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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에서 범죄를 꿈꾸는 '그들'은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마코토와 같이 협박하면 굴복하는 친구를 불러 차를 구한 다음 여자를 납치, 성폭행한다. 그들은 악랄하다.

 

여자가 신고하지 못하도록 동영상까지 찍는다.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날 에마를 납치할 때도 그랬다. 그들은 사냥을 즐길 뿐이다.

 

마코토는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집단 폭행 당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에마를 납치할 때도 도와줘야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전화가 와서 성폭행이 벌어지기 직전에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마코토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한심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마코토에게 충격적인 일이 덮쳐온다. 에마가 그들에게 죽은 것이다. 마코토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지만, 범죄에 동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코토는 어찌해야 하는가?

 

에마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아내가 떠난 뒤 딸을 극진하게 보살피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불꽃놀이 날부터 에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뒤, 강가에 버려진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나가미네는 경찰에게 꼭 범인을 잡아달라고 요청하면서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나가미네에게 이상한 연락이 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그들’이 범인이라고 알려준 것이다.

 

나가미네는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청소년은 성인과 다르게 재판 받는다는 걸 알고 있다. 살해를 했더라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사회환경이 어려웠다는 이유 등으로 죄값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가미네는 법에 맡기는 대신 자신이 직접 복수하기로 한다.

 

나가미네는 연락받은 대로 해서 그들의 한명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가미네가 발견한 것은 비디오테이프들이었다. 나가미네는 설마 했지만 그것 중에는 유린당하는 에마의 모습이 있었다. 그 순간, 그들 중 한명이 들어온다. 이성을 잃은 나가미네는 방안에 있던 흉기로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다른 범죄자를 찾기 위해 나선다.

 

<방황하는 칼날>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범죄다.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의도적으로 여러 번 성범죄를 저지른 그들의 범죄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에마는 살해당했고 어느 여성은 충격으로 자살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쫓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수한다고 해도, 좀 더 신나게 즐긴 다음이야”라는 말을 남긴다. 어른들과 다르게 처리될 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성인들과 똑같은 잣대로 판단해야 할까? 나가미네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성을 하고 사죄를 해도 용서할까 말까한 때에 그것을 안전망인양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가미네의 이러한 태도는 옳은 것일까?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피해자의 또 다른 유족들도 나온다. 그들 또한 범인의 존재를 안 순간, 법을 대신해서 자신이 직접 죽이려고 한다. 그들의 태도가 잘못된 것인가? 잘못됐다면, 그들에게 어떤 점이 잘못됐다고 말해줘야 하는가?

 

<방황하는 칼날>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법은 사람의 상처를 외면해도 되는가?”라고 묻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구의 말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대표작에 비해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여운은 그에 못지않게 진지하다. 던지는 질문이 남다른 것이 아니기에 그런가보다.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바움(2008)


태그:#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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