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샘터

나는 법정 스님을 존경한다. 나이 들수록 묵묵한 산에 마음이 더 가듯이 담백한 스님의 말씀들은 해가 갈수록 더 묵직하게 와 닿는다.

 

하지만 '무소유'를 실천하는 그에게 경원감이 있었다. 사람 같지 않아서. 그러다 <인도기행>(2006. 샘터)을 보니 그가 더 좋아졌다. 그도 사람이라는 걸 느꼈기에.

 

책은 1991년에 나왔지만 2006년에 3판을 낼 정도로 오랜 사랑을 받았다. 부처님 성지를 중심으로 3개월 동안 법정 스님의 인도 여행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신선하다. 절제된 오랜 수도 생활을 하며 쓴 글이나 잠언에 익숙한 나머지, 꼿꼿하기만 한 그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인도라는 대륙을 만나면서 ‘사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리를 걸친 인도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고 날씬할 뿐만 아니라 눈매가 시원스러워 지나치다가도 다시 돌아보고 싶을 만큼 예쁜 사람이 많다.

 

법정스님이 거리에서 지나쳐간 여성들이 다시 돌아보려고 주춤하다 그냥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인가.

 

웃기는 녀석이네. 시끄럽게 떠들어 잠도 못 자게 해놓고 팁까지 달라고?

 

“임마, 숙박료 받았으면 됐지 무슨 팁이냐!”

 

호통을 쳐주고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인 법정스님이 팁을 달라는 여관주인에게 호통을 치고 씩씩거리며 나오는 모습은 생각만으로 웃음이 나온다.

 

150루피 달라는 걸 장난삼아 흥정한 끝에 80루피를 주고 샀다. 우리 비구계에서는 물건 값을 깎지 말라는 규정이 있는데, 그 규정을 어기고 물건 값을 깎은 것이다. 그런 규정을 정한 고장에 와서 물건 값을 깎아 사고 나니 마음에 좀 걸렸다.

 

법정 스님이 상인과 가격을 흥정한다. '너무 비싸네요', '깎아줘요' 그래서 싸게 산 뒤, 갑자기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파리하게 피어있는 그 봉선화를 보면서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고 오랜만에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니, 마음속에 까닭 없는 슬픔이 고이려고 했다.

 

법정스님이 고개 숙여 봉선화를 보며 울적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측은하면서도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부처는 최후의 유훈으로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그럼 비구들이여, 너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여라."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부지런히 정진하기에 사람은 위대하다. 덧없는 삶이지만 자신을 등불 삼아 세상을 비추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법정 스님을 보면서 누구나 마음을 닦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지경을 마음에 두고 법정 스님 말씀을 읊어본다.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인도기행 - 삶과 죽음의 언저리

법정(法頂) 지음, 샘터사(1998)


#법정#인도기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