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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organ 앨범 <The Sidewinder> 속사포같은 연주로 '제 2의 클리포드 브라운'이라 불리던 트럼페터 리 모건. 그러나 그는 열네 살 연상의 부인 헬렌 모어의 권총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트럼페터이기도 하다.
Lee Morgan 앨범 속사포같은 연주로 '제 2의 클리포드 브라운'이라 불리던 트럼페터 리 모건. 그러나 그는 열네 살 연상의 부인 헬렌 모어의 권총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트럼페터이기도 하다. ⓒ Blue Note
'질투는 나의 힘'

연애에 대한 격언을 많이 남긴 영국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연애 감정이란 서로가 상대방을 오해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썼다.

오해가 연애의 시작이라면, 질투는 연애의 불꽃이다. 연애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절정의 순간에 질투의 불꽃은 밤하늘을 밝힌다.

존 레논은 사랑을 질투로 표현한 노래인 'Jealousy Guy'를 부르면서 오노 요코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표출했다. 타오르는 사랑에서 질투는 아름답다.

질투는 연애하는 사람의 육체를 혼자만 차지하길 바라는 갈망이다. 연애는 온도 차이다. 뜨거울 때도, 차가울 때도 있다. 냉온탕을 넘나드는 것이 일상의 연애인데, 남자가 차가워졌다고 총을 쏘는 여자는 무서운 여자다.

트럼페터 리 모건의 부인이 바로 무서운 여자다. 질투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리 모건은 열네 살 연상의 부인 헬렌 모어가 쏜 총에 맞아 34살에 요절했다.

사랑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연애의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이 가파르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여자는 사랑의 길을 갈 수 없다. ‘I Shot the Sheriff'라는 레게 리듬의 음악이 있다.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음악인데 에릭 클랩튼의 리메이크곡으로 더 유명한 노래이다. “내가 보안관을 쐈어, 하지만 맹세코 그건 정당방위였어”라는 가사는 핍박받는 자메이카 민중이 처한 현실을 웅변한다.

사랑에서도 어느 한 쪽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거나 불공평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이유를 다 갖다 붙여도 살인은 용납되지 않는다. 질투심은 핍박받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부정과 콤플렉스의 결과물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트럼페터 리 모건을 질투심 때문에 죽인 헬렌 모어. 그녀는 연애의 질투를 사랑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질투로써 사람을 죽였다. 그녀에게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니라 복수의 전주곡일 뿐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도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시인, ‘질투는 나의 힘’ 전문

죽은 기형도 시인은 "'‘나는 이미 늙은 것'(정거장에서의 충고)이고 ‘인생을 증오’(장미빛 인생)하고 ‘기적을 믿지 않는다’(오래된 서적)”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썼다. 도저한 부정과 허무가 희망을 덮어버렸다. 유일한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처절히 고백했다.

나는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의 가슴 속에 쌓인 내적인 분노도 함께 읽혀진다. 시에 쓰인 것으로만 보자면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조치원)라든가,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우리 동네 목사님) 같은 시어가 그것이다. 또한 “없다, 않는다, 안 된다, 없었다, 못한다” 같은 부정형 종결어미는 비극과 도저한 부정성을 뛰어넘어 ‘인생을 증오’한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그토록 기형도 시인을 증오하게 만들었을까? 물어보고 싶지만 시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추측하건대 그는 세상에 대한 복수를 상처와 허무로 달래고 한편으로는 분노와 증오를 시로 발산한 듯하다. 기형도 시인은 내적인 분노를 시를 쓰며 스스로 위로했지만, 헬렌 모어는 자기를 위로해줄 어떤 대상을 찾지 못하고 분노를 외부로 표출함으로써 극단적 살인을 벌였다.

'복수는 나의 것'

트럼페터 리 모건의 죽음은 이 앨범 제목인 <The Sidewinder>와 묘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sidewinder'는 여러 뜻이 있는데 방울뱀의 일종이란 뜻과 미사일을 지칭하기도 한다. 리 모건을 죽인 헬렌 모어를 생각하면 방울뱀에 가깝고, 리 모건 트럼펫 연주로 보면 미사일 같은 리듬의 폭격이다.

