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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비단 봄의 전령사로 불리우는 땅비단. 개불알풀이란 재미있는 이름도 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학교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 땅비단 봄의 전령사로 불리우는 땅비단. 개불알풀이란 재미있는 이름도 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학교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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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아, 봄이다!"

학교 교정을 거닐다가 이런 탄성을 질러본 적이 있는가? 그런 기억이 아예 없거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교정을 거닐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학기 초가 얼마나 바쁜지 몰라서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버럭 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봄 햇살이 얼마나 따사롭고 부드러운지! 봄 언덕에 피어나는 작은 생명들이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지! 교정을 거닐다 잠깐 서서 눈을 감은 채 폐부 깊숙이 대기를 빨아들이면 얼마나 가슴이 후련하고 공기가 달게 느껴지는지! 이런 황홀한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는 없을 터.

"얘들아, 지금 봄 햇살이 얼마나 좋은 줄 아니? 머리도 식힐 겸 점심시간에 학교 뒤뜰이나 운동장을 한 번 걸어 보거라. 그 느낌을 꼭 내게 말해줘야 돼."

내가 해마다 아이들에게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건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아이들이 계절의 축복 속에서 행복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요즘 아이들은 행복은 곧 돈이라는 등식을 마음 속에 이미 그려놓은 듯하다. 돈만 있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든지, 돈이 안 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이 천박한 시대의 자화상을 쏙 빼다 박은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아이들 아이들을 '행복의 역설'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 아이들 아이들을 '행복의 역설'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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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돈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거나 부족할 탓일 수도 있다. 가령,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배려로 숲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자란 아이는 행복이라는 말에 돈보다는 숲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숲을 구경하거나 숲 속을 거니는데 돈을 받지는 않을 테니 굳이 큰돈을 벌지 않아도 삶이 얼마나 즐겁고 풍성하겠는가.

요즘 아이들에게서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입시교육에도 그 책임이 있다. 공부 그 자체보다는 시험성적에만 치중하는 입시교육은 학생들로부터 공부하는 즐거움을 앗아가기 마련이다.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면 무엇으로든 그 끔찍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슬로건은 주지하다시피 경제제일주의다. 경제제일주의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것은 한 인간의 행복을 위한 과정이요 수단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라의 경제가 나아지면 그만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 이른바 '행복의 역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다.

새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국민들의 소원인 '경제 살리기'에 치중하면서 교육개혁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교육개혁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이는? 수월성 교육을 운운하기도 하는데 살인적인 입시교육의 해악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평준화 제도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나 일제고사의 망령이 부활할 조짐을 보아서는 결국 입시교육이 강화되는 쪽으로 귀결되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쇠별꽃 봄이 오는 길목에 피어 있다. 밤하늘을 희미하게 수놓던 별들이 아침이 되자 지상으로 내려온 착각이 들만큼 꽃모양이 별을 닮았다.
▲ 쇠별꽃 봄이 오는 길목에 피어 있다. 밤하늘을 희미하게 수놓던 별들이 아침이 되자 지상으로 내려온 착각이 들만큼 꽃모양이 별을 닮았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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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은 퇴락의 길을 가고 있는데 딴청을 부리듯 봄이 저만치서 화사한 웃음을 짓고 서 있다. 입시교육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우선 사랑스런 제자들과 학교 운동장이라고 한 번 돌아보라고 내게 말하는 듯하다. 하긴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보면 행복으로 가는 또 하나의 작은 오솔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등과 꼴찌의 행복의 역설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참교육길라잡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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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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