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여행을 떠나기 전 서울지도를 쓱 훑어본다. 달력에 적어놓은 골목동네 이름도 살펴본다. 이번엔 광진구 노유동이다. 서대문구 홍제동 집에서 광진구 노유동까지 30㎞ 정도 된다. 골목여행을 함께 다니는 정래에게 "이번엔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살짝 긴장하는 눈치다.
자전거의 가장 큰 적인 맞바람이 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행히 맞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는 맑다. 홍제천을 따라 끝까지 간 뒤 한강 북쪽길을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중랑천길을 살짝 걸친 뒤 다시 한강으로 접어들어 뚝섬유원지에 도착했다.
노유산·노룬산... 근데 산이 어디 있는 거야?
뚝섬은 조선시대 임금의 사냥터이자 군사들이 수련하던 곳이었다. 왕이 군사들을 점검하러 들르곤 했는데, 그 때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독기(纛旗)를 세웠다. 독기를 세운 섬이라 해서 독도(纛島)·뚝섬·둑섬 등으로 불리었다.
일제시대 이미 유원지가 만들어진 곳으로, 동대문과 뚝섬유원지까지 기동차가 다닐 정도로 서울시민들의 유명한 놀이터였다. 1954년 5월엔 경마장이 문을 열어 1989년 9월 과천으로 옮기기까지 운영됐다. 지금 서울숲 자리가 과거 뚝섬 경마장이다.
뚝섬유원지는 1년 내내 인근 시민들이 놀러온다. 겨울엔 눈썰매장에서 놀고, 여름엔 야외수영장에서 논다. 인근 야외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도 많다. 여기서 서쪽으로 출발하거나 서쪽으로 출발해 이 곳까지 온 자전거족들도 많다.
뚝섬유원지역과 건대입구역 사이가 노유동이다. 노유동을 다니다 보면 '노유산' '노룬산'이란 이름을 많이 보게 된다.
어딜 봐도 평지다. 이 곳에 산이 있었나 싶은데, 산을 깎아서 이리 완벽한 평지를 만들었을까? 이 곳에서 10년 이상 장사했다고 하는 떡볶이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이 곳에 산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이야기하신다. 자신없어 하는 눈치다.
살펴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산(山)'이 아니다. 원래 잔디밭이었던 이 일대는 가을이면 누런 들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누런 잔디 산이라는 뜻에서 '누런산' '노룬산' 등으로 불리었다. 그 뒤 풍류객이 늙음을 서러워하지 않고 놀던 곳이라 해서 노유동(老遊洞)이 됐다.
1950년 이후 성동구 성수동 2가이던 이 동네는 1995년 광진구가 신설되면서 노유동이 됐다. 노유동이란 운치있는 이름을 얻은 지 13년째. 올해 1월 1일 다시 자양4동으로 동명이 바뀌었다.
거리 곳곳엔 동명이 바뀌었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지만, 집 문패는 여전히 노유동이다. 시장 이름 또한 노룬산시장이다. 동명은 바뀌었지만 누런 들판이 땅을 뒤덮던 역사는 그대로다. 지난 2월 자양4동으로 이름이 바뀐 노유동을 두 차례에 걸쳐 찾았다.
옷가게 많은 로데오거리... 왜 로데오라고 부를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치우쳤다고 해야 할까. 건국대역 근처엔 선배가 살고 있어 종종 찾았다. 건국대나 세종대도 종종 찾았던 편이다. 그 때마다 가는 방향은 항상 건국대입구역에서 나와 북쪽이었다.
숱하게 이 곳을 찾으면서도 남쪽 출구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건국대입구역 근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노유동은 전혀 몰랐으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게 된다.
건대입구역 근처서부터 노유동 구경을 시작했다. 건대입구역을 기준으로 북쪽 거리엔 식당이나 술집이 많은 먹을거리 골목이고, 남쪽은 옷을 주로 파는 로데오 거리다. 서울에서 옷을 많이 파는 거리엔 모두 '로데오거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패션거리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유래했다.
1980년대 중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가장 먼저 생겼고, 송파구 문정동, 양천구 목동, 도봉구 창동, 은평구 연신내에 로데오거리가 들어섰다. 다른 지역 거리가 자연스럽게 생긴데 비해 노유동 로데오거리는 계획을 해서 꾸몄다는 게 차이점이다.
