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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녹아 흐르다 깊은 산속의 응달과 북쪽 산자락에 웅크리고 있던 동장군이 포근한 바람, 따스한 햇볕에 힘을 잃었다. 녹아내리는 눈과 얼음을 개울로 모여들어 봄으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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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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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요즘이 바로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다. 겨울이 힘을 잃고 녹아내려 봄으로 가는 환절기인 것이다. 그래서 요즘 깊은 산에 들어가 보면 겨울과 봄, 두 계절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햇볕이 따스한 양지쪽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양지바른 언덕의 낙엽을 들춰보면 작고 파란 새싹들이 다투어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응달지고 높은 지역의 산이나 계곡은 아직도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직도 두껍게 쌓여 있는 눈과 얼음이 겨울의 실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엊그제 찾은 충북 단양 도락산의 풍경도 그랬다. 응달진 골짜기와 산자락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응달진 곳에도 오후가 되자 살짝 햇볕이 찾아들었다. 햇볕과 함께 포근한 봄바람까지 살랑거리자 요지부동이던 바위 위의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눈과 얼음은 그 자체가 겨울이었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겨울이 녹아 흘러내리는 모습이 바로 봄으로 가는 걸음걸이였다.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다가 그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가온 계절의 변화를 깊은 산골짜기라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리라. 바위 위에 쌓여 있던 눈과 얼음이 밑에서부터 녹아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다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봄을 알리는 상큼하고 가벼운 음악처럼 들린다. 봄의 소리 왈츠처럼 말이다.
겨울 동안에는 등산 중에도 땀을 흘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차가운 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자연이 봄을 감지하고 눈이 녹아 내리 듯 우리네 몸도 봄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자 골짜기를 흐르는 개울물이 더욱 불어난 것처럼 보인다. 요즘의 개울물이야 거의 대부분 눈 녹은 물이다. 따뜻한 봄 햇살에 녹아내린 눈과 얼음물이 개울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작은 개울은 졸졸거리며 흐르지만 제법 넓은 상선암 골짜기의 개울은 시원하게 콸콸 흐르는 모습이 시원하기 짝이 없다.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는 시선 저 아래로 살짝 아지랑이 같은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은 때 이른 환상이겠지만 개울아래 저만큼에서 봄 아가씨가 상큼한 미소라도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녹아내리는 눈과 얼음, 그리고 시원하게 콸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어느 듯 가까이 다가온 봄을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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