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교육정책, 그것도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정책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책을 내놓은 사람들은 영어 몰입교육이 꼭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목 박는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이에 한글문화연대는 전문가들을 초청, 견해를 들어보는 시국토론회를 지난 13일 저녁 7시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열었다.
행사 진행은 YTN 뉴스 진행자이며,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인 이광연씨가 맡았다. 맨 처음 고경희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한글문화연대 부대표이며, 방송사회자인 정재환씨의 사회로 전문가 5명의 발표를 들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한학성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영어 풍을 맞았다고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영어 공부를 하는 현실적 학습 동기가 대학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영어 교육은 개혁될 가능성이 없다. 또 그동안의 영어 교육이 실패라고 하면서도 그 실패에 대한 제대로 된 원인 규명도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은 채로 또 다른 정책을 세워서는 안 된다.
또 필요한 영어 수준에 대한 개념 설정이 모호하거나 지나치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과 성취기준을 보면 ‘관심 있는 주제의 강연, 연설 및 방송을 듣고 대체로 이해한다’로 돼 있는데 그 수준은 영어 전문가인 나도 어렵다. 현실적이지 않은 영어 몰입교육 정책은 안 된다."
이어서 발표를 한 송환웅 참교육학부모회 언론출판정보위원장은 영어는 우리 아이의 날개가 될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세워진 영어마을이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자 이에 대한 반성없이 운영을 사기업에 떠넘겼다. 해방 이후 계속된 그러면서도 실패했다는 영어 교육에 대한 평가 없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겠다는 것에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그 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가 나섰다. 그는 다른 나라의 영어교육 사례를 자세히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영어를 잘하는 나라들은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런 상황을 살피지 않고 그들을 따라가려는 자세는 한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영어 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7년 반을 미국에 살며 영어 공부를 한 나 같은 전문가도 영어는 정말 어려운데 온 국민을 영어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인가?
공교육만으로 영어를 잘하게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영어 몰입교육을 주장하는 소수 엘리트는 이중언어 사회에 살거나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그렇게 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을 소외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결국, 영어에 묻은 쓸데없는 떡고물을 걷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발표자는 평소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해온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이며, 문화평론가인 진중권씨의 차례였다.
“우리나라 사람 중 국제사회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우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꼽는다. 그 반 사무총장은 발음이 좋지 않은 편인데도 외국인들과 훌륭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발음이 문제이기보다는 교양·상식·지식이 있어야 하고, 사고능력이 있어야 함을 증명한다.
내가 독일어 강의를 해보니 학생의 30% 정도만 내용을 소화했다. 영어 몰입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입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경쟁력은 영어보다는 오히려 모국어로 얼마나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한글문화연대 고문이며, 한림대 정치학과 교수인 김영명씨는 발표에 앞서 “우리 국민은 영어를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영어를 못해서 무슨 큰 문제가 있었나?”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영어능력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잘하면 좋겠다”라고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그는 “영어를 강조하는 세력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하면 정말 영어를 잘할 거라고 믿을까?”라고 질문하면서 ”그들의 의도는 자기들의 권력 확장과 더불어 영어를 써서 사회적인 구획을 만들겠다는 것일 뿐이다. 또 그들은 식민지 근성으로 지금이라도 미국의 간접적이 지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라고 꼬집었다.
이후 종합토론에서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람들은 김영삼을 YS, 김대중을 DJ, 김종필을 JP라고 부른다. 이는 정치지도자들이 사대주의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지도자들이 자기 나라 말을 사랑하는 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나라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
또 한 청중은 “토론회가 영어 몰입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듯해 아쉽다"면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빼앗아가는 그들에 맞서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 등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것은 종합토론에서 일부 청중이 토론회 주제와 거리가 있는 주장을 중언부언 길게 설명하려 했고,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발표자들이 많은 준비를 한 듯 보였고, 충분한 논리 전개로 설득하려 했다는 점이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국가 정책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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