만 한때는 무서웠어요""한국에 처음 시집와서 살 때 3·1절이나 광복절 때는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갔어요. 돌맹이 맞을까봐."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호소미노리꼬(48·제주시 노형동)씨는 예전 한국이 일본에 악한 감정을 갖고 있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
요즘은 한-일관계가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사는 것, 그리고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일 다문화 가정을 꾸려 산다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남아국가에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국에 시집을 와서 사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달리 일본인이 한국에 시집와서 겪는 어려움은 이런 역사 문제로 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호소미 노리꼬? 이름이 이게 뭐꽈?"호소미 노리꼬씨는 1988년 한국에서 88올림픽이 열리던 때 중매를 통해 조정기(50)씨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 국제결혼 자체가 절차상으로도 힘들었고, 인식도 좋지 않았을 때지만 서로가 원해 허락을 받아냈다. 현재 이들 슬하에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들 제우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딸 락희가 있다.
1989년 1월까지는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5월 제주에 정착한 이들 부부는 초기 국제결혼가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호소미 노리꼬씨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제주에 있는 은행에서 구좌를 만들 때 '호소미 노리꼬'라고 이름을 쓰니까 '이게 뭐꽈'하면서 이름이 이상하다고 하는 거에요. 당시에는 얼굴도 한국인하고 비슷해서 한국 사람인 줄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 말도 잘 못하니깐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고 보는 거예요."일본인의 경우 한국사람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말 못하는 한국 사람 정도로 취급받기 십상이었다. 이 때문에 바보취급 받는 한국생활이 호소미 노리꼬씨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부산에서 한국말배움터를 다녔고 제주에서 사투리를 배우는 등 스스로 깨우치고 '한국화'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이 통역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던 것이다.
정말로 행복했던 제주 농촌 살이제주도에 와서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10년이나 살았던 호소미 노리꼬씨가족. 그는 남원 사람들이 정말 잘해주고, 전원 생활이 행복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남원에서 살 때 잘해주는 사람도 많고, 정말 재밌게 살았어요. 바다가 있어서 일본과 비슷하기도 했고요. 전원생활했는데 닭, 돼지, 개들과 같이 살았어요."그야말로 농촌생활이었다. 가축들을 기르고 채소와 과일을 직접 재배하며 농촌 생활을 즐겼다는 호소미 노리꼬씨.
"특히 제주도 전통 화장실인 '통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통시 밑에는 돼지가 살았는데 누가 보면 이런 데서 산다고 놀라겠지만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통시에서 키운 돼지로 남원에 사는 다문화 가정을 초청해 바베큐 파티도 열었어요."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 조정기씨의 역할이 컸다. 조씨는 아내와 함께 남원에 살면서 남원의 자치단체도 운영하며 적극적인 주민활동을 펼쳤다. 한번은 친목회에서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때 호소미 노리꼬씨가 통역을 해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 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신사참배하면 초긴장해요"
제주의 농촌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호소미 노리꼬씨. 하지만 자식들이 크면서 교육문제로 이들은 제주시내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지금은 제주시 노형동에 살고 있지만 그 전에 제주시 조천읍에서 5년을 생활했다는 호소미 노리꼬씨.
제주시 조천읍에는 제주에서 항일운동이 최초로 일어났다는 '조천만세동산'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천만세동산에 자주 갔다는 그는 한국이 옛날에 독립 운동을 하던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역사관에 혼란이 생겼다.
"학교 다닐 때 역사를 배우잖아요. 일제시대를 배우는데 아이들이 일본 문제를 많이 물어봐요. 그때 엄마가 당황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그런 게 참 어려운 점이었어요."항상 한일문제가 거론될 때면 어려움에 부닥친다는 그는 "일본에서 신사참배할 때는 완전 긴장해야 된다"며 "그때마다 일본 문제를 지적하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느 한 쪽 편을 못 들어 곤란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런 문제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호소미 노리꼬씨와 조정기씨는 절대 이를 외면하지 않고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고 한다.
이들은 "한일 다문화 가정들은 항상 그런 문제가 있을 텐데 그럴 때 절대로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당시 역사 설명을 자세히 해 줘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조정기씨는 "아이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우리는 그 당시에 한국인들이 일본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3·1 운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조천만세운동은 그런 숭고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며 "자기 것을 주장하고 찾을 수 있는 그런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고 말해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갖고 너무 배타적이고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순국선열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하는 것이지 일본을 적대시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꼭 설명한다"고 말했다.
