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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일이 일찍 끝났다고 하면서 저녁 시간 전에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낚시바구니가 들려있었다.

 

"그 안에 뭐가 있어?"

"응, 돌아오는 길에 잠깐 낚시하고 왔는데 숭어 몇 마리 잡았기에 가지고 왔어."

"숭어? 그거로 뭐해 먹게?"

"글쎄, 회 떠먹으면 좋을텐데. 매운탕이나 끓여 먹을까?"

"난 살아있는 거 손질 못하는데."

"걱정마 내가 할게."

 

의외로 남편에게서 시원한 대답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남편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끓인 숭어 매운탕 ..
남편이 끓인 숭어 매운탕.. ⓒ 정현순

남편은 자동차에 항상 낚시도구를 가지고 다닌다. 그날도 일찍 일이 끝났다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낚시를 했는데 의외로 큰 숭어 한 마리와 작은 숭어 몇 마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난 그것을 먹어도 되는지 미심쩍었다. 하여 남편에게 "물 깨끗한데서 잡았어?"하고 물었다. 남편은 숭어가 있는 물을 나에게 보여준다. 물은 깨끗했지만 비린내가 났다. 그날은 흐린 날씨탓인지 비린내가 유난히 더 나는 듯했다.

 

남편은 숭어를  손질하고 매운탕 끓일 준비를 시작한다. 내가 팔목을 다친 후 주방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남편은 고추가루, 소금, 후추 등 양념이 어디에 있는 줄 모두 알고 있기에 일일이 내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척척 알아서 매운탕 끓일 준비를 잘한다. 매운탕 끓일 준비를 마쳤는지 가스불 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곤 남편이 내가 있는 거실로 오면서 "내가 해보니깐 참 번거롭다. 그러니 당신처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매운탕을 끓여준다면 그것도 짜증 날것 같다"한다. 세상에 이게 웬일! 그런 일을 다 알아내다니.주방일이라고는 관심도 없었고, 식탁을 차려도 물은 물론 수저도 놓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싶다.

 

어쩌다 늦은 밤 야식을 먹고 싶다면서 라면도 혼자 끓여 먹기도 한다. 또 다 먹은 밥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는가 하면 반찬을 냉장고에 넣기도 한다. 내가 장을 봐오면 정리도 곧잘 도와주곤한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전이다. 내가 팔목을 다쳐서 몇가지 얻은 것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하기사 딸아이도 제 아빠가 그러는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젠 아빠도 주방일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았나봐"한다. 부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서로 서로 도와가며 산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매운탕 끓는 냄새가 좋다.

 

매운탕이 끓는 동안 남편은 수저를 놓고, 밥을 푸고, 김치, 깻잎 등으로 식탁을 차린다. 남편의 서비스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난 조용히 TV만 보고있었다. 마지막으로 매운탕을 식탁 가운데 놓고 저녁을 먹으라고 나를 부른다. 차려진 식탁과 보글 보글 끓고있는 매운탕을 보니 식욕이 당긴다.

 

남편이  숭어 매운탕을 한접시 덜어 먹어 보라면서 내 앞에 놓는다. 

 

"그런데 숭어로 매운탕도 해먹나?"

"그건 모르겠는데 이왕 끓인 것이니깐 먹어봐."

 

어쨌든 내가 끓인 것이 아니니깐 먹을만 했다. 국물도 먹어보라고 한다. 국물도 얼큰했다.

 

"음, 국물도 얼큰하고 좋은데. 안주도 좋은데 우리 한잔 할까?"

"좋지!"

 

맥주 한잔씩 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보았다. 대단한 보너스를 받은 날이다. 생전 주방일이라고는 안 할 줄 알았던 남편이 끓여준 숭어 매운탕에 맥주 한 잔씩 했다.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보았다. 남편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혔있다. 몸에서 마음에서 앤돌핀이 마구 마구 솟구치는 듯했다.

 

남편이 설거지도 하려는지 주섬주섬 싱크대에 빈그릇을 갖다놓는다. 

 

"매운탕 잘 먹었으니깐 설거지는 내가 할게."

"그렇네."

 

돌아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다른 때보다 더욱 믿음직스럽다. 난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말을 해본다.

'남편님아! 우리 이렇게 늙어가자.'


#남편의 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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