노유동 로데오거리 길이는 200여m 남짓. 1997년 만들어졌으니 이제 10년 가량 됐다. 간판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균일 한정 판매 19000원' '청바지 전문점 똥싼바지' '입어봐 짱'…. 확실히 옷가게가 많다.
나이트클럽 포스터도 본다. 어린 시절 노래를 즐겨 들었던 가수,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가수들이 보인다. 포스터 위엔 민주노동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왔던 권영길 후보의 인사말이 걸려 있다.
"뜨거운 성원 고맙습니다. 한미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생각나 괜히 마음이 씁쓸해진다.
로데오거리 끝 부분에서 모든 메뉴가 2900원인 집을 봤다. 100원만 올리면 3000원이지만, 100원 차이가 주는 느낌은 크다.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잘 가는 식당도 모든 메뉴가 2900원이다. 3000원을 받아도 될 것을 굳이 2900원으로 한 이유는 나머지 100원으로 커피를 뽑아먹으라고 한 것이다. 사소한 100원 때문에 괜히 기분 나빠지기도 하고, 유쾌해지기도 한다.
2900원 식당 뒤엔 OO상운 기사들에게 백반을 2000원에 파는 구내식당이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중국동포거리다.
중국요리집 수십 곳... 소심줄·콩팥 한번 먹어봐?
서울에서 중국거리로 유명한 곳은 가리봉동과 대림동이다. 그 곳에 가면 한글보다 한문으로 쓰인 가게가 더 많을 정도다. 그 두 곳에 이어 세 번째 중국거리로 불리는 곳이 노유동이다. 4~5년 전 무렵부터 중국식당이 한 두 곳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수십 곳에 이른다.
정종중국식품·길림반점·세림반점·동북풍미 등 간판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군침이 돈다. 불고기전골·자라용봉탕·양고기샤브샤브…메뉴도 다양하다. 주류는 역시 양고기다.
한 음식점에 들어가서 식단표를 봤다. 생전 처음 보는 요리들이다. 양진·소혈관·소심줄·뉴벤·심장·콩팥·지레…. 게다가 술 종류도 독특하다. '노조향'과 '노용코'라니.
제일 만만한 양고기 꼬치를 시켰다. 1인분에 10개. 독특한 향이 난다. 중국에서 양고기 요리를 먹어본 정래가 "중국에서 먹을 때 냄새가 더 많이 났다"고 말한다. 입가심으로 온면을 시켰다. 가는 면발이 무척 맛있다. 국물은 느끼한 편. 우리나라 짬뽕이 얼마나 시원한 맛인지 깨달았다.
중국동포 거리에선 우리식화된 중국요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다. 기름지고 특유의 향이 나는 음식들이다.
중국거리엔 중국요리 외에도 연륜이 묻어나는 순대국집이 많다.
쓰레기 스트레스, 걸리면 개망신(?)
"노유동은 단독주택과 다세대 다가구가 혼재된 불편한 주거환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건대 주변 상업 종사자들의 주택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인근 성수동이 주목을 받자 이 지역에 선점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그동안 거의 없던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생겨나고 집값도 많이 뛰고 있다." <공학박사 이창호의 부동산시장을 보는 눈(원앤원북스, 2007)>노유동 거리는 대부분 일반 주택가다. 길은 바른 편이다.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지만, 곳곳에 재미있는 풍경이 숨어 있다. 애교스런 우편함이 보인다. 두 집이 바구니 우편함을 달았다. 목욕탕에 주로 들고 가는 바구니다. 또 다른 집은 책꽂이 우편함이다. 어린이 글씨로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라고 써놓은 우편함도 있다.
어떤 두 집은 45도 각도로 대문을 맞댔고, 어떤 두 집은 대문은 다른데 옥상에 널빤지를 깔아 오가게 만들었다.
동네 중간에 서른 집 가량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 동네가 있다. 반듯한 2층짜리 주택이 많은 노유동에서 이색적이다. 집은 작고 지붕은 낮다. 서로 마주본 집이 똑같이 대문을 열면 부딪칠 것 같다.