뱀은 신화적으로 여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다. 또 질투(嫉妬)의 한자 부수에는 둘 다 ‘계집 녀’가 들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리 모건의 부인 헬렌 모어는 적장((敵將)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딧과 닮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이스라엘 베툴리아를 포위한 아시리아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여자의 공적인 복수가 잔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이스라엘 베툴리아를 포위한 아시리아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여자의 공적인 복수가 잔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다른 것이라면 1972년 2월 18일 현대의 헬렌 모어가 사적인 질투 감정에서 총을 쐈고, 고대 유딧은 이스라엘 베툴리아를 포위한 아시리아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침대에서 목을 베었다는 것, 즉 현대와 고대라는 시간의 차이와 총과 칼이라는 무기의 차이가 있다. 공통점은 복수인데, 사적인 것과 공적인 복수의 차이다.

유딧이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그림은 많은 화가가 그렸다.

구약성서 제 13장 ‘유딧,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다’를 기초로 영감을 얻은 화가가 많은데, 유딧을 가장 잔혹한 복수의 화신으로 그린 화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1)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이전에도 베로네제, 보티첼리, 알로리,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같은 화가가 유딧 시리즈를 그렸다.

유딧 시리즈는 클림트의 그림으로도 유명한데 클림트는 유딧을 복수하기 전 섹스의 황홀함에 초점을 둔 인상이 짙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다' - 알리의 속사포 같은 리 모건의 트럼펫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호언장담은 리 모건의 트럼펫 연주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리 모건의 트럼펫은 나비의 몸짓으로 날다가 벌처럼 빠르게(속사포처럼 빠르면서 미사일같이 정확하게) 리듬을 구사한다. 그의 트럼펫 연주는 전성기 때 알리의 빠른 잽처럼 펑키하고 역동적이다. 알리의 스피디한 잽은 느린 카메라로도 잡을 수 없었듯 리 모건의 트렘펫은 하드밥의 음악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63에 발표된 앨범 <The Sidewinder>는 리 모건의 트럼펫을 리더로, 조 헨더슨의 색소폰, 배리 해리스의 피아노, 밥 크랜쇼의 베이스, 빌리 히긴스의 드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The Sidewinder'는 언제 들어도 유쾌한 리듬워킹이 돋보이는 작품인데, 리 모건과 더불어 리듬감을 살려주는 연주자는 드러머 빌리 히긴스다. 빌리 히긴스의 드럼 웍은 'The Sidewinder'의 리듬감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2의 클리포드 브라운’이란 애칭으로 알리와 같은 시대에 리 모건은 트렘펫을 대표하는 연주자가 되었다. 50년대 최고의 트럼페터로 불리던 클리포드 브라운의 영향을 받은 리 모건은 15살 때부터 재즈 뮤지션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아트 블래키, 디지 길레스피 같은 당대 거장에게 눈에 띄어 디지 길레스피 악단에 발탁되었다.

‘연애의 쾌락에서 사랑의 공유로’

트럼페터 리 모건의 앨범 <The Sidewinder>는 그가 헬렌 모어에게 죽기 9년 전에 발표되었던 앨범이다. 이 앨범을 발표할 그 당시에 그는 헬렌 모어와 좋은 감정으로 연애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리 모건의 연애감정이 식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자도 그렇지만 남자도 이기적인 동물이다. 연애의 쾌락을 통해 에덴동산을 향할 때, 또 다른 젊은 무화과를 지나칠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남자는 나이 어린 여자를 보면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롤리타 콤플렉스‘라고 한다. 헬렌 모어는 타오르는 질투로 리 모건에게 총을 쏘는 것보다 질투를 자기 힘으로 키워나갔어야 했다.

연애는 쾌락을 동반하고 사랑은 쾌락을 넘어 아픔까지 공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연애의 쾌락에서만 맴돌 때 사랑의 공유보다는 집착이 보인다. 이 집착의 결과물이 질투로 나타난다. 질투심은 자기현시 (自己顯示)가 좌절될 때 타인을 향해 발산하는 분노의 표시이기도 하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세상 많은 여자들이 자신만은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시간에 대한 거스름이 젊음에 대한 질투를 불러들인다. 리 모건의 부인 헬렌 모어는 그보다 무려 열네 살이나 많았다.

사랑의 질투는 나와 상대의 거리를 인식하면서 패어진 골을 자기성숙으로 메워나가며 공감의 지평을 열어가는 것, 즉 질투를 통해 자기를 돌아봄으로써 ‘질투는 나의 힘’이 된다. 그러나 미성숙한 연애의 질투는 상대와 나의 거리를 멀게만 인식하게 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함으로써 폭발한다. 오직 ‘복수는 나의 것’이란 생각이 들 때 연애의 질투는 위험해진다. 사랑은 공감으로 소통하지만 연애는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재즈 월간지 MM Jazz에도 실린 글입니다.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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