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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년 작고한 브라질의 교육철학자 파울로 프레이리.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그의 책 <페다고지>는 교육이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가르침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고전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인간성을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은 참된 인간이 될 수 없다. 또 개인적으로만 인간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이기적으로 보다 많이 소유하는 일과 연결되어 비인간화로 나아갈 뿐이다."

<페다고지>의 한 대목. 이치는 간단하다. 내 자식 교육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사회는 오히려 뒷걸음치는 역설. 바꿔 말하면 개인 차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야 본인 역시 나아질 수 있다. 그 길에 가장 유효한 방식이 교육 아닐까?

06학번 대학생 민우씨의 야간 영어수업

 야학교사로 지식나눔을 하고 있는 대학생 서민우씨.
 야학교사로 지식나눔을 하고 있는 대학생 서민우씨.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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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22․여)씨는 대학생이다. 졸업 뒤 88만원 세대에 편입될지도 모를 불우한 시대. 하지만 민우씨는 본인 삶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법정학부에 재학중인 민우씨의 소속 동아리는 슈우스프(SCHJF). 컴퓨터나 영어, 혹은 펀드투자를 연습하는 경제동아리가 아니다.

슈우스프는 서비스(Service), 봉사(Creation), 인류애(Humanity), 정의(Justice), 우정(Friendship)을 뜻하는 영어 첫 글자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슈우스프는 야간학교를 운영하는 봉사동아리이다.

이미 시장논리가 장악한 대학캠퍼스에서 봉사동아리는 이질적인 존재. 그러나 82년 10월15일 설립 이후 '천웅 슈우스프 야간학교'는 현재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우씨와 야학은 예정된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고교시절 교사를 꿈꾸는 그에게 한 선생님은 자신의 야학 경험담을 들려줬다. 마음 속 노트에 대학 가면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로 야학교사를 적어놓은 것도 그 무렵. 결심은 행동을 낳았다. 2006년 캠퍼스의 첫 봄, 스스로 동아리를 찾아가 회원에 가입했다. 동아리 전통에 따라 1년 동안은 선배들의 수업 모습을 참관하며 야학교사의 자질을 키웠다.

두 번째 맞은 캠퍼스의 봄. 드디어 수업을 맡았다. 과목은 중등과정 영어. 천안시 성정동 가구특화거리의 모건물 2층에 자리한 야학 강의실. 4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까지 학생 10여명의 시선이 민우씨에게 집중됐다.

고민했다. 문법과 독해 위주의 교습이 저분들에게 얼마나 도움될까. 고교 시절 영어공부에 활용한 팝송들과 영시암송자료를 다시 뒤적였다. 효과는 만점. 늦깍이 학생들은 어느새 영어공부에 매료됐다.

민우씨의 야학 강의시간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저녁도 거르고 야학으로 와 2시간동안 수업한다. 학기중에는 대학 주변에서 자취를 하기 때문에 야학을 오가기가 수월하다. 방학동안에는 2시간 수업을 위해 집이 있는 경기도 양평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을 걸려 천안에 당도한다. 버스를 타면 2시간이지만 멀미가 심해 탈 수가 없다.

지금까지 개인 사정으로 민우씨가 야학수업을 못한 것은 건강 때문에 딱 한번. 시험기간과 겹칠때는 야학 수업을 주말로 조정해 반드시 보강을 했다.

야학에서의 민우씨 수업은 이번 달로 끝. 수업은 후배들이 잇고 민우씨는 법조인의 삶을 준비한다. 학생이며, 또한 교사로 보낸 지난 1년의 시간이 대학 3학년생 민우씨에게는 어땠을까.

"친구들은 저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얻은 걸요. 나이 많은 분들 앞에서 수업하며 자신감도 커졌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분들에게서 삶의 소중한 자세를 배웠습니다."

수학 수업하는 여행사 대표

 한빛야학에서 장애인들에게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김영복씨.
 한빛야학에서 장애인들에게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김영복씨.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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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 서른 하나. 김경복씨는 천안의 도심 번화가에서 여행사를 경영하는 여성CEO이다. 여행사 업무로 주중에 바삐 움직이는 경복씨이지만 금요일 저녁, 어김없이 들르는 한곳이 있다. 두정동에 위치한 '천안한빛장애인야간학교'(한빛야학).

한빛야학은 천웅 슈우스푸 야간학교와 더불어 천안에 소재한 3곳 야학 가운데 한곳이다. 다른 2곳이 청소년이나 성인들 대상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2005년 12월 개교한 한빛야학의 학생들은 모두가 장애인.

경복씨에게 장애인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고교 때부터 청소년적십자 봉사활동을 하며 장애인복지시설을 정기 방문했다. 대학에서도 봉사활동을 계속했지만 사회 진출 후 한동안 뜸했다.

여행사를 창업하며 봉사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천안시자원봉사센터에 봉사처를 문의 했지만 한달째 연락이 없었다. 신문을 보다가 한빛야학에서 교사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발견했다. 다음날 직접 전화를 걸었고 작년 5월부터 매주 금요일 야학에서 기초수학을 지도하게 됐다.

"학원에서 몇해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경험이 많은 도움 됩니다. 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에게 달력이나 퍼즐 등 주변 물건을 활용해 수업하며 장애인분들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주중 2시간이지만 그로 인해 경복씨의 일상은 달라졌다. 금요일에 집중되는 직장 회식이나 각종 약속은 자연스레 야학 수업 이후로 자리잡았다. 4명으로 학생 수는 적지만 일주일동안 경복씨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수업 결손은 한번도 없었다. 장애인 분들과의 수업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경복씨는 '천만에'라고 답했다. 대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야학교사로 장애인 분들과 맞닥뜨리니 장애인 학습권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겠더라구요.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을 갖습니다. 힘든 점은 없어요. 오히려 제 고민을 순수한 그 분들에게 털어 놓으며 조언을 구하는 걸요"

수필가의 어르신 한글교실

 한글교실에서 권오숙씨가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알려드리고 있다.
 한글교실에서 권오숙씨가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알려드리고 있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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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은 아니지만 정규학교 밖에서 지식나눔을 실천하기는 권오숙(61)씨도 마찬가지. 권오숙씨는 현재 쌍용종합사회복지관에서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매주 두차례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98년 수필가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인 권씨가 한글교실을 담당하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봄부터.

남편과 함께 독립기념관 문화유적해설사로 활동하던 중 한글교실을 맡고 있던 지인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접하고 봉사자로 나섰다.

작년 말부터는 남편이 다른 곳에서 봉사를 하며 한글교실은 온전히 권오숙씨의 몫이 됐다. 수업은 매주 월요일 오전과 수요일 오후 2시간씩 진행된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권씨는 보온병에 어르신들한테 드릴 따뜻한 차를 미리 준비한다. 처음에는 과자도 마련했지만 요즘은 복지관에서 제공한다.

권씨의 한글수업에 곁들여지는 것은 다과 뿐만이 아니다. 동화구연을 익힌 장점을 십분 활용해 수업의 재미를 북돋운다. 교사의 가장 큰 보람은 역시 학생들의 변화.

"어느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고 처음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셨대요. 예전에는 번번이 은행 직원에게 대신 써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한글을 배워서 본인이 직접 전표를 제출했더니 은행직원이 이게 맞냐고 묻더래요. 그때 할머니의 기분을 상상하면 저까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독립기념관 문화유적해설사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권오숙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한글이해의 기쁨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70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지식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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