그 좁은 길에 장독대, 자전거, 세탁기 등 세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벽엔 양파가 걸려 있고, 장독대 위에 올려놓은 양념통도 보인다. 내걸린 옷도 골목길을 꾸미는 데 한몫을 한다. 한쪽엔 소주병이 잔뜩 쌓여 있고, 그 옆 담벼락엔 누군가 낙서를 써놓았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술 먹고 떨들지 않겠습니다. 명심하고 잘 살아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동네엔 유난히 이발소가 많다. 아현이발·협성이용원·미진이발관·정성이용원·샘터이용원…. 길 하나마다 이발소 하나씩이다. '블루클럽'처럼 체인형 이발소가 대세인 요즘, 동네 이발소는 점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고 있다. 노유동을 '이발소 많은 동네'라고 불러도 괜찮지 싶다.
그래서인가보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는 사진가 김지연이 2년여 이상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이발소 사진을 모아 2005년 <나는 이발소에 간다>를 펴낸 바 있다.
현대 도시에서 가장 큰 주민 갈등 사안 중 하나가 쓰레기다. 노유동엔 유난히 쓰레기 문제를 지적하는 벽보가 많았다. "꽃은 사랑이요, 비양심은 쓰레기입니다"고 쓴 벽보는 상당히 얌전한 편.
"쓰레기 분리를 꼭 해서 버려주세요. 걸리면 개망신" "여기 쓰레기 버리는 자 3대가 망한다"처럼 강도가 센 벽보들도 많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쓰레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에겐 노벨평화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다.
자전거 많이 타는 동네...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잔뜩 내린 어느 날 다시 노유동을 찾았다. 그날은 전날에 비해 기온이 많이 떨어져 모두들 몸을 움츠리고 다니던 때였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따뜻한 어묵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허나 아이들에겐 추위도 아무렇지 않았나 보다. 아이들 다섯 명이 놀이터에 모여 신나게 놀고 있었다. 스티로폼을 구해서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면서 "스키다" 하면서 외쳤다. 버린 장판지 위에서 뒹굴기도 했다.
워낙 신나게 놀아서 옆에서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춥지 않니"라고 물었더니, "안 추워요, 코만 나와요"라면서 다시 미끄럼틀 위로 올라간다. 내 어릴 때도 저렇게 놀았다. 아무런 놀잇감 없어도 재미있었다. 버린 물건도 많이 이용했다. 세상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노유동 골목엔 자전거가 넘친다.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 짐 싣고 다니기 좋은 무거운 자전거, 어린이용 자전거, 몸통이 낮아 치마 입은 여성들이 타기 좋은 자전거 등 다양하다.
노유동은 동네 전체가 평지다. 길도 반듯한 편이다. 자전거 타기에 무척 좋은 조건이다.
자전거가게도 눈에 많이 띈다. 특이한 점은 단지 자전거만 파는 게 아니라 자전거 수리를 함께 하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 용접까지 하는 자전거점도 있었다. 조금 타다 질리면 쉽게 버리는 요즘 용접까지 해가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눈이 잔뜩 내린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모자를 푹 쓴 채 골목길을 누빈다. 노룬산 시장, 조양시장에서도 자전거를 탄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어묵 파는 트럭에 잠시 들렀을 때, 아저씨가 "오늘 같이 추운 날도 자전거를 타세요"라며 놀랐지만 동네 사람들 또한 날씨와 아랑곳없이 자전거를 탔다. 그 어떤 구호나 이론보다 더 강한 힘은 문화와 습관이다. 자전거 도시로 유명한 경상북도 상주에선 비오는 날도 자전거 타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안 탈 이유를 찾자면 끝이 없다. 겨울엔 추워서 못타고 여름엔 더워서 못탄다. 봄에 황사 때문에 못타고, 몸 안 좋은 날엔 마음이 안 내켜서 못탄다. 문화가 된다는 것은 그냥 타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노유동에 갈 때마다. 숱하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봤다. 노유동 사람들은 날씨 맑은 날도 타고 흐린 날도 타고, 잔뜩 추운 날도 탄다.
추위를 아랑곳 않고 뛰어 노는 아이들, 눈 내린 날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끌고 나온 사람들, 노유동을 거닐면서 결국 문화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지 못한 채 실천하는 그 무엇이 아닌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