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반도체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노동자들의 건강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최근 노동부의 조사방법 등을 문제 삼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2월부터 반도체를 제조하는 전국 13개 업체를 대상으로 화학물질 사용현황과 근로자들의 건강관리실태 등을 조사중이다. 이번 조사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잇따라 백혈병에 걸려 숨지거나 투병중인 사실이 밝혀진데 따른 것이다. 노동부는 당초 2월말까지 조사를 마무리 할 계획이었으나 조사대상과 범위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조사기간을 3월말까지 연기했다. 노동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근로자 건강보호대책을 수립하는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노동부의 이번 조사결과는 반도체공장 작업환경과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노동계는 물론 일반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노동세상·다산인권센터·민주노총 경기본부 등 17개 단체로 구성된 대책위 측은 “노동부의 반도체 제조업체에 대한 일제 조사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부실조사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노동부가 조사의 핵심인 ▲원·하청업체의 전·현직 노동자들 현황 ▲주요 화학물질 취급 및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실태 ▲건강진단 및 작업환경측정 현황 ▲백혈병 발생 현황 등을 철저히 파악하려는 노력보다 업체 쪽의 자료에만 의존하려는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대책위 실무를 맡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부는 이번 조사 자료를 각 지방노동청의 감독관들이 작성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 조사과정은 다르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 직원이 조사자료 작성?...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맡기는 꼴" 그는 “이번 조사의 발단이 된 삼성반도체의 경우 수원노동사무소 감독관은 삼성 직원에게 조사 자료를 작성토록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면서 “조사 자료를 사측이 작성토록 하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 노무사는 “만약 업체 측에서 의도적으로 작업공정이나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축소·은폐해 자료를 작성했을 경우 어떻게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겠느냐“면서 “노동부가 반도체 자본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적인 조사를 벌이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직 노동자 수만 하더라도 수만 명에 달하는 13개 반도체 제조업체의 실태조사를 짧은 기간 안에 마칠 수 있는 방법은 회사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존하는 조사방식일 수밖에 없다”며 “노동부가 3월말까지 조사기간을 연장한 것은 환영하지만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과정에 대책위 참여를 배제시킨 것도 논란거리다. 대책위측은 “노동부가 이번 조사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 피해 노동자들과 대책위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중립’을 명분삼아 정당한 의견 개진의 기회조차 봉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대책위가 이번 조사와 관련해 지난 2월 노동부 관계자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노동부가 ‘노사의 중립에 있는 국가기관으로서 반도체회사의 입장과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면담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대책위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조사에 나선 노동부가 실속 있는 조사보다 회사 이미지 손상을 더 걱정하는 것은 ‘업체 눈치 보기’가 아니냐”며 의문을 품고 있다. 이 노무사는 “노동부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최초로 실시하는 이번 조사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회사 쪽 자료에만 의존하는 조사를 시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철저한 현장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관계자 "조사기간 연장해 철저히 조사할 것...지켜봐 달라" 이에 대해 노동부 산업보건안전팀 이형근 사무관은 3일 전화통화에서 “당초 2월 한 달 동안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조사 범위가 광범위해 일단 3월말까지로 조사기간을 연장했다”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체 측의 자료작성 문제 등 대책위 지적들에 대해 그는 “업체 측이 기초자료를 작성해 제출하면 이를 토대로 지역노동사무소 감독관들이 현장에 나가 확인조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대책위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좀 더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조사과정에 대책위를 참여시키지 않은 이유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 ‘업체의 눈치 보기’ 등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대책위의 지적은 조사과정에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책위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3살의 나이로 지난해 3월 숨진 고 황유미씨의 첫 번째 기일인 오는 6일을 맞아 이날 오후 6시 서울 삼성본관 앞에서 황씨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공장 전·현직 노동자 가운데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같은 질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사람은 1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종란 노무사는 “지난해 11월 대책위가 발족한 뒤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사실관계 확인여부에 따라 앞으로 인원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이나 현재 투병중인 당사자 또는 가족들은 대책위 인터넷카페(http://cafe.daum.net/samsunglabor)로 연락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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