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아직도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지 못한 채 연일 악수(惡手)를 두고 있다. 1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오만과 독선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인적청산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들은 구 집권당인 다수야당 그리고 정부조직·권력기관·언론사·방송사·문화계·학계·시민단체 등 국가사회의 각계각층의 중요자리에 광범위하게 남아서 이명박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그 자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사퇴하는 것이 옳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국정의 발목을 잡고 사퇴하지 않을 경우 국민이 그들을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청와대 ‘관계자’는 “왜 전 정권에 서있던 사람들이 물러나야 하는지 (안 원내대표가) 잘 설명한 것 같다”면서 “(이들의 사퇴는) 정치적 금도와 상식의 문제”라며 추임새를 넣었다고 한다. 이어 12일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나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나름의 철학과 이념,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분들로 그런 분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며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안 원내대표의 말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그는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정치와 관계없이 문화에 전념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고 하니 자신의 안 원내대표 지지발언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언론계,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우리 사람으로 채울 테니 다 나가라’는 말이다. 백번 양보해 정부조직과 권력기관을 논외로 한다 해도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이 왜 정권에 따라 ‘인적청산’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독립성이 생명이자 임기가 보장된 언론사, 방송사 임원도 자신들과 친한 사람들만 앉히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게다가 정치권력이 개입할 여지조차 없는 시민단체들에 대해서 무슨 권리로 ‘물러나라 마라’ 한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제 시민단체 인사에까지 개입하겠다는 말인가? 그럴 여력이 있다면 장관 인선이나 제대로 하라. 게다가 안 원내대표는 과거 정부의 세력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국민들이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한나라당에게 주어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세력을 엄중히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니 ‘대 국민 겁박’ 수준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기어이 부적격 인사들을 고위공직에 앉히겠다는 도덕 불감증, 무슨 짓을 해도 국민들이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라는 착각,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세력은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오만과 독선, 언론 특히 방송을 장악해 지난 10년의 ‘한을 풀어보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언론관 등등 모두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이 바보인가? 야당이 아무리 반대한들 능력 있고 깨끗한 인사들이 장관 후보였다면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했을 것이다. 왜 다수의 국민들이 집권세력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는지 지금이라도 반성해 볼 일이다.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남탓’ 버릇이 지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집권세력을 따끔하게 비판하기는커녕 ‘오냐오냐’해주는 수구보수언론들도 한나라당의 ‘발목잡이 세력’이다. 심지어 안상수 대표의 발언은 조선·동아 등 보수신문과의 ‘찰떡공조’ 또는 ‘교감’ 아래 나온 것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안 대표의 발언이 나온 하루 뒤 12일, 조선일보는 1면 <“각계 요직의 구정권 인사들 사퇴해야”>, 3면 <정권은 바뀌었는데 ‘코드 인물’은 나 몰라라…>와 <안대표 거론 ‘정비할 좌파 법안’은> 등의 기사를 싣고 “여권이 청산 대상으로 보고 있는 ‘구정권 사람들’”이 누구인지 이른바 ‘좌파법안’이 무엇인지 등을 상세히 ‘해설’했다. 동아와 중앙은 각각 2면 <“DJ-노 추종세력 사퇴해야”>와 4면 <“DJ·노무현 정권 추종 세력 요직 남아 새정부 발목 잡아”>에서 안 대표의 발언을 옮기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다. 이들 신문에서는 안 대표 발언이 가진 문제에 대해 통합민주당이 지적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룬 것 외에는 비판적 시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반면 <한겨레>는 기사 제목에서부터 <‘10년 역사’ 지우고 ‘보수 코드’ 심기> <임기제 거스르며 ‘자리 챙기고’…색깔론 앞세워 ‘과거 뒤엎고’> <안상수 원내대표의 ‘황당한 논리’>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으며, 특히 사설 <여권의 속보이는 임기제 흔들기>에서는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정부를 일방적으로 좌파로 규정하고, 스스로 제1당이나 제1야당으로 참여해 만든 법과 제도를 부정하는 꼴”이라며 “헌정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망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또한 <안상수 ‘인적청산’ 발언 파문>과 <눈엣가시 뽑기…권한남용 ‘문화혁명식 발상’> 등에서 안 대표의 발언에 대해 “우리 사회를 다시 ‘좌·우’의 이념 대립과 편가름, 지역주의 등의 ‘분열’로 몰아넣는 정략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안 대표 발언과 관련한 보수신문의 문제는 다른 신문들과의 단순한 논조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안 대표의 발언이 나오기 전 보수신문들은 차근차근 ‘멍석’을 깔아줬고, 안 대표는 그 토대 위에서 망언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사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에서 “정권 교체란 사람의 교체”라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마땅히 물러나야 할 이가 버티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언론정책의 경우’를 들어 “정부 개입을 앞장서 주장했거나 그런 임무를 부여받은 기관들에 임명된 이들은 벌써 그 자리에서 일어났어야 한다”, “공중파를 전리품인양 움켜쥐고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이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며 안 대표의 발언과 맥을 함께 하는 내용을 주장한 바 있다. 또 안 대표 발언이 나오기 바로 전날, 조선은 <좌파 총공세의 무대가 된 방통위원장 인사 검증>이란 사설에서 “일부 좌파적 신문과 전 정권 내내 좌파 정권의 홍보 역할을 떠맡았던 일부 방송, 그리고 이들의 동조 세력에 장악된 일부 언론단체가 최 후보자에 대해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를 통해 대대적 검증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안 대표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을 폈다. 같은 날 동아도 ‘배인준 칼럼’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에서 “정(정연주 KBS 사장)씨는 지난해 대선 결과를 보고 즉시 KBS 사장직에서 자퇴했어야 상식에 맞다”, “정씨를 비롯해 노 정권 아래서 기득권층이 된 사람 중에는 ‘내 밥그릇 못 내놓겠다’며 농성을 계속하는 부류가 적지 않다”며 “정치적 식객들은 한 정권이 끝나면 곧장 자리를 털고 사라질 줄 알아야 식객 자격이나마 있다”고 공공기관장들을 비꼰 바 있다.
이어 12일, 동아일보의 허엽 문화부장은 칼럼 <유인촌 문화장관이 해야 할 일>에서 “이념에 뒤틀린 문화 정책과 대한민국의 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이 “이 정부의 ‘첫’ 문화장관이 할 일”이라며 사실상 ‘문화계의 좌파인물들을 정리하라’는 식의 요구를 했다. 이러니 ‘이명박 정부-한나라당-보수신문 교감설’이 나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국민들이 집권세력에게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은 ‘오해’, ‘네거티브’, ‘사실무근’, ‘발목잡기’ 등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것들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인사, 설익은 정책들을 내놓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다가 반발에 부딪히면 발목잡기라고 우기는 집권세력에게 어떻게 후한 점수를 주겠는가?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인적청산’에, ‘좌파적 법안 정비’까지 들고 나오면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반발 심리, 색깔론을 악용해 총선에서 표를 얻어 보겠다고 꼼수를 쓰고 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촉구한다. 집권세력이 감히 ‘인적청산’을 입에 올리려면 우리 사회 곳곳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거나 차지하겠다고 나선 독재정권 부역세력, 부동산투기 세력들부터 물러나게 해보라. 부적격 인사들을 줄줄이 내각에 앉혀놓고 무슨 ‘인적청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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