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도박일까?장관 청문회를 보다가 한 의원이 장관 내정자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도박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데, 정작 도박 중독자 치료를 위해 제대로 된 투자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뜨끔했습니다. '도박 중독'이라는 말이 귀에 강하게 내리 꽂혔기 때문입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경마나 경륜 등에 빠져 지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사랑하는 도박은 바로 '로또'입니다. 로또가 도박이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긴 정부에서 엄연히 인정한 복권 사업인데 도박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박'에 이런 뜻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로또가 도박이 아니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요행수를 바라고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댐.'사실 로또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로또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곤 했습니다. 당첨 확률이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도 낮다는데 왜들 저렇게 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제 그런 의문에 이런 답을 해주었습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에게는 당첨될 확률과 당첨되지 않을 확률 반반만 있는 거니까."듣고 보니 그럴 듯했습니다. 그 말에 혹해서였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저도 종종 로또를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안 될 것이지만 재미로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했기에 처음에는 1000원 정도만 돈을 썼습니다. 물론 5000원짜리 이외에는 당첨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2006년 중국으로 건너온 후 로또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당첨되면 최소 10억원은 받을텐데...
그러다 2월에 한국에 들어가서 한 달 정도 머물다 보니 로또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첨되면 최소 10억이라는 생각이 한 번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더니 그 생각이 멈추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 로또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사자니 불안한 마음이 들어 과학적 통계를 내어 로또를 구입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앉아 1회부터 271회까지 로또 당첨 숫자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창하게 말해 분석이지, 사실 가장 많이 나온 숫자를 찾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난 후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로또 주세요.""5000원짜리요?""예."열심히 분석한 자료를 들고 편의점에 갔는데 그 곳 아르바이트생이 무언가 숫자가 적힌 것을 뽑고 있는 듯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저 숫자 적을 거 좀 주세요"라고 외쳐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아르바이트생의 난감한 표정뿐이었습니다. 아, 그랬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그냥 '로또 달라'고 하면 자동으로 뽑아준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쓰시는 것은 저 뒤편에서 하셔야 하는데요."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그 곳에 숫자를 기입하는 종이가 보였습니다. 어쩔까 고민을 했습니다. 원래 5000원 정도만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아르바이트생이 자동으로 뽑아놓은 5000원어치 복권이 있으니 난감했습니다.
5000원만 쓸 예정이긴 했지만 몇 시간이나 앉아 고르고 고른 숫자들이 있는데 직접 기입도 못해 보고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제가 가져온 숫자들을 직접 기입하기로 했습니다. 앗,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아무리 지갑을 뒤져도 숫자를 적어놓은 종이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000원만 쓰려다가 1만2000원을 쓰게 되고...한참을 뒤지다 결국 복권에 미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보다 하고 편의점을 나섰습니다. '집에 가서 다시 찾아보고 가져와 한 게임을 더할까 말까'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잠바 주머니에서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숫자를 적어놓은 종이였습니다. 할까 말까 했던 고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편의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숫자를 적어놓은 종이를 펼치자 막상 무슨 숫자를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로또가 이미 271회나 당첨 숫자가 나온 것이다 보니 많이 나온 숫자들이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조합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시는 것처럼 로또는 한 게임당 45개 숫자에서 6개를 골라 맞히는 것이기 때문에 경우의 수가 무한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가장 많이 나온 숫자를 찾아 갔다 한들 쉽게 숫자 조합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5게임만 하려던 것을 무려 7게임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자동으로 뽑힌 다섯 게임까지 합하면 총 12게임을 하게 된 셈입니다.
본래 1000원짜리 한 게임만 하던 제가 무려 12배인 12게임을 한 것입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당첨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첨되었냐고요? 물론 안 되었습니다.
272회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12000원을 날리고 나니 괜한 독기가 올랐습니다. 그래서 10만원정도를 투자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만원이나 투자했는데 그래도 2, 3등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함부로 투자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10만원을 투자하면 당첨 확률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수학을 싫어해서 직접 계산할 엄두도 안 났을 뿐더러 분명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한 이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런 고민을 찾아보던 중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를 기죽게 하는 질문이 하나 올라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0만 원어치 로또를 구입하면 당첨확률이 얼마나 될까요?'그리고 저를 더욱더 힘 빠지게 하는 것은 그 아래 달린 답변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계산법을 통해 볼 때 예상 수익은 200만원입니다.'자세한 계산을 통해 답변자가 내놓은 기대 수익은 200만 원이었습니다. 2000만원을 투자했는데 고작 200만원이 나온다면 10만원을 투자하면 한 푼도 못 건질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래 달린 댓글 중에 이런 글도 보였습니다.
'로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전 40만원 했는데 다 꽝이었습니다.''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조그만 해야지'로 바뀐 결심그 글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10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그걸 그냥 허무하게 다 날려버리려고 했다니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그런 글을 보고 로또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조금만 해야지'라고 결심이 바뀌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국에 다시 들어오기 직전에 5000원을 들여 또 273회 로또를 샀습니다. 이번에는 통계가 아닌 제 생일 등을 조합해 6개 숫자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꼭 당첨되어서 가자마자 돌아와야지하는 다짐을 하고 또 했습니다. 제가 다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금요일에 중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 다음날 로또 당첨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273회 로또 당첨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1, 8'아, 두 개 숫자를 맞혔습니다. 네 개만 더 맞히면 10억이 제 품으로 들어올 것이었으나 여러분 예상대로 행운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힘이 쭉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로또 당첨자를 발표하는 토요일이 돌아오니 또 다시 로또를 사러 달려가고 싶은 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국에 있어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5000원을 투자해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이런 비효율적인 일에 매주 강하게 유혹당하니 로또를 살 수 없는 환경 자체가 행운으로 느껴집니다.
그래도 한국에 다시 갈 일이 있으면 또 사고 싶으니 이 마음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정말 복권 도박 아닌 것 맞지요?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