부부가 각각 모국이 있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한다는 것.
이들은 "이번 3·1절에도 일본 문제가 나올 테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을 깨우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며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그때는 아빠, 엄마가 한 얘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세하게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한-일전이요? 아예 축구 안 봐요"언제나 한국과 일본이 축구경기를 하게 되면 두 나라는 혈안이 돼 자신의 나라를 응원한다. 특히 언론들은 어김없이 헤드라인에 한일전을 크게 보도하고, 승패에 따라 표정을 감정적으로 스케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호소미 노리꼬씨네 가족은 차라리 축구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조정기씨는 "한일전 축구를 아예 안 봐서 그런지 아들 역시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엄마는 일본 응원하고, 아빠는 한국 응원하니까 아이들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얼마나 힘들어 하겠느냐"고 말했다.
호소미 노리꼬씨도 "저는 당연히 일본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그래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과 한국이 축구를 해서 지면 '아 그냥 졌구나'하는데 일본하고 해서 지면 난리가 나고, 이기면 자기가 이긴 것처럼 기뻐한다"며 "물론 일본이 가해자라는 점과 역사적 잘못이 있지만 참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역사적으로 가해자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며 "옛날 한국의 재일교포들 이 가난하게 생활했을 때 일본에서 조선인을 차별했는데 저는 정말 그렇게 한국사람 차별하는 것 싫었다"며 "지금 보면 재일교포들 중에서 엄청 잘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 젊은 일본사람들에게는 한국을 비하하는 감정이 없다"며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 문제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문화 가정, 늦기 전에 장점 발굴해 교육시켜야"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역사 문제 등 여러가지 환경 요인으로 어렵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들 사이에 그런 어려움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키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호소미 노리꼬씨는 "다문화 가정 2세들을 보면 부진아들이 많은데, 그것이 교육의 문제"라며 "저도 마찬가지로 걱정을 많이했고, 애들 공부 못하면 엄마가 외국인이니까 못한다는 그런 평가를 받을까봐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알고보니 외국인 엄마였네?'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며 "그러려면 엄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다문화 가정 2세, 3세가 사회에서 떳떳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문화 가정들이 적극적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소미 노리꼬씨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고 말을 많이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제가 일본어를 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고 있는데 처음에 애들한테 일본어 말해주면 이상한 말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일본어 하는 아이라고 멋있다고 한다더라"고 자랑했다.
따라서 그는 "다문화 가정이 한국말 뿐만 아니라 영어 같은 외국어도 잘 한다면 국제 가정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말을 많이 하고, 한국어 못하면 영어라도 많이 하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필리핀 가정의 경우 영어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이라며 "영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한국어와 외국어 2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남편 조정기씨도 국제가족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 이사와 국제가족친목협의회장을 맡고 이런 다문화 가정들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다문화 가정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조씨는 "다문화 가정이 큰 인적자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데 어릴 때 그런 교육이 안 되면 나중에 이들이 자라서 문제를 고치기 힘들어진다"며 "현재는 다문화 가정에 한국말과 한국음식 만드는 방법 정도만 가르쳐주고 있는데 2세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를 연구 조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일 다문화 가정의 경우 다문화 가정 중에서도 중국과 함께 가장 오래됐기 때문에 자녀들이 고등학생들인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필리핀 등 다문화 가정들은 자녀들이 이제 커봐야 초등학교 저학년이기 때문에 조기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더 늦기 전에 다문화 가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초등교육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정기씨와 호소미 노리꼬씨 가정은 한국에 정착한 지 19년 된 다문화 가정이기 때문에 다문화 가정 중 선배로서 다른 다문화 가정들에게 정보를 주고 싶어한다. 제주에 다문화 가정이 지금과 같이 많이 늘어난 것도 10년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초등학교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유아인 사례가 많다.
지금 제주도 당국과 한국 정부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교육과 문제점 조사를 하지 않고,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조기교육에 실패해 막상 학교에 입학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 적응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제 다문화 가정의 장점을 발굴해서 자녀들을 국제 인재로 양성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다문화 가정은 대한민국의 숨은 보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제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