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힘들어 죽겠네.""뭐가 그렇게 힘들어, 임마.""그냥 학교 가는 게 힘들어."요즘 인효 녀석이 학교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옵니다. 교복을 벗자마자 방바닥에 쓰러져 잡니다. 중3도 고3도 아닌, 이제 겨우 중학교에 입학한 녀석이 말입니다. 그렇게 시골 촌놈, 도시 중학교에 입학한 지 2주째. 녀석은 입학 다음날부터 바싹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 네 참, 어떤 선생님이 복도를 지나가면서 회초리 휘둘러 대면서 이 눔 새끼들, 저 눔 새끼들 해가며 욕하고 소리치고…. 하 참, 학교가 살벌혀 죽겠어."천방지축으로 친구들과 웃고 까불고 신나게 놀던 촌놈이 마치 군에 입대한 신병처럼 학교에만 가면 바싹 긴장이 되는 모양입니다. 훈련병처럼 새벽 6시쯤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챙겨 먹고 가방 싸고 6시 50분쯤에 집을 나서 시골길을 걸어 7시 10분, 버스를 타고 시내 종점에 내려 다시 10여분을 걸어가야 하니 몸이 대간하기도 할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더 힘들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떤 선생님'의 호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회초리 들고 설쳐 대는 '어떤 선생님'이 훈련소 교관이라면 학급에는 주먹 쥐고 설쳐대는 조교 같은 아이들이 몇 있었던 모양입니다. 반 아이 중에 도시의 큰 초등학교에서 '짱을 먹었다'는 아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가만있는 애들 한티, 야 너 이루와 봐, 해가며 살벌해서….""너 한티두 그러데?""아니, 나하고 내 짝꿍하고는 안 건드리는디, 그래두 그렇잖어. 거기다가 어떤 애는 그 옆에 졸졸 따라 다니면서 더 설쳐 대구…."모 초등학교에서 '짱을 먹었다'는 아이에게 벌써부터 줄을 서고 있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다니기 싫어?""아니, 자식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내비 두지 뭐.""절대루 기죽으면 안된다 잉. 한 번 당하기 시작하면 일년 내내 괴롭힘 당할 수 있응께.""괴롭히면 나두 가만 안 있을겨.""그렇다고 싸우지는 말고.""알았어."
그리고 며칠 후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잔뜩 흥분된 표정으로 그럽니다.
"오늘은 그게 말여, 야 너 일루와 봐봐 그러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지, 뭐! 나? 그랬더니 아니 너 말구 뒤에 있는 놈, 그러잖어.""인상 팍 쓰고 대답했냐?""응, 이렇게 인상 팍 쓰고 그랬지…. 뭐! 나 말여! 라구."녀석은 과장된 몸짓을 내보였습니다. 학급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는 녀석에게 반항했던 자신이 못내 자랑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무서웠지?""무섭기는 내가 왜 무서워.""조금은 무서웠지? 얻어 맞을까봐?""아니, 조금….""싸우질랑은 말고 절대루 기죽으믄 안돼, 그런 애들일수록 당당하게 나서면 절대루 못 건드려, 다른 애들 괴롭히면 니가 나서서 말려야 하구, 근디 그 녀석이 반 애들 한티 돈 달라구는 안하데?""아니, 돈 주고 뭐 사와라 시키기는 해두, 돈을 빼앗지는 않는 거 같어."녀석은 정글 속에 들어가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듯했습니다. 녀석은 점점 방어 본능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녀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늘 그랬듯이 환하게 웃으며 집에 들어왔습니다. '짱을 먹었다'는 녀석과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애가 갑자기 착해졌어, 애들 한티 싸납게 굴지도 않고…."모르긴 몰라도 '짱을 먹었다'는 녀석에게 된통 당했던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말했거나 선생님이 그 녀석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던 모양입니다.
이제 됐다 싶었습니다. 녀석이 편안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열흘 넘게 새벽부터 강행군을 했던 녀석의 팔 다리에 힘이 부쩍 부쩍 생긴다고 합니다.
그날, 체육시간에 축구를 했는데 골을 넣지 못해 억울해 했습니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는데 옆에 있는 아이가 자꾸만 패스를 해달라고 해서 패스를 해줬는데 그걸 넣지 못해 무척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학교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학교 다니기가 재밌나 보네?""응, 재밌어. 선생님들두 다 좋고."그리고 바로 어제였습니다. 녀석이 다시 잔뜩 흥분해서 돌아왔습니다.
"2학년 어떤 애가 영웅이하고 버스 타러 가는데 돈 달라구 그러더라구….""그래서?""우리가 그냥 못들은 척 하고 가니께, 야 니들 내 말 씹는겨? 그러잖아.""그래서?""돈 없다구 하니까, 영웅이 교복에 침을 탁탁 뱉잖어.""그래서 가만 있었어?""아니, 싸울라구 했지, 나보다 키도 작고 찌질이 같은 놈인데 뭐.""그랬는데?""그때 우리 학교 나온 형이 나타났어, 야 니들 뭐야 왜 그래, 저리 안 꺼져 하니까, 찌질이 같은 놈들이 그냥 가더라구.""그 짜식덜이! 큰일 날 뻔했네, 친구가 돈 빼앗기고 맞는 걸 보고 가만 있으면 안 된다.""당연하지 영웅이 건드리면 싸워 줄라구 그랬지.""친구를 위해 한 대 맞을 수 있다면 그 친구는 나중에 너를 위해 두 대를 맞을 수 있는겨.""왜 맞어?""아니, 얻어맞으라는 게 아니라 친구 당하는 걸 옆에서 그냥 지켜 보믄 안된다는겨."평소 나는 녀석에게 사랑이니 평화니 얘기해주고 있었지만 녀석의 위기 상황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평화는 온데간데 없고 비뚤어진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뚤어진 아이들일수록 사랑이 필요한데 말입니다.
친구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 후배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아이들의 습성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다가 모든 것을 경쟁 제일주의로 몰아가는 무지막지한 어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회초리 들고 "야 너 일루 와, 공부 한 거 내놔 봐"라고 강요하는 어른들과 "너 일루와 봐, 돈 있는 거 내 놔"라고 강요하는 아이들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녀석들이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너 일루와 봐, 공부 한 거 내놔 봐"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일은 녀석에게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녀석은 그렇게 하루하루 세상을 익혀 나가고 있었습니다. 애비 된 나는 녀석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더럽고 추악한 경쟁제일주의에 물들어 친구들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저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듯이 여전히 '바보처럼 헤헤 잘웃는 송인효'가 되었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돈을 빼앗길 뻔했던 그날 녀석의 새로 산 실내화를 누군가가 가져갔다고 합니다.
오늘은 아내가 학교 학부모회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그럽니다.
"회의 하는데 부모나 선생님들이나 계속 공부 얘기만 하더라구, 그래도 인효 담임은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달라 안심되더라구. 학부모회의 끝나고 교장 선생님에게 학교 폭력 좀 어떻게 해주세요 말했더니, 남자 애들이 다 그렇지요, 그 아이 이름이 뭔데요, 하길래 우리 애 얘기가 아니고 애들 전체를 말한 건데, 그냥 괜찮습니다. 라고 했더니 자꾸만 이름을 묻더라구, 애 이름을 알아야 어떻게 잘해 줄수 있다나"
아내는 폭력적인 어떤 아이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만 강조하는 경쟁 제일주의 교육으로 가다보면 자꾸만 폭력적인 아이들이 생겨날 것이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인 인성교육을 강조하고자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이게 우리의 교육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