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분명히 낮고 작은 산인데 올라와보니 태산이구먼, 태산! 정말 온 천하가 다 바라보이네.”
정상에 올라선 일행들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산의 높이라야 겨우 해발 310미터인 노승산, 그러나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서 높이에 걸맞지 않게 툭 트인 전망이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였다.
지난 3월 1일, 우리교회 남선교회 연합회 주최 3·1절 기념등반대회로 찾은 곳이 경기도 이천의 노승산이었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일죽 나들목을 빠져 나간 버스는 좌회전하여 장호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잠깐 달리면 다시 이천, 수산 방향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이 도로가 329번 지방도로다. 이 도로에 접어들자 오른 편으로 저만큼 나지막한 산이 바라보인다. 이 산이 바로 이날의 목적지인 노승산이었다.
“저 집이 바로 오늘 점심을 먹게 될 능국순대국 집입니다.”
329번 도로에 접어들자 총무가 도로 오른편의 아담한 음식점을 가리키며 안내를 한다. 버스는 이 도로를 잠깐 더 달려 333번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1km 쯤 더 달리자 “노성산 공원”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특이한 원경사 돌탑 풍경좁은 공원입구 도로를 따라 들어가자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원경사가 나타난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바로 사찰경내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시선을 붙잡는 것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불상이다. 스피커를 타고 큰 목소리로 골짜기를 울리는 독경소리를 들으며 경내를 돌아보노라면 오른편 범종각 일대의 수많은 돌탑들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하얀 빛깔의 돌을 깎아 예쁘게 2층으로 만든 석탑들은 대충 헤아려 봐도 수십 개가 넘는다. 이런 모습은 전국의 어느 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거대한 황금빛 불상과 수많은 돌탑의 규모에 비해 법당 등 사찰의 규모는 오히려 작아 보인다.
독경 소리는 크게 울리고 있었지만 사찰 경내는 몇 명의 관광객 외에는 사람의 발길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 절이 바로 한 여인과 병자의 전설이 깃든 원경사다. 등산로는 이 원경사 입구 사천왕문 왼쪽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평지 길을 잠깐 걸어 능선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았을까봐 걱정했지만 응달에 쌓여 있는 눈과는 달리 길은 보송보송 말라 있었다. 오르막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고 대부분 흙길이어서 발걸음으로 느끼는 감촉도 매우 좋았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쉼터 바위를 지나 갈래바위에 오르니 아늑한 느낌이 든다. 원경사도 보이지 않고 골짜기를 크게 울리던 독경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기념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예배는 짧고 간단했다.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3·1 만세운동의 의의를 되새기고 독립과 번영에 대한 감사, 그리고 평화통일에 대한 기원을 담은 예배였다.
특히 기도 담당자는 이 나라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롭고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려 예배분위기를 숙연하게 했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제창하고 나이가 제일 많은 장로님의 선창으로 만세 3창을 하는 것으로 예배를 마치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산이 그리 높지 않아 이곳에서 정상은 지척이었다. 정상에 오르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낮은 산이었지만 평소 등산을 거의 모르고 살았던 노인층들은 이만한 산이나마 정상에 올랐다는 것이 스스로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북쪽은 이천들녘입니다. 저 멀리 이천시가지가 보이지요? 남쪽은 안성 들녘입니다.”
누군가 산 위에서 바라보이는 평야지대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준다.
“이 봉우리가 노승산이 아니고 장수봉이네요.”
정상에는 노승산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장수봉이라는 또 다른 표지석도 세워져 있었다. 노승산은 노성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었다. 또 소나무가 많아 노송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이었다.
전설도 많았다. 본래 노성산, 또는 노송산이라고 불렸던 이 산 이름이 노승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한 노승(老僧)에 대한 전설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노승산의 전설오랜 옛날 어느 해, 이 지역에는 오랜 가뭄으로 큰 흉년이 들었다, 오랜 기간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밭이 메말라 갈라지고 곡식은 모두 말라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기근과 질병에 허덕이게 되었다.
식량이 떨어져 마을사람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노승 한 분이 나타났다. 노승은 매일같이 흉년이 들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탁발을 나가 공양미를 가지고 와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노승은 이 산의 동굴(현재의 굴바위)에서 기거하면서 어려운 마을사람들에게 나눔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눈이 몹시도 많이 내리던 겨울이었다. 매일 마을로 내려오던 노승이 며칠 동안 마을에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된 마을사람들이 노승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산을 뒤져 찾아보니 노승은 탁발한 바랑을 짊어진 채 마을로 오는 산길 눈 속에 묻혀 입적하였던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노승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을 한 후 분골을 이 산에 뿌렸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주민들은 노승의 자비로운 은혜를 생각하며 산을 보고 "노스님 노스님"하고 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승산(老僧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장수봉에 깃든 전설도 재미있다. 이천지역의 3대명산 노승산과 설성산, 마국산을 대표하는 장수 3명이 내기를 했다. 이긴 장수가 명마로 이름 난 말 한 마리를 차지하기로 했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말을 부위별로 나누어 갖기로 했는데 노승산의 장수가 가장 우세하여 말머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정상인 장수봉과 말머리바위가 바로 전설의 주인공인 셈이었다. 정상에서 멋진 조망을 둘러보고 헬기장과 병목안 바위를 거쳐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순대국도 있었네“자! 이제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언제나 자상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총무가 일행들을 안내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노승산 넘어 329번 지방도로 옆에 있는 능국순대국 집이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고 준비하고 있던 식당 측에서 반갑게 맞아 준다. 주 메뉴는 순대국이었지만 청국장과 황태해장국, 그리고 육개장도 있었다.
“이 식당 음식 맛도 좋지만 성의가 참 대단하구먼.”
“정말 그런데요. 이렇게 맛있는 순대국 처음 먹어보는 것 같은데요.
”
순대국을 먹으며 일행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예약을 했다고 해도 시골의 작은 음식점에 한꺼번에 140여명이 몰려들었으니 맛좋은 음식과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히야! 정말 성의도 대단하고 친절도 대단하구먼.”
빈틈없이 준비해 놓았다가 척척 내놓는 음식이며 특히 그렇게 많은 음식을 단 한 그릇도 소홀함이 없이 모두 펄펄 끓여 내놓는 순대국을 대하며 하는 말이었다.
“나도 순대국을 먹는 건데, 공연히 황태해장국을 먹었구먼, 아쉽다, 아쉬워!”
친절하고 준비를 잘해 놓았다가 대접한 식당 측의 성의 있는 손님맞이로 대부분의 일행들이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황태해장국을 먹은 일행 몇 사람은 음식 맛이 별로라는 것이었다.
“그러게 어느 음식점을 가던지 주 메뉴를 택해야 하는 법입니다. 이 집의 주 메뉴는 해장국이잖아요? 한 번의 선택이 한 끼의 밥맛을 좌우합니다. 하하하.”
그러나 이 날은 즐거운 등산에 맛있는 음식으로 모두들 멋진 3·1절 기념등반대회였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